'토큰 경제'는 과연 ‘악마의 유혹’일까

[이균성 칼럼] 네이버의 라인도 악마?

데스크 칼럼입력 :2018/09/05 17:34    수정: 2018/11/16 11:14

#두 개의 ‘유령’이 지금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중 하나의 유령을 ‘악마’라 표현했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인 ‘J노믹스’의 세 개 축 가운데 하나인 소득주도성장을 겨냥한 말이다. 또 하나의 유령은 문재인 정부에서 비토 되고 있는 '토큰 경제'다. 정부는 이를 ‘도박’으로 여긴다. 유령은 아직 그림일 뿐이고 실체가 허약한 까닭에 악마와 도박으로 치부된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고전 ‘공산당선언’을 처음 출간한 건 1848년이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그 책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끝은 이렇게 맺는다. 그런데 그들은 왜 공산주의를 유령이라고 표현했을까. 극단으로 치닫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추적하고 그 해법으로 찾아내 지향하던 세계가 그것 아닌가.

#유령은 이름만 있고 실제가 없는 거다. 그렇다면 그들은 공산주의가 실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마지막 문장은 불필요했다. 그들은 죽어서야 도달할 수 있는 천국을 추구했던 종교인이 아니다. 현실 세계를 연구했던 과학자다. 유령의 의미는 그래서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거대한 구상.’

네이버 라인 암호화페 '링크'의 운영 프로세스(사진=라인)

#인간의 구상(構想), 특히 거대한 구상은, 그러나, 의도가 순수해도 과정과 결과가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인간의 뜻이 클수록 그 결과가 참담한 경우는 인류 역사에서 부지기로 목격된다. 그 사례는 너무나 많아 나열할 필요도 없다. 큰 뜻이 되레 다른 인간을 대량으로 죽이기도 했다. 과거의 일만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위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노장(老莊)이 공맹(孔孟)을 조롱한 이유가 거기 있다. 공자와 맹자는 철학자였지만 정치가이기도 했다. 예(禮)와 인(仁)으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구현하려고 했다. 노장은 그런 생각이 모두 헛소리라 여겼다. 듣기에 그럴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건 없고 도리어 세상을 혼돈과 폭력으로 끌어갈 것으로 봤다. 노장 생각은 맞았다. 그 기나긴 예(禮)와 인(仁)으로도 세상은 끝내 난장판이다.

#하지만 꼭 노장은 옳고 공맹은 그른 게 아니다. 부처만 옳고 마르크스는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다만 마르크스와 공맹의 생각도 인간의 구상이고 노장과 부처도 인간의 구상일 뿐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또 구상의 범주와 층위가 다르다는 걸 덧붙이고 싶다. 많은 구분이 가능하지만,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개인적 구도가 먼저냐 사회 구조의 혁신이 먼저냐에 대한 질문과 답이다.

#이 둘을 헷갈리는 순간 세상의 모든 논의는 길을 잃는다. J노믹스와 토큰경제는 마르크스나 공맹의 영역이지 노장이나 부처 혹은 예수의 영역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 점에서 김병준 위원장이 J노믹스를 ‘악마의 유혹’이란 비판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교수이고 그러므로 사회과학자일 그가 정치 경제 사회의 영역을 종교의 영역을 치환해버렸기 때문이다. 대중에겐 그게 편할 수 있다.

#정략적 입장을 이해 못할 바도 없다. 그게 잘 싸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얕은 수다. 역사적 관점보다 당장의 승리를 노린 것이다. 경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많은 이유가 있을텐데 대통령 하나 바꾸어서 불과 1년 만에 그렇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회과학자가 아니다. 명백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 근거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세상은 너무 쉽고 누구나 박사가 될 것이다.

#얼마나 쉬운가. 최저임금 상향이 문제니 그냥 없던 일로 하면 다 해결되는 것 아닌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대통령을 뽑은 게 문제니 그냥 탄핵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대선 때 후보들 대부분 그런 공약을 했고 그중 그 공약을 가장 잘 지킬 것으로 생각해 뽑은 국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모두 스스로 탄핵할까. 아니면 그 수준밖에 안 되니 모두 머리 깎고 절로 가 수도라도 할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정무직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과연 J노믹스는 만병통치약이어서 수십 년 관행 때문에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를 불과 1년 만에 혹은 문 대통령 재임기간에 해결할 묘책인가. 인구감소와 일자리 부족과 빈부격차가 그렇게 뚝딱 해결될 일이던가. 몇 가지 정책으로 ‘부동산 불패 신화’를 잠재울 수 있단 건가.

#국정 농단에 분노해 든 촛불도 혁명이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미치는 영향도 혁명전야에 준하는 거다. 4차 산업혁명. 그 길은 지금 누구도 가보지 않았고, 그래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표현한 대로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소득주도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3축은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비일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이 뒤틀릴 수 있고 오래 걸린다는 거다.

#우물에 숭늉이 있을 리 없다. 샘에서 물을 길어 구수한 숭늉을 만들기까지는 이해찬 대표의 주장처럼 적어도 20년이 걸릴 지도 모른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걸 인정해야 한다. 당장의 성과에 매몰돼 이러저러한 논평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자신들은 대한민국을 새롭게 창조하기 위한 험난한 과정의 주춧돌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젊은이가 짝 찾고 결혼해 아이를 낳는 세상은 돼야지 않겠나.

#그 길을 제발 쉽게 생각하지 말자. 누구도 뚝딱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겸해서 당정청에 부탁이 하나 있다. 그 길에 ‘토큰 경제’가 원군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시라. 본인이 보지 못한다고 다가올 미래가 오지 않는 건 아니다. 그 미래를 보는 사람은 많다. 도박과 사기라고 폄하해도 올 것은 기어코 온다. 그렇다면 그 눈을 빌려야 한다. ‘토큰 경제’는 지방자치에 비견될 ‘사이버 지방 자치’일 수도 있다. 독점과 집중으로 인한 ‘헬 조선’ 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제기되고 있는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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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노믹스가 ‘고용도 없고 성장도 한계에 부닥친 한국 경제’에 대한 해법으로서의 ‘거대한 구상’이었다면, 토큰 경제는 아마존이나 구글의 사례에서 보듯 IT와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특정 기업과 산업에 쏠리는 독점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그리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 혁신가들의 ‘거대한 구상’이라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구상(構想)이 없다면 혁신도 없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ICO를 거부하는 당정청 관계자는 네이버의 라인이 ICO를 피해 암호화폐를 만들어야 했던 이유를 깊이 들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