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정부는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 사업에 마스터플래너(MP)라는 직책을 신설했다. MP는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로 선정된 세종 5-1 생활권과 부산 에코델타시티의 비전과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 주 임무다. 사업이 끝나는 2021년까지 시범도시 사업의 총괄 감독을 맡는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이다.
정부가 MP라는 생소한 직책을 신설, 지휘자 역할을 맡긴 것은 기존 정부 사업이 일방적이며 혁신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MP에 대해 국토부는 “과거 신도시 개발에 도시계획 전문가가 총괄을 맡던 것과 달리, 과학기술 혹은 민간기업 전문가가 총괄을 맡아 사업을 추진, 시범도시 혁신성을 더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정부는 세종 5-1 생활권에 뇌공학자를, 부산 에코델타시티에 스타트업 투자자 민간기업 대표를 MP로 선임, 전면에 내세웠다.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 사업이 기존 정부 주도 사업과 다른 패러다임으로 가겠다는 일종의 선언인 셈이다.
MP들에게 법적인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국가시범도시 총괄계획과 운영에 관한 훈령’도 마련했다.
지난달에는 세종과 부산 두 MP가 언론앞에 자신들이 직접 구상한 시범도시 구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스마트시티 시범도시 사업은 민간 전문가인 MP가 선장을 맡아 혁신성과 자유로움을 가지고 주도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현재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 스마트시티의 선장이 MP인지, 또 시범도시 사업이 정말 혁신성과 자유로움을 가지고 진행될 지 의문이 든다.
정부는 MP를 처음 발표할 당시, 마스터플래너 약자인 MP를 두고 총괄책임자라고 명명,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 국토부는 MP의 한글 직함을 총괄계획가로 바꿨다. 얼핏 보면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국토부 입장도 그러했다. 마스터플래너라는 뜻을 잘 담을 수 있는 한글 명칭이 총괄계획가에 더 부합하다고 생각돼 바꿨다는 설명이다. 법령상 용어로도 총괄계획가라는 명칭이 더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총괄'책임'가에서 총괄'계획'가로 바뀐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책임자는 그야말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계획가는 계획만 잘 세우면 된다. 책임에서 자유롭다. 누가 더 진정성이 있을 지는 명약관화하다.
현재 MP는 무보수직이다. MP 보수와 관련해 국토부는 "지난 4월부터 현재까지 MP에게 자문비 형식 보수만 지급했다"고 밝혔다. 자문비는 공식 회의가 있을 때 나오는 비용이다. 국가 역점 사업에 민간 선장이 보수를 받지 않는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이름만 총괄책임자지 보수도 받지 않는데 실제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지적이 민간에서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MP선정은 올해 이뤄진 사항이라 작년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애국심만으로 봉사하는 시대가 아니다. 제대로 된 보수를 받지 않는 선장이 얼마나 마음을 쏟을 수 있을까. 뒤늦게 국토부는 “앞으로 사업 시행자와 계약해 적정한 대가를 지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MP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의 스마트시티특별위원회가 추천하고, 4차위가 최종 결정해 국토부 장관이 위촉한다. 정부가 뽑는 MP의 보수를 왜 사업 시행자가 지불하는 걸까. 사업 시행자의 보수를 받는 MP가 과연 기존 사업 시행자의 자문 역할을 벗어나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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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유로 정부가 강조하는 스마트시티 혁신성이 미덥지 않다. 총괄책임가에서 총괄계획가로 바뀐 직함이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애초 그들에게 책임을 부여할 생각도, 책임 있게 사업을 추진할 권한을 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스마트시티 사업 성공을 위해 보여주기식으로 들러리 세운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정부는 MP 정식 명칭을 슬그머니 변경하는 등의 안일한 방식으로 논란을 비껴갈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떳떳하고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진행 과정에서 나오는 부족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