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대기업 총수 일가가 보유한 시스템통합(SI), 물류, 부동산, 광고 계열사 지분을 팔아야 한다"고 공식 주문함에 따라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 위원장이 특히 SI 업종에 대해 "더 이상 예외일 수 없다"고 못박자 SI 업계는 공정위의 향후 행보가 어떻게 진행될 지 예의주시하며 지켜보자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총수일가 지분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지적돼 온 것으로, SI 업계 대부분은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공정거래법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으로 낮춰 놓은 상태다. 하지만 내부 거래 비중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고, 총수 일가 지분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여 섣불리 안심하긴 이르다고 보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총수 일가, SI업체 지분 팔라 경고
김 위원장은 지난 14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총수 일가가 대기업의 핵심 사업과 관계 없는 회사 지분을 보유한 뒤 일감을 몰아줘 부당이익을 얻고 있다"며 "경영에 참여하는 직계 위주 대주주 일가는 주력 핵심 계열사 주식만 보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총수일가가 사익편취 및 부당내부거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언급한 직종은 SI, 물류, 부동산관리, 광고회사 등 네 가지다. 김 위원장이 총수 일가의 지분을 줄여야 하는 비핵심 업종을 특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지분 매각을)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 (따르지 않을 경우) 사익 편취, 부당 지원 협의가 짙은 기업부터 공정위 조사와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SI업체, 지배구조 개편 통해 리스크 해소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업종으로 특정된 SI업계는 향후 공정위에서 나올 추가 조치를 차분히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대기업집단 SI계열사 대부분은 이미 공정거래법 상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에 저촉되지 않게 지배구조 개편을 완료했거나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
공정거래법 상 총수일가의 지분이 상장사의 경우 30%, 비상장사의 경우 20% 이상이면서 내부거래가 200억원 이상이거나 매출의 12% 이상이면 규제를 받게 된다.
SI 빅 3업체의 총수일가 지분을 살펴보면, 삼성SDS(상장사)는 17.01%, LG CNS(비상장사)는 1.4%이다. 단, SK주식회사(상장사)는 최태원 회장 지분 23.4%와 친족 지분 7.48%를 합쳐 30.88%로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SK주식회사는 초과 지분을 어떻게 해소할 지 아직 밝히지 않았다.
롯데정보통신과 한화S&C은 최근 물적 분할을 통해 총수 일가 지분을 정리했다.
롯데정보통신은 지난해 11월 1일 투자부분인 롯데아이티테크와 사업부문인 롯데정보통신으로 물적 분할했다. 롯데아이티테크가 롯데정보통신 지분을 100% 소유하면서 롯데정보통신에 남은 총수 일가 지분은 없어졌다. 이후 롯데지주가 롯데아이티테크를 포함한 6개 비상장 계열을 흡수합병하면서 순환출자 구조도 해소했다.
한화S&C는 지난해 10월 투자부분인 H솔루션(오너 3남이 지분 100% 보유)과 사업부문인 한화S&C로 물적 분할했다. 이후 한화 S&C와 한화시스템을 합병하면서 한화시스템이 종속회사로 남았고, 이 과정에서 H솔루션은 한화시스템 지분을 26.1%로 가지게 됐다. 오너 3남이 한화시스템 지분을 직접적으로 보유하진 않았으나, H솔루션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문제삼을 수 있는 만큼, 추가 매각을 통해 20%미만으로 낮출 예정이다.
■SI업계 "내부 거래는 불가피"...공정위 "해외 사례보면 충분히 가능"
SK주식회사를 제외한 대기업 계열 SI업체들도 마음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내부 거래 비중은 여전히 높은 데다가 총수 지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있어, 아직 긴장을 늦추기 이르다.
법 저촉을 피하기 위해 총수일가 지분을 29.99%로 낮추는 기업들이 늘어나자, 국회에선 규제를 강화해야한다는 개정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일감 몰아주기 행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가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관련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생존 기반을 상실하는 일이 반복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SI업종을 특정해 "법률상 일감 몰아주기 예외 조건인 긴급성·보안성·효율성을 충분히 고려하겠지만 논란이 되는 SI 업종이 예외 조건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선진국 기업집단은 보다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SI 업체와 거래하면서 서비스를 받고 있다"며 "이를 통해 SI 업체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크는 선순환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I업계는 신규 사업 진출 등으로 내부 거래 비중을 줄기이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지만, SI업종 태생적 특성상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 대기업 계열 SI업체 관계자는 "기업 핵심 시스템 구축은 기업 기밀과 보안에 관련된 일인데 계열사 SI가 아닌 다른 업체에 맡기는 게 현실상 가능하겠느냐"며 "정부가 SI업종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대기업 SI업체 관계자는 "내부거래는 안정성, 효율성, 보안성 측을 고려하면 줄이기가 쉽지 않다"며 "총수일가의 지분이 높으면 사익 편취 가능성이 있겠지만 이부분은 대부분 SI업체가 해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SI업계의 자정노력에도 불구하고, 일감 몰아주기 프레임을 씌우는 정부에 대해 서운함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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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관계자는 "SI업체 태생 자체가 그룹사 IT역량을 다 합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인데 규제 프레임에 갇혀 글로벌 SI업체들과 경쟁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주 52시간 근무는 시작되는데 불합리한 발주 관행은 고쳐지지 않은 상황이라 SI업계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다"며 "SI업계도 국내 IT생태계의 중요한 일원인 만큼 활기를 띌 수 있게 규제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