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생태계 꿈틀...“규제혁파는 아직”

[문재인 정부 1년...규제혁신정책①]

인터넷입력 :2018/05/10 10:03    수정: 2019/04/15 13:51

1년 전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주역으로 인터넷 산업과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꼽았다.

이를 위해 연대보증제와 공인인증서를 폐지하기로 약속하고,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글로벌 경쟁에 발목을 잡는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고,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동력과 사회적 인식 개선에 정부가 앞장서겠다는 취지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국내 인터넷 및 창업 시장은 아직은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의 첫 발을 뗐다. 연대보증제 폐지가 시작됐고, 지지부진했던 공인인증서 폐지 결정이 내려진 것. 또 10조 규모의 청년 창업 펀드 조성 계획까지 나오면서 인터넷, 창업 열기에 다시 불이 붙을 전망이다.

반면 아직 규제 혁파 측면에서는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손과 발을 묶는 각종 규제들이 그대로 남아 새로운 혁신 기술과 서비스의 탄생을 가로막고 있다.

가뜩이나 당리당략에 빠진 정치권의 당파 싸움에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포털이 희생양으로 전락, 더 많은 규제 법안들이 쏟아지는 실정이다.

■ 1년 전 문재인 정부 인터넷ㆍ창업 분야 공약은?

2017년 4월14일 문재인 당시 후보는 디지털경제협의회 초청포럼에서 국내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의 부진한 설비투자 증가율과, 생산및 수출의 마이너스 성장을 언급했다.

이어 범정부적 국가전략을 치밀하게 세워 미국과 중국처럼 4차산업혁명 경주에 우리나라가 뛰어야 한다며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 확대 신설하는 계획을 밝혔다. 또 창업열기가 뜨거운 창업국가로 만들어 혁신기업을 통한 혁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손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창업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창업 후에는 경쟁력을 갖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정부가 기업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막는 거 아니냐는 우려에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했다.

특히 문 후보는 국내 인터넷 기업과 스타트업이 요구하는 네거티브 규제체제로의 대전환을 약속하고, 나쁜 규제를 없애는 정부가 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이 밖에 문재인 후보는 여러 자리에서 연대보중제와 공인인증서 폐지 등을 공약하며 ‘인터넷 민심’을 잡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 “실패해도 괜찮아”...연대보증제ㆍ공인인증서 폐지

대선 당시 공인인증서.액티브X 폐지를 공약했던 문재인 대통령.

그 어느 정부 때보다 인터넷, 스타트업 업계는 새 정부에 대한 희망이 컸다. 형식적인 지원과 말로만 규제 혁신이 이뤄졌던 과거 정부와 다른 정책들이 나오고, 현실화 될 것을 예상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들어 공약에 있던 중소기업청은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됐고, 경제학 박사인 홍종학 장관이 취임했다.

또 지난달부터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신규대출의 연대보증 제도가 폐지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올해 약 1천600여개 이상의 법인기업 소상공인이 연대보증 없이 정책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게 됐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이 참여했으며, 은행도 순차적으로 연대보증을 없애기로 했다.

약 20년 간 쓰인 공인인증서도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공인인증서 제도는 과도한 정부규제로 인해 전자서명의 기술서비스 발전과 시장경쟁을 저해하고 공인인증서 중심의 시장독점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인인증서 폐지를 골자로 한 전자서명법 전부개정안을 지난 3월 입법예고하고, 이달 9일까지 의견수렴한 뒤 본 절차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달 LG사이언스파크 개장식에서 ‘규제 샌드박스’ 도입과 기술개발, 창업지원 대폭 확대 방안을 발표해 관련 업계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

규제 샌드박스는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는 제도다. 새로운 혁신성장을 위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혁신 기업들을 정부가 과감히 밀어준다는 취지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은 올 초 향후 3년 간 10조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를 조성, 혁신창업가를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공개했다. 또 청년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실패하면 또 다른 아이디어로 재기할 수 있는 제도 개선도 함께 언급했다. 지난해 추경에 조성했던 3조원의 모태펀드로 재기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안병익 푸드테크협회장은 “정부가 혁신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규제 타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좋은 정책들이 나왔지만 여전히 움직임이 느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새 정부가 규제 개선을 선언하면서 많은 부처들이 규제 개선에 관심이 많아졌다. 나아가 암호화폐와 같은 당장 입법화가 어려운 것들은 규제 샌드박스나 규제 프리존들을 빨리 도입해 혁신의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그런데 네거티브 규제는 언제쯤...?”

문재인 정부 공약들이 하나둘 이행되며 인터넷 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체감되는 변화는 많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대표적으로 지적된 불필요한 규제의 실타래가 하나둘 풀리고는 있지만, 정작 산업 전선에서 뛰고 있는 경영자나 실무자들은 여전히 지나친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와 사업 모델이 정통 산업이나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하는 사례도 여전히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교통 영역에서 혁신을 꾀하려 했던 카풀 서비스인 ‘풀러스’가 택시 단체들의 반발로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었고,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택시 유료 호출 서비스도 같은 문제로 반쪽 서비스만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뉴스 댓글조작 이슈가 터지면서 포털 사업자를 압박하는 여러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결국 현 정부는 큰 방향성에서 혁신과 규제 혁파를 외치고 있지만, 전문가 집단과 실제 현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호서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류민호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큰 그림에서 네거티브 규제의 방향을 잡은 건 긍정적이지만, 기업들이 체감할 만큼 실행은 제대로 된 것 같지 않다”며 “새로운 산업 규제에 있어 통신과 방송 규제에 준해서 접근하는 구시대적 잣대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에 비해 규제와 법 체계를 만드는 데 있어 절차가 매우 폐쇄적이고, 형식적”이라면서 “어떤 규제와 법안을 만들 때 빨리 성과를 내려는 조바심을 버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스타트업 지원에 힘쓰고 있는 김상헌 네이버 전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규제 개선과 새로운 혁신 기술 지원에 많은 의지와 노력을 보여준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대했던 수준의 규제 개혁이 현장에서 일어나고 구체적인 조치들이 많이 나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스타트업 협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최성진 대표도 김상헌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건강한 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현 정부의 의욕과 의지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다만 성장 단계에 맞는 맞춤형 지원정책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최 대표는 “초기 창업에 대한 지원 정책은 많은 반면, 그 다음 스케일업 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 정책은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며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요구하는 제도 개선이라든지, 시장 규칙 재정비 등에 관해 뚜렷이 진전된 것이 없다. 큰 법을 바꾸는 건 국회가 하지만 정부의 노력도 미진한 거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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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냉소적인 의견도 제시됐다. 포털에 대한 규제가 더 심화되고, 전세계적으로 불고있는 블록체인, 암호화폐 바람에 우리 정부가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차재필 정책실장은 “개인정보보호, 은산분리, 암호화폐공개 규제 등 전반적인 결과를 놓고 봤을 때 혁신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과연 현 정부가 성공적인 4차산업혁명 추진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