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구형 아이폰 모델 성능을 고의로 떨어뜨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배터리’가 또 다시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이폰 성능을 제한한 주된 이유가 배터리 성능한계였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1차 원인은 애플의 ‘꼼수’였다. 하지만 애플이 꼼수를 쓰게 된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배터리 성능 한계’란 문제와 부닥치게 된다.
왜 IT업계는 수 십 년째 배터리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실제로 배터리가 IT 기기 성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일단 드러난 수치만 놓고 보면 이런 한계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씨넷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지역 첨단 배터리 스타트업인 엔비아 시스템스의 마이클 신쿨라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배터리 성능은 1995년부터 2007년 사이에 두 배 수준에도 채 이르지 못했다. (☞ 씨넷 기사 바로가기)
신쿨라는 2007년부터 2015년 사이에 배터리 성능은 30%도 채 향상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이런 추세로 갈 경우 2021년까지 현재 배터리 성능의 두 배 수준에 이르기도 힘들 것으로 추산했다.
주변 상황을 살펴보면 이런 추산에 다소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요즘 노트북 PC 배터리는 10시간 가량 지속된다. 10년 전 겨우 4시간 남짓이었던 것에 비해선 크게 향상됐다.
배터리 성능이 폭발적으로 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성과가 가능했을까? 이에 대해 씨넷은 ‘부품 크기 축소’와 ‘전력 관리 소프트웨어 성능 향상’ 덕분이라고 진단했다.
컴퓨터의 두뇌인 프로세서 크기가 줄어들면서 전력 소모량도 함께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프로세서 크기를 줄일 수 있었던 건 ‘무어의 법칙’을 바탕으로 한 기술 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
■ 리튬-에어 등 신물질 실험…성과까진 까마득
하지만 배터리 쪽으로 초점을 맞출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다른 IT 기술만큼 폭발적으로 성능이 향상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씨넷이 이 부분을 잘 분석했다.
배터리는 기본적으로 금속과 화학물질이 결합돼 있다. 그것들을 서로 연결할 때 전류가 흐르게 된다.
그런데 화학물질은 크기를 줄이더라도 그대로 성능 향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물을 작은 컵에 옮겨 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컵 크기를 줄이더라도 물은 그냥 물일 따름이다.
지금까지 배터리 성능이 향상될 수 있었던 건 새로운 물질을 도입한 덕분이었다. 초기에 금속의 일종인 니켈을 사용하던 배터리는 리튬으로 바뀌면서 지속시간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연구의 초점은 리튬 배터리 성능 향상 쪽에 맞춰져 있다. 점진적인 개선은 몰라도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쉽지 않단 의미다.
스마트폰을 일주일 정도 구동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배터리는 아직 업계의 연구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씨넷이 전했다.
물론 주요 IT 기업들이 배터리 성능 향상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IBM이다.
IBM은 새너제이에 있는 알메이든 공장에서 배터리 연구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9년 ‘배터리 500’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차량을 약 800킬로미터까지 주행할 수 있는 배터리를 개발하겠다는 게 당시 목표였다.
이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리튬-에어 배터리 개발에 주력했다. 탄소와 다른 금속에 의존하는 리튬 이온 배터리와 달리 리튬과 상호작용하는 공기로 가득차 있는 용기를 활용해 전기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이 기술이 성공할 경우 배터리 무게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IBM의 연구는 한 가지 한계에 부닥쳤다. 리튬-에어 배터리를 제대로 구동하기 위해선 ‘순수한 공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엔 오염물질과 물로 가득차 있었다.
원하는 공기를 얻기 위해선 정화 장치가 필요했다. 물론 그렇게 할 경우엔 배터리 크기와 무게가 늘게 된다.
■ 애플, 2009년 맥북 프로 때 '배터리 혁명' 장담…현실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텍사스 대학 연구 팀도 배터리 성능 한계 극복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들은 실리콘, 황, 나트륨 같은 금속을 사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씨넷에 따르면 이들의 연구는 자동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술을 성공적으로 개발하더라도 스마트폰 같은 소비자 가전에 적용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한 때 스탠퍼드 연구팀이 순수한 리튬을 장착한 배터리를 만들었다고 발표한 적 있다. 발표대로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배터리 역시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전망이다.
IT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배터리 영역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이폰 성능 고의 제한’으로 집중포화를 맞은 애플 역시 이 고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애플은 지난 2009년 맥북 프로 새 모델을 내놓을 당시 ‘배터리 혁명’에 성공했다고 호언장담한 적 있다.
당시 맥북 프로에 사용된 배터리는 기존 모델보다 수명이 40% 가량 더 길었다. 덕분에 당시 맥북 프로는 최대 7시간 가량 지속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여전히 배터리 수명은 그 수준에서 크게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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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쯤 일주일 가량 ’충전’ 고민을 하지 않고 IT 기기를 사용할 수 있을까? 또 언제쯤이면 배터리 때문에 스마트폰 같은 IT 기기 성능이 급격하게 저하되는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속 시원하게 답변하는 기업은 차세대 IT 전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