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침해 외에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콘텐츠를 규제를 금기시 하던 미국이 자율규제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국의 이런 변화는 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UCLA Charles. E. Young 연구도서관에서 개최된 ‘조정에 관한 모든 것’(All things in moderation)에서 확인됐다.
7일까지 이틀간 열리는 이번 행사는 규제와 관련된 미국 내 최초의 세미나다. 6명의 좌장을 비롯해 37명의 패널이 참석, 행사장은 관련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청중으로 인해 가득 찼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따르면 미국은 2010년이 돼서야 UCLA 정보학과 새라 로버츠 교수에 의해 각 사업자들이 시행하는 콘텐츠 규제를 상업적 콘텐츠 관리라는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상업적 콘텐츠의 개념과 관리에 대해 정리한 인물이다.
이런 상업적 콘텐츠 관리는 그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의 발달, 인터넷 개인방송의 증가, 가짜뉴스의 발견, 인공지능 발전 등으로 콘텐츠 관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미국에서 형성됐다.
반면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유명 연예인이 악성 댓글로 자살하는 사건, 온라인을 통한 명예훼손과 괴롭힘 문제로 이용자가 작성한 게시물, 동영상 등 콘텐츠를 어떻게 관리돼야 하는가에 대한 꾸준한 논의가 있어 왔다.
■ 콘텐츠 관리 원칙과 실무 논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자 UC어바인 로스쿨 교수인 데이비드 케이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함에도 인터넷 콘텐츠 관리가 필요한 혐오발언, 폭력적이거나 음란한 콘텐츠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좋은 목적에서 콘텐츠 관리를 수행하더라도 유럽연합, 특히 독일에서 정보 매개자(Digital intermediary)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이나,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이용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물으려 하는 등 콘텐츠 관리를 강제하는 현실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온라인의 콘텐츠 관리는 현재 온라인 공간이 한 국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규칙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의 압력이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닌, 사업자와 이용자가 동의한 규칙에 의한 자율규제여야 한다. 이런 처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이용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충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이어진 컨퍼런스에서는 콘텐츠 관리에 대한 다양한 측면이 검토됐다.
다만 해당 학회에서는 이론적으로 콘텐츠 관리의 방향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실무적인 차원의 논의가 주로 이뤄졌다.
▲미국의 유명 커뮤니티인 레딧에서 발생한 댓글 및 게시물에 대한 콘텐츠 관리 사례에 대한 성과 ▲맛집 정보 서비스 등 순위 서비스에서의 콘텐츠 관리의 방향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 개인방송, 채팅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 ▲위키피디아 등에서 나타난 AI 등을 통한 자동화된 콘텐츠 관리의 문제점 등이 공유됐다.
이렇게 발표된 모든 콘텐츠 관리는 각 사업자의 자율규제 혹은 이용자의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한다. 국가에 의한 강제 없이도 충분히 투명하고 각 서비스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콘텐츠 관리가 가능하고, 이는 건설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을 모두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학회에서 가장 관심이 높았던 것은 콘텐츠 관리 자동화에 관한 사항이었다. 알고리즘의 한계를 주장하는 입장과 AI 등의 발전으로 점차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연구가 모두 발표됐다.
참여자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릴 우려는 있지만 기술에 의한 관리가 사람에 의한 관리에 비해 효율적이고 빠르게 콘텐츠 전파를 차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기술의 발전과 사람에 의한 사후 검토를 통해 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 한국의 투명한 자율 규제에 해외 관심
한국 발표자인 서울대 오요한 씨는 2007년과 2008년에 네이버 검색어 관련 의혹을 제기하면서 투명하지 못한 검색어 관리가 이런 문제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표한 KISO 나현수 정책팀장과 박연규 선임연구원은 2012년 이후 네이버를 중심으로 한국의 검색어 관련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자율규제 노력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에서 KISO를 통한 공동 기준 마련 이외에 네이버 검색어 검증위원회를 통한 외부 검증에 대해 설명했다.
외부에 검증을 맡겨 그 결과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에 따라 사기업이 자신의 서비스 정책을 수정하는 시스템은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만큼 이런 검증이 가능하게 된 배경을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해당 조치가 정부나 국내법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닌 이용자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사업자가 받아들인 점을 높게 평가했다.
또한 한국의 발표를 바탕으로 예일대 로스쿨의 한나 블록베바는 전세계의 인터넷 표현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최종 검토할 수 있는 국제적인 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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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O 나현수 정책팀장은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 규제의 필요성과 관련 논의를 통해 각종 법안이 만들어지는 등 논의가 미국에 비해 빠르게 진행된 바 있다”며 “다만 법적 규제를 두고 이에 대한 찬반이라는 법리 위주로 논의돼 실제 한국에서 잘 진행되고 있는 콘텐츠 관리 실무에 대해 논의를 주도하지 못한 점, 법령에 의한 규제로 AI 등 신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내부 관리가 그간 잘 진행돼 온 만큼, 이론이 아닌 실무적인 성과를 공유하는 논의가 한국에서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