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커버그 vs 트럼프의 '플랫폼 논쟁' 다시 읽기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아날로그 vs 디지털의 추억

데스크 칼럼입력 :2017/09/29 09:53    수정: 2017/09/29 11:3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또 그들의 존재 이유는 뭘까?

미디어 시장에서 끊임 없이 제기되는 질문이다.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답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만큼 플랫폼을 둘러싼 공방은 새삼스러울 건 없다.

그런데 이번엔 좀 색다르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과 세계 최대 소셜왕국 대표가 설전을 벌인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얘기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사진=씨넷)

포문을 연 건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페이스북은 늘 반-트럼프였다”는 글을 올렸다. 사람들은 친-트럼프인데, 페이스북은 유독 반-트럼프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저커버그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반론을 올렸다.

짤막한 트럼프의 글과 달리 저커버그의 반론은 꽤 길었다.

그는 “나는 늘 사람들을 한 데 모으고, 모든 사람을 위한 공동체를 구축하는 작업을 한다”는 말로 운을 뗐다. 모든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려한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상을 위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바램이란 말도 덧붙였다.

세계 최대 플랫폼 사업자가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고충도 털어놨다. 트럼프는 반-트럼프라고 비판하지만, 정작 (트럼프를 싫어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오히려 트럼프를 도와줬다고 비판한다고 주장했다.

양쪽 모두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사상과 콘텐츠 때문에 기분 상해 한다는 것. 저커버그는 그게 모든 사상을 똑 같이 취급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람의 숙명이나 다름 없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은 지난 해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구설수에 많이 휘말렸다. 가짜뉴스 유통 창구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또 러시아의 여론 조작 창구로 활용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저커버그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페이스북이 적지 않은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2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데려오는 역할을 했다는 것. 이 정도는 힐러리 클린턴이나 도널드 트럼프 양쪽 진영 모두 해낼 수 없었던 성과라고 자화자찬했다.

■ 공정한 플랫폼은 과연 무엇일까

저커버그의 이런 반론에 대해 트럼프가 재반론을 할 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또 트위터에 단문을 주로 올리는 트럼프의 성향상 깊이 있는 논쟁이 오갈 가능성도 많지는 않다.

하지만 논쟁적인 사안의 한 쪽 끝에 있는 트럼프와 거대 플랫폼 운영자 사이에 오간 논쟁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공정한 플랫폼이란 개념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저커버그는 앞으로도 모든 사람을 위한 공동체를 구축하는 작업을 계속해내가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었다. 전 세계에 걸쳐 자유와 공정 선거를 보장하는 일에도 힘을 쏟겠단 말도 덧붙였다.

구글은 플랫폼일까, 아닐까. (사진=씨넷)

읽기에 따라선 다소 당돌하단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글이다. 하지만 전 세계 20억 명이 사용하는 거대 플랫폼 대표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다. 실제로 페이스북 정도되는 플랫폼은 그 정도 무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논쟁을 보면서 "과연 플랫폼이란 뭘까"란 생각을 해봤다. '공정한 플랫폼'이란 어떤 걸 말하는 걸까, 란 질문도 던져봤다.

질문은 던졌지만, 답은 찾기 힘들었다. 모든 사상에 다 문호를 열어놓는다고 '공정한 플랫폼'이 되는 건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역사발전이란 거창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다소 뜬금 없어 보이고.

[덧글] 추석 연휴를 앞두고 떠올려보는 플랫폼의 추억

저커버그와 트럼프의 논쟁을 보면서 어린 시절 익숙했던 '플랫폼'을 떠올려봤다. 디지털 플랫폼이 아니라, 아날로그 시절 트래픽(교통)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었던 그 플랫폼.

학창시절 내게 플랫폼은 이별의 장소였다. 부모님이나 친구, 연인과 떠나면서 손 흔들던 장소였다. 늘 비슷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로 붐볐다. 추석을 앞둔 요즘 같은 때는 특히 분주했다.

물론 이별만 있는 곳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별의 슬픔과 새로운 만남의 기쁨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한 마디로 우리 삶의 모든 기쁨과 애환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장소였다.

“무슨 얘길 하잔거지?”라고 반문하는 당신은 ‘디지털 네이티브’다. 자가용이 더 익숙한 디지털 세대들은 플랫폼이란 말에서 고속터미널이나 기차역을 떠올리진 않을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자가용에 좀 더 익숙한 요즘은 길 자체가 플랫폼이 돼 버렸다.

난 디지털 플랫폼도 비슷한 변신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출발점과 도착점 뿐아니라 중간 경로까지 다 포괄하게 됐단 얘기다. 그래서 이용자들은 '공정하지 않다'는 불만을 터뜨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전과 달리 여행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몽니'에 가까운 불만을 터뜨리는 건, 개인 성향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이렇게 달라진 상황도 영향을 미친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린 최대한 공정하려 노력했다"는 저커버그의 해명에 동의하면서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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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만 지나면 근래 보기 드문 긴 연휴가 시작된다. 어디론가 떠나고, 또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떠남과 만남이 있는 시간. 한번쯤 '플랫폼'에 대해 성찰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최소한 미디어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