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영화 ‘백투더 퓨처2’가 화제가 됐다. 1989년 개봉된 그 영화는 2015년을 배경으로 했다. 1989년의 관점에서 본 2015년 풍속도였던 셈이다. 1990년대 중반에 그 영화를 보면서 뛰어난 상상력에 무릎을 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 영화의 상상력은 꽤 놀랍다. 자동신발끈, 3D영화, 무인식당 같은 것들은 이미 상식이 됐다.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아직 멀리 있지만 무인자동차는 이미 현실 속에 들어오려 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또 있다. 그 영화는 ‘염소의 저주’에 시달리던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팀이 그 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으로 그렸다. 그런데 시카고 컵스는 올해 월드시리즈에 올라 108년만의 우승을 노리고 있다.)
■ 틈새형 '강소매체'가 저널리즘의 또 다른 희망 될 수도
여기서 한번 상상해보자. 1989년에 익숙한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 오면 기분이 어떨까? 미국 항공우주국(NASA) 슈퍼컴 뺨치는 초고성능 스마트폰을 하나씩 들고 있는 ‘미래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까?
누구나 사진을 척척 찍어서 바로 올리고, 일반인들이 쓴 ‘뉴스’를 전국민이 돌려보는 모습을 보면서 ‘멘붕’에 빠지지 않을까? 종이신문이 ‘퇴물’ 취급받는 모습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까?
서두가 길었다. 온 나라가 ‘최순실 파문’에 푹 빠져 있던 27일 헌법재판소에서 의미 있는 판결 하나가 나왔다. ‘5인 이상 상시고용’을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으로 규정한 신문법 시행령이 위헌이란 판결이었다.
이 조항은 도입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왜 5명인지에 대한 근거도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1인 미디어가 위력을 발휘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걸맞지 않은 규정이란 비판이 적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7대2로 위헌 결정하면서 이 조항은 없던 일이 됐다. 현명한 판결에 박수를 보낸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고용 조항과 확인 조항은 인터넷신문 발행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으므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인터넷신문 품질 개선 문제는 인력보다는 오히려 유통 구조 개선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란 의견도 내놨다.
헌재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적정 수 이상의 인력고용이 인터넷신문 품질 향상의 전제 조건이 되긴 힘들다. 생각보다 소수정예로 깊이 있는 콘텐츠를 내놓고 있는 매체가 적지 않다.
내가 미국 매체 중에서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곳 중 하나가 ‘스카터스블로그(SCOTUSBlog)’다. 이 매체는 미국 대법원 관련 소식에 관한한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몇년 전 오바마케어 대법원 판결 때 맹활약하면서 실력을 과시했던 매체다. 기자 수 백명이 고용돼 있고, 판결 당일 여러 명의 기자를 대법원에 파견했던 매체들이 오보를 쏟아낼 때 발빠르게 판결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해줘 명성을 떨쳤다.
그런데 당시 스카터스블로그 상시 고용인원은 변호사인 창업자 부부와 기자 한 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 못지 않은 전문성과 발빠른 순발력으로 ‘대법원 보도’에 관한 한 최고 실력을 자랑했다.
스카터스블로그 뿐 아니라 특정 영역에서 전문성을 살려저 널리 인정받는 매체들이 꽤 많다. 그게 요즘 뉴스 소비 행태와 잘 들어맞는 측면도 있다. 사회가 분화되고 다양해지면서 이른바 틈새 시장(niche market)을 타깃으로 한 강소 미디어들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가 됐다.
내가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이 시대 정신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는 건 이런 상황 때문이다. 대중매체 시대엔 인력과 장비가 경쟁력의 원천이었다면, 요즘 같은 모바일+소셜 미디어 시대엔 ‘집중된 전문지식(focused expertise)’이 새로운 경쟁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시대에 고용인력 수를 강제하는 건 시대정신과 상반된 조치가 될 수도 있다.
■ 2016년 미디어 시장을 지탱하는 철학은 뭘까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보자.
‘백투더퓨처2’가 만들어지던 1989년엔 언론사를 설립하는 게 꽤 까다로웠다. 몇 십억은 갖고 있어야 언론사를 만들 수 있었다. 윤전기를 비롯해 생산 비용이 꽤 많이 들기 때문에 당연히 필요한 조항이었다. 안정된 생존 기반이 있어야 제대로 된 언론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백투더퓨처2’ 작가의 상상력이 좀 더 빛을 발했다면, 아마도 달라진 미디어 환경을 중요한 에피소드로 넣었을 것이다. 그만큼 시대가 달라졌고, 기술도 급변했다.
물론 지금 인터넷 언론 환경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자생력 없는 매체가 난립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왜곡된 유통 환경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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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건 2016년의 시대 정신에 맞는 방법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인력 수를 강제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헌재의 현명한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이번 판결이 ‘2016년 미디어’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게 ‘미디어의 미래’를 향한 밝은 길을 닦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