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손정의…소프트뱅크 과감해졌다

된다싶으면 올인 승부…IoT에서 미래 개척할까

인터넷입력 :2016/07/19 16:32    수정: 2016/07/20 10:2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난 60세가 되면 생일 파티를 하고 후임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생각을 했습니다. (중간 생략) 그런데 나 시들었나란 생각이 들었죠. 조금만 더 사장직을 수행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구요.”

지난 6월 2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주주 총회. 마이크를 잡은 손정의 회장은 제법 긴 연설을 했다. 그리고 연설 말미에 후계자로 꼽히던 니케시 아로라 부사장을 물러나게 한 사연을 직접 소개했다.

승부사 손정의 회장은 이같은 선언과 함께 ‘60세 은퇴’를 번복하고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손정의 회장 (사진=뉴스1)

■ 불과 2주 협상한 뒤 "35조원 지불" 과감한 계약

그로부터 약 한 달.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 최고경영자(CEO) 자격으로 초대형 계약을 발표했다. 234억 파운드(약 35조원)에 영국 칩 설계전문업체 ARM을 인수한다는 소식이었다.

손 CEO는 이번 인수로 차세대 격전지로 꼽히는 사물인터넷(IoT) 시장에 대한 강한 야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날 AFP를 비롯한 외신들은 손 CEO가 런던 다우닝가 11번지에서 스튜어트 체임버스 ARM 회장과 활짝 웃으면서 악수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보기에 따라선 찬반 양론이 뚜렷할 수 있는 행보. 하지만 손정의 CEO의 행보는 늘 거침이 없었다. 승부를 걸어야 할 때가 되면 과감했다. 때론 무모하다싶을 정도로 강하게 베팅했다.

이번 인수도 마찬가지였다. 손정의 CEO는 ARM을 전액 현금으로 인수하는 통 큰 투자를 했다. 소프트뱅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의 70%를 한꺼번에 쏟아붓는 승부수였다. 그만큼 IoT 시장에 대한 강한 승부욕이 발동했다는 의미다.

협상 과정도 예사롭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불과 2주 동안 협상을 한 뒤 ARM 주식 한주당 17파운드(약 2만5천500원)을 지불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전주 종가에 무려 43% 프리미엄을 얹어준 가격이었다.

손 회장은 영국 런던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 이후에 영국에 대형 투자를 한 첫 사람 중 하나다”면서 “(투자에 대해) 말하는 건 쉽다. 그런데 난 그걸 증명해보였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할 정도로 모든 걸 쏟아붓는 승부수. 이건 손정의 회장이 1981년 소프트뱅크를 창업한 이래 늘 보여줬던 행보였다. 물론 무모해보인다는 건 어디까지나 제3자의 관점에서 그렇단 얘기다.

손 회장은 비즈니스 흐름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바탕으로 때가 됐다고 판단하면 바로 승부를 걸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돈을 투자한 ARM 인수도 마찬가지다.

■ 통신사업 진출 땐 발빠르게 '아이폰 독점계약'

손 회장은 지난 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나는 2, 3년에 한 번씩 큰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털어놨다. 이번 인수는 당시 그가 말했던 ‘큰 아이디어’가 바로 IoT 영역이란 걸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공교롭게도 손 회장은 3년 전 미국 통신사업자 스프린트를 216억 달러에 인수했다. 정확하게 3년 만에 성사된 대형 M&A인 셈이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쿼츠는 “소프트뱅크가 320억 달러에 ARM을 인수했다. 이건 손정의 회장이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정의다운 승부수의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투자였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선 전자상거래가 채 꽃을 피우기 전이었다.

손정의의 한 발 앞선 투자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 알리바바 투자다. 이 투자로 손 회장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사진은 알리바바 본사. (사진=씨넷)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당시 2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투자로 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 지분 32%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14년 만에 870억 달러란 거액의 투자 수익으로 결실을 맺었다.

과감한 투자엔 리스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소프트뱅크 역시 투자 실패도 적지 않다. IT 미디어 기업 지프데이비스나 전시기업 컴덱스 인수 등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하지만 이런 실패들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의 승부수는 성공 확률이 훨씬 높았다. 이런 과감한 승부수가 통할 수 있었던 건 ‘시장을 한 발 앞서 읽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손 회장은 1980년대 후반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일본 내 독점 판매권을 따내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MS가 PC 운영체제을 패권을 차지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승부수였다.

2006년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프트뱅크는 이를 위해 20조원을 투자해 보다폰 재팬을 인수했다. 당시 보다폰은 시장 3위 사업자였다.

손정의 회장은 보다폰 재팬을 인수한 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아이폰이었다. 시장 3위 업체 보다폰 재팬은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자마자 곧바로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덕분에 15%대였던 보다폰 재팬의 일본 통신시장 점유율은 2010년대 중반엔 20%대를 넘어섰다.

■ T모바일 빠진 스프린트 인수 땐 "자신감 잃었다" 털어놓기도

소프트뱅크의 진짜 깜짝 승부는 2013년 단행된 스프린트 인수였다. 무려 216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3위 통신사업자를 손에 넣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뉴스거리였다.

하지만 원래 손정의 회장이 그린 그림은 훨씬 더 컸다. 스프린트만으론 AT&T, 버라이즌 등 미국 통신시장 양대 강자와 승부를 겨루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소프트뱅크는 스프린트와 T모바일을 동시에 인수하는 그림을 그렸다. 이 야심은 미국 정부가 T모바일 인수를 끝내 승인하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손 회장은 지난 달 열린 36회 주주총회 때도 이 부분에 대해 꽤 길게 얘기했다. 과감한 투자로 규모를 키워서 미국 통신 강자들과 맞상대하겠다는 계획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이었다.

손정의 회장이 지난 달 열린 소프트뱅크 주주총회에서 스프린트 인수 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소프트뱅크)

당시 손 회장은 T모바일 인수가 무산된 뒤 “자신감을 잃었다”고 털어놨다. “이건 실패다. 그림을 잘못 그렸다고 후회했다.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손 회장은 마음을 다잡고 경비 절감 등을 꾀한 결과 올해는 1천 수 백 억엔 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규모 싸움으론 미국 양대 통신사에 필적하기 힘들지만 수익 면에선 그들을 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이번 인수는 손회장으로선 3년 만의 승부수인 셈이다. 그것도 3년 전 인수한 스프린트가 아직 본 궤도에 확실히 오르기도 전에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최근 몇 년간 소프트뱅크가 보인 행보는 예사롭지 않다.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가 하면, 어느 순간엔 과감하게 내다팔았다. M&A가 활발하지 않은 편인 동양권 기업으로선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특히 소프트뱅크는 올들어 꽤 많은 지분들을 정리했다. 대표적인 것이 올초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지분을 매각해 100억 달러를 손에 넣은 것이었다.

여기에다 지난 달엔 핀란드 모바일 게임회사 슈퍼셀을 중국 최대 게임그룹 텐센트 홀딩스에 매각했다. 이 거래로 소프트뱅크는 86억 달러를 추가로 손에 넣었다.

결국 이런 과감한 투자는 손정의 회장을 매료시킨 IoT란 새로운 승부수를 던지기 위한 준비작업이었던 셈이다.

■ "ARM이 소프트뱅크 향후 전략의 핵심 축"

손 회장은 이번 계약 성사 직후 “우리가 했던 거래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면서 “ARM이 소프트뱅크의 향후 성장 전략에서 핵심 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물론 향후 성장전략의 핵심은 IoT다. 이와 관련해 손정의 회장은 이미 2014년에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은 적 있다.

미국 IT 매체 쿼츠에 따르면 손 회장은 당시 소프트뱅크 컨퍼런스에서 “2040년엔 일인당 평균 1천 개의 인터넷 연결 기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시장을 잡기 위해선 IoT의 핵심인 모바일 반도체 기업을 손에 넣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소프트뱅크와 ARM의 결합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쿼츠는 “통신, 투자, 그리고 지주회사인 소프트뱅크가 어떻게 ARM이 돈을 벌도록 만들지는 명확치 않다”고 평가했다.

또 실리콘밸리 대표 투자기업인 안드리센 호로위츠의 벤 에반스 투자자는 쿼츠와 인터뷰에서 “이번 거래는 산업적 논리보다는 투자 논리가 작용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 동안 쭉 그랬던 것처럼 논리를 뛰어넘는 손회장의 승부수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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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실리콘밸리 기업 못지 않은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소프트뱅크. 물론 그 행보의 중심엔 지난 36년 동안 물러서지 않는 과감한 승부를 펼쳐왔던 손정의 회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가 다시 운전석에 앉은 만큼 소프트뱅크의 공격적 행보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ARM 인수를 통한 IoT 시장은 그 첫 행보란 점에서 향후 추이에 비상한 관심이 쏠릴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