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합병 불허 비판여론 덮자는 뜻인가

[기자수첩]약자 외침에도 귀 막은 공정위

방송/통신입력 :2016/07/08 15:27    수정: 2016/07/08 17:17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에 대해 불허 방침을 통보한 데 이어 심사보고서에 대한 의견서 제출 기한을 연장해달라는 두 업체의 요구마저 거부하자 합병 불허에 대한 논란을 조기에 매듭지으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유료방송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를 규제해 공정경쟁 환경을 만들겠다면서도 그 시장의 최약자인 케이블TV 업계의 간절한 호소에는 귀를 막고 있다는 비판도 크다.

공정위는 지난 4일 심사보고서를 통해 합병 불허 방침을 해당 업체 통보했다.

또 오는 11일까지 심사보고서에 대해 의견서를 제출할 것과 15일 전원회의를 통해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도 알렸다.

두 업체는 3일 간의 숙고 끝에 지난 7일 심사보고서의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의견서를 제출하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이를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다. SKT의 경우 "국내 인수합병건의 경우 심사보고서 수령 이후 이를 검토해 의견서를 제출하기까지 3주(週)가 주어지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내용이 충격적이고 검토할 게 많지만 1주로 제한돼 어려움이 있으니 관례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3주까지 시간을 달라"는 취지로 연장 요청을 했다.

정채찬 공정위원장.

CJ헬로비전은 공정위 불허 결정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의견서 제출까지 한 달, 전원회의 개최 시기까지 다시 한 달을 더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다.

공정위는 그러나 하룻만에 신속하게 연장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장을 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안 보인다는 게 이유다.

공정위 결정이 알려지자 '비판 여론'을 조기에 잠재우려는 전략이 아니겠느냐는 비판이 다시 쏟아지고 있다.

'합병 불허' 결정 사실이 노출된 뒤 여론은 급변했다.

결정 전까지만 해도 언론의 보도 성향을 보면 이 합병으로 인해 자사 이익이 침해될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SBS 등 극히 일부만 합병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국가기관의 공정한 판단을 믿고 촉구하는 논조였다.

굳이 말하면 대부분의 언론은 합병 찬반과 관련해 중립적인 입장이었다.

다만 공정위 심사보고서가 이례적으로 7개월까지 늦어지고 그 이유가 외압일 것이라는 분석과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 상당수 언론이 조속한 결론과 외압에 휘둘리지 말 것을 촉구했다. 조속한 결론에 대해서는 이 합병의 최종 인허가권을 가진 미래창조과학부의 장관까지 나서서 촉구할 정도였다.

4일 불허 방침이 알려지자 대부분의 언론은 공정위에 대해 비판적인 어조로 바뀌었다.

불허 결정을 위한 공정위의 판단 기준이 잘못됐다는 게 공통된 논리였다.

공정위는 경쟁제한성 유무 판단을 위해 유료방송 시장을 지역권역별로 쪼갰는데 주무부처인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지금까지 삼아온 기준은 전국단위이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무엇인가에 의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합병을 불허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린 것처럼 기존 법과 주무부처 정책을 깡그리 무시한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언론의 태도가 급변한 것은 이런 배경에다가 케이블TV 사업자의 딱한 처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경쟁제한 요소를 해소한다는 것은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규제함으로써 공정경쟁 환경을 만들자는 의미다. 시장에서 약한 사업자들도 좋은 제품과 서비스만 있다면 충분히 경쟁이 될 수 있도록 기존에 구축된 지배력이 남용되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시장의 약자들은 따라서 이런 조치에 대해 당연히 환영할 수밖에 없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에서 약자는 케이블TV, 그중에서도 종합유선망사업자(SO)들이다.

기술의 발전 추세와 브랜드 및 마케팅 영향력 등 여러 측면에서 이들 사업자의 경쟁력이 대기업 중심인 IPTV 사업자에게 크게 밀리기 때문이다.

공정위 정책 취지가 제대로 된 것이라면 이들 사업자는 합병 불허에 대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맞다.

그러나 오히려 이들이 앞장서서 합병 불허를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들 협회는 7일 공정위의 합병 불허 판단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공정위에 질의서를 보냈다. 이들 사업자 중에는 생존위기에 몰려 시장에서 활발하게 M&A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곳이 많다. 이들은 이번 합병이 불허되고 그 기준이 지역 권역 독과점 때문이라면 이후에도 M&A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1위 사업자(현재 전국단위 1위 사업자는 29%의 점유율을 가진 KT)의 입장만 굳건해지면서 SO는 고사지경에 빠진다고 주장한다.

SO 분야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까지 매각을 결정했을 정도라면 이런 상황은 굳이 따져볼 계제도 아니다.

공정위는 그러나 이들의 질의서나 SK와 CJ의 의견서 연장 요청을 모두 무시했다.

대다수 언론에 의해 합병 불허 근거로 제시된 시장구획이 잘못됐다고 지적되고,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으로 인해 혹시 생길지도 모를 경쟁제한성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봐야 하는 SO들이 되레 반대하는 데도, 과연 그게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일까.

그렇다면 공정위는 합병 불허로 경쟁제한을 해소해 대체 누구를 보호하자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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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와 방법이 옳다 하더라도 결과가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보는 게 순리다. 그런데 취지와 상관없이 방법이 문제라는 여론이 대세이고 그 결과 또한 긍정적이지 않다는 게 자명한 상황인데, 다 듣지 않고 서둘러 끝내야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이번 결정이 힘 있는 자와 그 꼭두각시가 노는 삼류 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