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미국)=임민철 기자]32살 PC 제조사 델이 37살 스토리지 거인 EMC를 인수해, 성격이 판이한 두 회사가 한 몸이 된다. 양사는 작년 10월 델이 발표한 인수합병 계획에 따라 이달부터 오는 10월까지 인수 관련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EMC는 기업 IT시장에서 소멸하는 게 아니라 자체 사업 브랜드를 유지하며, 델과의 통합 이후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대비하려는 미래 IT사업 전략의 중추를 맡게 됐다.
현재 EMC와 델의 수장 및 주요 임원들이 2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 EMC월드2016 현장에서 통합 조직의 구성과 사업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합병 절차 마무리 후 은퇴를 예고한 조 투치 EMC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EMC를 인수하는 델의 수장인 마이클 델 회장, 양사 통합 법인의 엔터프라이즈부문 사업을 지휘할 데이빗 굴든 EMC 정보인프라 부문 CEO가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EMC CEO의 마지막 기조연설…EMC월드는 계속된다
이날 투치 회장은 EMC월드2016 컨퍼런스 첫날 발표회장에서 행사 개요와 인삿말을 전한 니나 하거스 EMC 마케팅 총괄 수석부사장의 소개로 무대에 올랐다. 기조연설은 투치 회장의 '퇴임 전 마지막 EMC월드 키노트'라는 상징성으로 청중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델과 EMC 합병이 마무리된 이후 퇴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EMC 측에서도 이를 의식한 듯, 투치 회장이 CEO 역할을 수행한 2001년부터 개최된 EMC월드(과거 '엔터프라이즈 위저즈 컨퍼런스')의 역대 행사 현장을 담은 편집 영상이 그의 기조연설에 앞서 재생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조 투치 회장은 델과 EMC의 합병을 통해 "양사의 1만개 고객사, 파트너사에 계속 좋은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며 주주, 고객사, 파트너사, 임직원 등 "델과 EMC의 합병을 지지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양사가 지금 시기에 합병하게 된 이유는 뭘까. 투치 회장의 발언을 요약하면, 인류의 삶에 중대 영향을 미칠 디지털 혁명에 큰 비중을 차지할 클라우드 트렌드에 발맞춰, 시대적 변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맡기 위함이다. 기조연설 중 다음 발언에 이런 대목이 포함돼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지각변동과 같은 큰 변화가 두 번 쯤 찾아 옵니다. 지금은 디지털 혁명(digital revolution)의 시대죠. 수십억개 커넥티드 디바이스가 엄청 많은 양의 데이터를 쏟아 내고, 수많은 사람과 기기들이 서로 연결됩니다. 과거 산업 혁명 당시에 큰 영향이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인류의 삶에 큰 변화가 있을 겁니다. 데이터가 처리되는 방식과 속도도 달라질 거예요. 이런 변화의 큰 부분을 '클라우드'가 차지할 겁니다. 변화에 대처하려면 강력한 전략과 솔루션이 필요합니다. EMC와 델이 합쳐진 회사가 이런 변혁을 이끌 수 있을 겁니다."
투치 회장은 올해 컨퍼런스 핵심 키워드인 '모더나이즈(modernize)'를 화두로 "시장과 고객에 집중하기 위해 EMC는 극적으로 변화해야 했다"면서, 그 변화의 내용을 델의 마이클 델 회장과 통합 조직의 엔터프라이즈 수장이 될 데이빗 굴든 정보인프라 부문 CEO가 설명할 것이라 말하며 물러났다. 발표를 마친 뒤 고객사와 "수년간 EMC의 성장을 도운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한 투치 회장의 마지막 EMC월드 키노트의 대미는 EMC월드2016 컨퍼런스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로 장식됐다.
델에 합병되는 EMC에서 투치 회장의 역할은 끝나지만, EMC월드 행사 자체는 델과의 합병 이후에도 계속된다. 한국EMC 관계자에 따르면 '델EMC월드'라는 명칭으로, 내년 5월 8일부터 11일까지 올해 EMC월드 컨퍼런스와 동일한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안호텔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델EMC월드가 기존 델의 단독 컨퍼런스인 '델월드'의 기업용 IT솔루션 관련 내용을 흡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델월드는 PC 및 클라이언트서비스 관련 행사로 바뀔 전망이다.
■델 회장 "IoT 기술 인프라 사업자 되겠다"
투치 회장이 '자신의 오랜 친구'라는 소개에 무대에 오른 델 회장은 15년 전 IT업계의 상황과 지금을 견주는 것으로 운을 뗐다. 그의 발표 내용 초반에 당시 출시된 아이팟과 최초 3G 네트워크, 유닉스 서버 시장의 주요 브랜드였던 썬마이크로시스템즈와 이 시장에 칩을 공급하기 위해 애쓰던 인텔 등이 언급됐다. 델 회장은 15년 뒤인 지금 그 각 시장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시장과 사용자들이 소비하고 체감하는 컴퓨팅 파워, 이동성, 소프트웨어 등이 모두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델 회장은 이런 변화가 향후 15년 뒤에도 이어지면서 급격하고 확연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기기는 2003년 기준 5억개에 불과했지만 2015년엔 80억개, 2031년엔 2천억개로 폭증하고, 컴퓨팅 파워는 지금보다 1천배 수준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테라비트 이더넷이 통용되고, 사람 뇌에 준하는 성능을 가진 컴퓨터가 단돈 1달러에 거래될 것이다. 무인차(driverless car)가 미국내 자동차 절반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는 "전 분야를 통틀어 우리가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략적 감각을 만들어내는 사업 영역에서 우리의 역량을 재정비하려 한다"면서 "그 영역은 퍼블릭, 프라이빗, 하이브리드 등 클라우드, 또는 보안, 또는 업계선도적 컨버지드플랫폼부터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의 말단에 있는 센서, PC, 가상PC같은 매끄러운 기술 인프라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수많은 기기의 연결과 데이터 폭증을 야기할 사물인터넷(IoT) 시대에 걸맞는 기업의 IT인프라와 비즈니스 솔루션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델 회장이 말하는 IoT와 변화의 다음 단계는 산업 혁명과 인공지능을 비롯해 전체 기술과 산업 영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기업 네트워크의 말단(엣지)부터 데이터센터의 핵심(코어)까지, 그리고 여기에 연결되는 클라우드까지, 데이터센터 인프라의 설계 구조가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띨 거란 관측이다.
델 회장은 이런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EMC와의 합병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업 고객과 파트너들이 '디지털 미래'라는 이름으로 달라지는 환경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돕는 하이브리드클라우드, 소프트웨어정의데이터센터, 컨버지드인프라, 데이터레이크 등 핵심 기반을 제공해 그 여정을 이끌어 가겠다는 포부를 제시했다.
델 회장에 따르면 EMC는 혁신성이 높고 엔터프라이즈 시장 경쟁력이 뛰어나며, 델은 세계 최고 공급망 인프라를 갖췄고 중견시장에 강력한 입지를 갖춘 회사다. EMC의 RSA와 델의 시큐어웍스같은 보안 솔루션을 비롯해 다양한 양사의 통합 솔루션이 합병 이후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면, 가트너의 '매직쿼드런트' 분석 지표 가운데 21개 솔루션 영역에서 리더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사 합병 이후 델과 EMC의 비전에 대한 그의 언급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제 델과 EMC, 두 회사는 '비상장사'가 됩니다. 비상장사의 최대 이점은 100% 고객에게 전념하는 기업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거죠. 주주와 금융기관의 눈치를 보다가 집중력을 흩뜨릴 위험이 없어요. 강력한 솔루션과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중장기 투자를 지속하겠습니다. 양사가 힘을 합쳐 컨버지드시스템을 필두로 PC, 스마트기기, 센서, 각종 기계장치, 임베디드 기기 등 모든 것을 연결할 겁니다. 합병 회사 이름은 델테크놀로지스가 될 겁니다. 이 안에서 EMC, 델, 시큐어웍스, 버추스트림, RSA, VCE 등의 브랜드가 유지될 겁니다."
델 회장은 자신의 전략을 부각시키기 위해, 델과 EMC의 '통합'과는 반대 전략인 '기업 분할' 전략을 추진한 경쟁사 휴렛팩커드(HP)에 대한 '디스'를 곁들였다.
"HP같은 곳은 그들이 성공을 도모할 길을 좁혀버린 회사입니다. 분사를 해서 오히려 규모가 작아진 회사죠. 규모가 작아지면 R&D 투자가 줄어듭니다. 공급망도 축소되고요. 영업 인력 규모도 작아집니다. IT시장에서 성공과 혁신을 이끌려면 규모(Scale)가 중요한데 말이죠. …(중략)… EMC와 델은 플래시, 클라우드 연계, 소프트웨어 정의, 스케일아웃 등의 개념이 중시되는 모던데이터센터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EMC는 VM웨어의 강력한 클라우드 솔루션, 피보탈의 훌륭한 빅데이터 및 서비스형플랫폼(PaaS)을 갖췄죠."
■데이빗 굴든 "모던데이터센터 기술, 모두 갖췄다"
델 회장의 소개로 데이빗 굴든 EMC 정보인프라 부문 CEO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델과 EMC의 통합 법인인 '델테크놀로지스' 조직에서 기존 EMC의 스토리지 및 데이터관리 솔루션에 델의 데이터센터 솔루션 사업까지 포함하는 'EMC엔터프라이즈시스템그룹'의 수장을 맡을 예정이다. 기존 EMC 사업과 솔루션 브랜드를 중심으로 델 회장이 언급한 '모던데이터센터' 전략을 실현할 신기술과 솔루션을 포괄적으로 소개했다. 이를 위해 그는 향후 엔터프라이즈 IT시장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많은 기업의 기성 IT투자 규모는 정점에 달했습니다. 앞으로 이들은 투자를 줄여 나갈 겁니다. 이 때문에 IT산업이 쇠퇴한다는 얘긴 아닙니다. 새로운 개발 방법론, 애널리틱스, 클라우드를 위주로 신규 수요와 투자가 창출됩니다. 따라서 당장은 기존의 업무, 애플리케이션, 시스템 등이 처리하는 '전통적 IT' 애플리케이션과, 클라우드 기반의 애플리케이션이나 그 성격을 수반하는 새로운 유형의 업무가 처리하는 '클라우드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이 공존합니다. EMC는 이 둘을 모두 담당할 포트폴리오와 전략을 갖췄습니다."
굴든 CEO는 전통적 IT 애플리케이션 구동을 필요로하는 중소기업을 위한 미드레인지급 올플래시스토리지로 신제품 '유니티(Unity)'를 소개했다. SAN과 NAS를 모두 지원하는 유니파이드 스토리지로, 스토리지가상화 방식이나 디스크 저장매체를 혼합한 하이브리드플래시 구성, 서버 및 네트워크와 일체형으로 통합해 만드는 컨버지드인프라 구성 등을 지원한다. 이는 고성능에 초점을 맞춘 올플래시스토리지 '익스트림IO'와 하이엔드스토리지용 올플래시 'V맥스 올플래시'의 구성을 보완하는 성격으로 제시됐다.
기업의 전통적 IT 기반 환경에서 퍼블릭,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잇거나 차세대 네이티브클라우드도 하이브리드클라우드로 구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버추스트림스토리지클라우드' 서비스 역시 신제품으로 소개됐다. 이는 기존 IT 환경에서 SAP ERP나 공급망관리시스템 운영환경처럼 IO집약적인 '미션크리티컬 애플리케이션'으로 분류하는 핵심업무를 클라우드 환경에서 운영하며 백업, 재해복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로 IT인프라 설치형 스토리지와 백업 시스템을 수용할 수도, 네이티브클라우드 인프라와 연동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굴든 CEO는 EMC 스토리지뿐아니라 그와 서버, 네트워크 장비를 통합한 컨버지드인프라 시스템 역시 전통적 IT와 클라우드네이티브 인프라에 모두 대응한다고 강조했다. EMC 스토리지에 시스코 UCS서버와 VM웨어 가상화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V블록', VM웨어 소프트웨어 기반 하이퍼컨버지드 시스템인 'V엑스레일'과 'V엑스랙'이 전통적 IT업무에 대응하는 기술로 제시됐다. 서버에 부착된 스토리지를 SAN으로 쓸 수 있는 '스케일IO'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신제품 'V엑스랙 플렉스(FLEX)'가 클라우드네이티브에 대응하는 솔루션으로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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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클라우드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시하는 제품은 스케일IO와 NVMe 기술을 활용하면서 고성능에 초점을 맞춘 외장형 스토리지 'DSSD D5', 그리고 용량최적화에 초점을 맞춘 NAS 스토리지 '아이실론'과 오브젝트스토리지 '엘라스틱클라우드스토리지(ECS)' 등이었다. EMC는 DSSD D5의 성능과 용량을 2배로 만든 신형 시스템과 NAS 스토리지 아이실론 브랜드 관련 신제품 '니트로'를 나머지 행사 기간중 공식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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