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업 모임에서 조엘 스폴스키의 강연을 들었다. 조엘온소프트웨어와 스택오버플로우로 유명한 스폴스키가 회사나 팀을 운영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가벼운 내용이었다. 청바지, 운동화에 가죽잠바까지 걸친 그는 자주 소탈한 웃음을 터뜨렸고 청중과 호흡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 관리자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관리자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뾰족한 사다리꼴 구조를 떠올린다.
회사조직이 이런 트리구조를 갖게 된 이유는 원래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비쌌기 때문이란다. (80년대, 90년대의 국제전화 요금을 생각해보라.) 비싼 커뮤니케이션을 최소화하는 구조를 찾다보니 트리구조가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동료와 이야기하는 대신 직속상관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의사소통의 의무를 다하게 되었다. 정보가 관리자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그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자 의사결정의 중심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커뮤니케이션에 따르는 비용이 완전히 사라졌다. 행아웃, 스카이프, 슬랙, 페이스북, 카카오톡, 텔레그램, 이메일, 텍스트 등을 이용해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실시간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기록을 남기고 검색하는 것도 편리해졌다. 정보가 관리자에게 집중될 필요 없이 수평적으로 흐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정보의 투명성도 늘어났다.
한때 위기감을 느낀 인텔은 칩의 제작과 관련한 기술적 의사결정을 관리자가 아니라 말단 엔지니어가 내리도록 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혁신의 범위와 속도를 극대화하기 전략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인텔만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심지어 '개발자 아나키(Developer Anarchy)'라는 것이 활용되어 왔다. 아나키는 애자일보다 극단적인 프로젝트 관리기법이다. 프레드 조지(Fred George)는 얼마 전에 팟캐스트 SE Radio에 출연해서 자신이 개발자 아나키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활용했는지 설명했다. 아나키는 '관리자가 없는(manager-less)' 프로젝트 관리 방법론이다.
스폴스키에 의하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관리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 (1) 커뮤니케이션 허브 역할 (2) 의사결정의 주체 (3) 직원들 사기 관리. 이렇게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관리자는 자연스럽게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의 주변으로 정보와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그는 명령하고 부하는 수행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개발자에서 관리자가 되는 것은 ‘승진’으로 인식되며 개발자의 꿈은 관리자가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은 모든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정보는 위로 올라가는 만큼, 옆으로 흐른다. 관리자가 보고 받는 정보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낡은 정보다. 소프트웨어 개발기법이나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관리자의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현대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능력도 쇠락해간다. 오늘날의 관리자가 커뮤니케이션 허브와 의사결정 주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남은 기능은 직원들의 사기 관리일 뿐이다.
그래서 현대적 의미에서의 관리자는 리더가 아니면 치어리더다. 여기에서 리더는 스스로 코딩을 하는 관리자다. 미국에서는 테크니컬 매니저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책임감이 깊고, 준수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고 있고, 타인을 돕거나 이끄는 힘이 있는 사람이 맡는 역할이다. 자리에 앉아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프로젝트 일정관리를 위해서 개발자를 들볶는 사람이 아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하고, 팀원들과 함께 코드를 설계하고, 계획을 세우고, 핵심적인 부분을 스스로 코딩하고, 다른 사람들의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같이 테스트하고, 관계된 사람들에게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버그를 스스로 잡아낸다. 개발자들은 그가 상관이라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찾아간다.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의를 하고, 논쟁을 하고, 토론을 한다. 기술적인 문제를 묻기도 하고, 개인 신상의 문제를 털어놓기도 한다.
리더가 될 수 없는 관리자는 최소한 치어리더가 되어야 한다. 리더가 존경과 신뢰를 받는 개발자라면 치어리더는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다. 개발자에게 심리적인 안정과 행복을 주는 존재다. 오래 전에 나는 치어리더에 가까운 관리자와 일한 적이 있다. 기술적인 문제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답답했는데, 같이 일하는 것이 편하고 즐거워서 열심히 일했다.
치어리더는 스스로 코딩을 할 수 없지만, 개발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심리적으로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등을 파악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개발자의 행복이 곧 회사의 생산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개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관리자는 개발자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장애물이다.
관리자는 외롭고 불안하다. 코딩에서 멀어져서 불안하고, 올라갈 곳이 보이지 않아서 막막하다. 나이는 어중간하게 들어가고,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기기도 애매하다. 위에서 내려오는 요구는 점점 많아지는데, 아래에서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부하직원들이 힘들게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허브가 아닌데 허브 행세를 하기가 어렵고, 의사결정의 주체가 아닌데 주체인 척 하기가 버겁다. 만성피로 같은 불안한 심정 때문에 혹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빈약한 권력을 휘둘러보기도 한다. 허탈한 몸짓이다.
이런 걱정과 불안이 오래 가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관리자라는 직종은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관리자가 수행하는 반복적인 일들은 조만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다. 혹은 아예 필요성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관리자는 사라지겠지만 리더와 치어리더는 남는다. 그래서 불안에 사로잡힌 관리자들을 위한 서바이벌 가이드는 바로 이것이다. 코딩을 시작하거나 치어리딩을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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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길은 그것뿐이다. 자기 손에 쥐어진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것을 권력으로 착각하는 관리자, 코딩을 할 줄 모르는 관리자, 개발자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리자가 설 땅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남극의 얼음이 녹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 관리자라는 직책 주변에 묻어 있는 설탕은 권력이 아니라 그대를 무능하게 만드는 독약이다. 다른 핑계 대지 말고 당장 코딩을 시작하라. 코딩하는 관리자만 살아남는다.
필자는 최근 그동안 써왔던 칼럼을 기반으로 임백준의 대살개문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대살개문'은 대한민국을 살리는 개발자 문화를 줄인 말이다. 개발 문화와 관련해 공유하고 싶은 내용과 생각을 담았는데, 칼럼 독자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