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지 거인 EMC가 핵심 저장매체의 무게 중심을 디스크에서 플래시로 옮길 뜻을 천명했다. 이제 디스크 대신 플래시가 기업 데이터센터용 주(primary) 스토리지 인프라의 주역이 되리란 전망에서다.
당장 디스크를 다 버리는 건 아니지만 장기적 관점에선 올플래시를 대세로 인정한 셈이다. 이 관측은 앞서 님블스토리지, 바이올린메모리, 퓨어스토리지같은 스타트업에서도 강조한 바 있었지만, 굴지의 다국적 대기업 EMC에서 그 대세를 공인했다는 점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EMC는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 간담회에서 플래시 기반의 스토리지 제품을 앞세운 '현대적인(modern) 데이터센터 전략'을 통해 이를 분명히 했다.
현장에 자리한 김경진 한국EMC 대표 발언 가운데 인상적인 대목을 옮겨 본다. 15년간 정체된 하드디스크의 속도가 현대적인 데이터센터로의 혁신에 발목을 잡고 있었단 메시지가 핵심이다.
"이런 말을 내가 하면 위험할 수 있지만, EMC는 애플이 나오기 전의 소니였다. EMC 하드웨어 기술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단추와 기능이 복합됐다. 그 집약된 기술 중 하나가 15k (RPM) 디스크 장비다. 나온지 15년 됐다. 한편 IT 기술 주기상 2년마다 CPU가, 1년마다 메모리가 새로 나온다. 두배씩 빨라지고 두배씩 커지면서. 가격은 절반으로. 15년이면 가격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용량은 얼마나 늘었는지 알 수 있다. 여러분의 개인용 디스크 저장장치 용량은 이제 2TB가 흔하다. 그런데 하드디스크 속도는 (빠르다는 게) 15k에 고정돼 있다. 더 빠르게 하고 싶지만, 그러면 장치의 소비전력과 발열이 늘어난다. 이런 장비를 쓰면 데이터센터 운영하는 입장에서 채산이 안 맞는다. (IT기술 혁신주기 동안) 다른건 다 바뀌었는데, 데이터센터는 (하드디스크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즉 EMC는 플래시가 디스크의 대안이라는 입장이다. 플래시메모리가 빠른 반도체 기술 발전의 수혜를 입고 기업용 데이터센터 스토리지 시스템을 위한 저장매체로 급부상했다는 논리다.
김 대표에 이어 장윤찬 한국EMC 프리세일즈 총괄 전무가 현대적인 데이터센터 전략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진행했다. 요약하면 신규 인프라에는 컨버지드인프라를 비롯한 신기술을, 기존 인프라에는 디스크의 역할을 대체할 플래시를 투입하라는 얘기다.
"EMC는 '컨버지드인프라' 제품으로 (사후 시스템 구축 작업이 불필요하게) 사전 구성된 시스템을 제공한다. 사전 구성에 소프트웨어(SW)까지 포함했다. 문제 발생시 지원 창구도 EMC 한 곳이다. 크게 핵심업무 안정성, 유연한 확장성, 신속 구축성, 3가지 목적에 대응하는 3가지 제품군을 선택해 인프라를 구성할 수 있다. …(중략)… 기존 인프라는 어떻게 효율 극대화할 수 있을까. 서버에 비해 스토리지 변화는 좀 늦다. 하드디스크는 굉장히 오래된 기술이다. 기계장치 특성상 잠재적 장애요인을 많이 품었다. 비싸다던 SSD 얘기가 요새 다르게 들려 온다. 올하반기면 하드디스크 가격 이점이 급격히 소멸해 SSD 가격이 그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갈 거라 한다. 현대적인 데이터센터에 크게 중요하게 작용할 변수다."
조만간 올플래시만으로도 하드디스크 못지 않은 경제성을 기대함직하다는 얘기다. 장 전무는 이 발언과 함께 현대적 데이터센터 전략의 5개 축을 제시했다. 그중 1번이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성능'을 얻게 해 줄 플래시 기술 도입이었다. 그는 본사가 지난달말 첫선을 보인 간판 고성능 스토리지 시스템 'V맥스 올플래시' 시리즈와 PCIe 인터페이스를 응용한 신모델 'DSSD D5'도 소개했다.
V맥스 올플래시는 삼성전자 트리플레벨셀(TLC) 3D V낸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를 탑재한 범용 외장형 스토리지시스템이고, DSSD D5는 다른 공급업체의 낸드플래시 칩을 채택한 NVMe 표준 기반 PCIe 플래시카드를 탑재한 보기드문 형태의 외장형 스토리지시스템이다. V맥스 올플래시가 기존 디스크 스토리지 운영환경에서처럼 다양한 데이터관리 서비스를 지원하는 범용 스토리지라면, DSSD D5는 데이터관리 서비스의 중요성보다 고도의 '즉시성'이 강조되는 환경을 겨냥했다.
한국EMC 측은 이날 현대적인 데이터센터를 새로 만들 수 있는 수단으로 제시한 컨버지드인프라 시스템에 한해서 좀 다른 입장을 보였다. 외장형 스토리지 시스템들은 고성능 쪽부터 올플래시 구성을 밀 계획이지만, 컨버지드시스템은 올플래시, 하이브리드플래시, 디스크 등 구성 중 선택을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또 아이실론같은 NAS 장비나 ECS 어플라이언스 등은 플래시 도입에 따른 변화와 거리를 뒀다.
■디스크스토리지 로드맵 격변 예고
V맥스 올플래시의 핵심 메시지는 '모든 트랜잭션 워크로드에 올플래시를 우선 적용'하라는 것.
그간 V맥스는 EMC가 선두였던 세계 외장형 디스크스토리지 시장에서 최고 성능과 품질을 자부하는 간판 브랜드였다. 그러나 간담회에서 V맥스의 입지는 새로 소개된 V맥스 올플래시의 향상된 성능, 절감되는 상면과 전력을 비롯한 총소유비용(TCO)을 강조하기 위한 비교 대상일 뿐이었다.
EMC 공식 발표엔 이런 제품 전략 변화의 진수가 담겼다. 이전까지 EMC의 저장매체 구성 전략은 기대 성능과 가격당 저장용량을 견줘 가면서 디스크와 플래시를 혼용하는 '하이브리드플래시'였다. 전사적으로 올플래시스토리지를 전면에 세우면서 디스크스토리지 제품은 그 뒷줄로 밀려난 형세다.
V맥스 올플래시가 맡게 될 역할은 EMC가 2012년 사들인 올플래시스토리지 '익스트림IO(XtremIO)'와는 일부 겹치지만 구별된다. 장 전무는 "기존 엔터프라이즈 업무 변화의 최소화를 원한다면 V맥스 올플래시 적용을 선호할 것"이라며 "익스트림IO는 단위업무별 대응에 더 알맞고 복잡한 하이엔드스토리지만의 인터페이스와 서비스 요구사항의 다양성을 다 지원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익스트림IO는 당시 EMC의 디스크 중심 전략을 보완하는 수단이었다. V맥스 올플래시는 보완보다는 기존 기술 대체의 선봉장이다. V맥스 올플래시의 등장을 통해 향후 EMC가 올플래시스토리지 중심으로 핵심 제품군을 개편해 나갈 것을 점칠 수 있다. 당분간 기존 디스크 기반 제품군도 팔리겠지만, 그 로드맵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도 관건이다.
■DSSD D5, NVMe 기반 고성능 올플래시로 차별화
신모델 DSSD D5의 핵심 키워드는 '고성능'이다. PCIe 기반 플래시스토리지 표준 인터페이스인 NVMe를 채택해, SSD 형태의 저장장치를 탑재한 플래시스토리지 대비 빠른 읽기 및 쓰기 속도를 지원한다.
이상훈 한국EMC 이사의 기술 발표를 통해 제시된 주요 활용 사례도 고성능 데이터베이스(DB)와 데이터웨어하우스(DW) 그리고 하둡파일시스템(HDFS)을 위한 데이터노드, 고객 전용 애플리케이션이나 실시간 분석 솔루션을 위한 스토리지 인프라 등이다. 서버부착형스토리지(DAS)로 분류되는 PCIe 플래시카드 기반 내장스토리지의 대체 수요를 노린 듯하다.
이 이사는 DSSD D5를 여타 블록스토리지와 같은 방식으로 쓸 수 있는 외장형 스토리지시스템이라고 밝혔다. 다만 블록스토리지를 연결하기 위한 인터페이스가 파이버채널(FC)이 아닐 뿐이라고 했다. 시스템에 탑재된 플래시카드가 패브릭포트부터 서버까지 직접 PCIe로 연결된다는 설명이다. 기업에서 이걸 쓰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고칠 필요는 없으며, 제품에 제공되는 전용 API를 통해 I/O 핸들링을 한다든지 하둡 플러그인을 통해 HDFS 스토리지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3D V낸드 기반의 SSD를 탑재한 V맥스 올플래시와 달리, DSSD D5는 삼성전자 기술을 품지 않았다. 일단 데이터 저장장치로 SSD가 아니라 PCIe 기반 자체 규격 모듈인 플래시카드를 사용한다. 이 플래시카드에 납땜되는 플래시메모리 칩은, 외신 보도에 따르면 기업용 멀티레벨셀(eMLC) 낸드다. EMC 측은 이걸 삼성전자가 아니라 다른 업체 2곳으로부터 공급받았다고만 언급했다.
■V맥스 올플래시 다음은 'VNX 올플래시'?
현장 분위기상 EMC가 향후 선보일 신제품은 기본적으로 플래시 기술을 염두에 둔 결과물일 가능성이 강하게 암시됐다. 나머지 기존 디스크 기반 제품에 관한 전략도 물론 당분간 병행되겠지만, 장기적으론 플래시 영역에 흡수 내지 소멸할 공산이 커 보였다.
한국EMC 임원들은 이날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EMC 본사는 조만간 또다른 외장형 올플래시스토리지 제품군을 출시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EMC에겐 고성능 디스크스토리지 V맥스와 별개로 중견 시장을 겨냥한 디스크스토리지 'VNX' 시리즈가 있다. V맥스 올플래시는 기존 V맥스의 설계를 올플래시에 최적화한 결과물이다. VNX의 설계를 올플래시에 최적화해 만든 '뭔가'가 나옴직하다.
현대적인 데이터센터 전략을 발표한 장 전무의 프리젠테이션 자료 가운데 언뜻 지나간 11번째 슬라이드가 이를 암시했다. 문제의 장표는 '모든 업무에 올플래시를 적용합니다'라는 문구 아래 DSSD, 익스트림IO, VNX, V맥스 등 제품별로 데이터서비스 성격 및 지연시간 기준 성능을 축으로 한 그래프를 보여 줬다.
그래프에 배치된 다른 제품 표기는 통상적인 브랜드 문자만을 쓰고 있는데, 유독 VNX는 'Unity(VNX)'라는 문자열로 표기돼 있어 흥미로웠다. 문제는 EMC가 한 번도 VNX 제품군에 이런 브랜딩을 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해당 슬라이드가 EMC에서 제공하는 업무 영역별 올플래시 제품군의 배치도에 해당한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유니티는 향후 출시될 VNX 올플래시 버전과 관련돼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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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데이빗 굴든 EMC 정보인프라 부문 최고경영자가 이미 1개월전 실적 발표 때 컨퍼런스콜에서 예고한 바 있다.
그는 "1분기에 주 스토리지 영역에 배치될 '플래시 기반 V맥스(V맥스 올플래시)'를 내놓고, 2분기 중급 계층의 플래시 스토리지 신제품도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EMC는 다음 분기에 디스크버전 VNX를 대체할 올플래시 버전의 VNX를, 어쩌면 유니티라는 이름으로 선보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