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가려던 페북, '식민주의자' 낙인 찍히나

"반식민주의는 재앙" 글 때문에 인도인 분노

홈&모바일입력 :2016/02/11 17:33    수정: 2016/02/11 17:4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도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난하다. 공들여 추진해 왔던 무료 인터넷 보급 운동이 벽에 부닥친 데 이어 ‘식민주의 발언’으로 민족 감정까지 건드린 모양새다. 페이스북 얘기다.

인도 통신규제위원회(TRAI)는 지난 8일(이하 현지 시각) 페이스북이 추진하고 있는 무료 인터넷 보급 운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프리 베이직 앱’ 공급을 통해 인도인들이 공짜로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공짜 인터넷 보급 운동은 페이스북이 공들여 추진해 온 사업이다. 당연히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하루 뒤인 9일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을 정도다.

마크 앤드리센. [사진=위키피디아]

■ "왜 반식민주의 멈추지 않느냐?"

하지만 여기까진 오히려 약과였다. 페이스북을 진짜 곤혹스럽게 만든 사건은 그 다음날 발생했다.

실리콘밸리 대표 투자자이자 페이스북 이사회 멤버인 마크 앤드리센이 지난 10일 인도의 ‘프리 베이직 앱’ 거부 조치를 식민주의에 비유한 글을 트위터에 올린 때문이었다.

앤드리센은 “반식민주의는 수 십 년 동안 인도인들에게 경제적으로 재앙이었다”면서 “왜 이제 (반식민주의를) 멈추지 않느냐?”는 글을 올렸다. 인도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프리 베이직 앱’을 거절함으로써 경제적인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됐단 취지인 셈이다.

앤드리센은 이 글을 올린 직후 인도에 있는 트위터, 페이스북 이용자들로부터 융단 폭격을 당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인도인들의 아픈 과거를 정면으로 건드린 글이었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사진=씨넷)

포브스에 따르면 앤드리센의 글이 “인터넷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것 같다”는 비판들이 쏟아졌다. 또 다른 이용자는 “식민주의가 우리에겐 좋다는 얘기 같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마크 저커버그 CEO가 직접 나섰다. 저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앤드리센이 어제 인도에 대해 쓴 글은 페이스북이나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전혀 대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저커버그는 또 “우리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도와주고 자신들의 미래를 형성할 목소리를 주려고 한다”면서 “하지만 미래를 형성할 때 과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특히 인도의 과거와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 앤드리센 "인도를 굉장히 숭배한다" 진화나서

‘사고’를 친 앤드리센도 곧바로 진화에 나섰다. 앤드리센은 트위터에 “어제 저녁 인도 정치와 경제에 대해 잘못된 발언을 했다”면서 “나는 식민주의에 100% 반대하며, 독립과 자유를 100%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나는 인도란 나라와 인도인들을 굉장히 찬양하는 사람이다”고도 했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식민주의 파동’은 쉬이 가시질 않을 전망이다. 앤드리센의 글이 올라오기 전부터 페이스북의 ‘프리 베이직 앱’ 운동을 동인도 주식회사에 비유한 글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인도 주식회사는 인도 식민지 시대의 토대를 닦은 영국 무역회사다.

마크 앤드리센의 트위터 페이지.

앤드리센의 글이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 정책 때문에 고통을 겪은 인도인들의 아픈 과거를 건드린 셈이다.

포브스는 “앤드리센은 인도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한 동안 경제가 가라앉은 부분을 언급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부분조차 논점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도는 영국 식민지 시절 경제 성장률이 1%에 불과했다는 것. 사회주의조차 그 때보다는 더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했다고 포브스가 현지 전문가를 인용 보도했다.

■ '인도 역사에 무지한 페북' 비판 많아

인도 역사에 대해 이토록 무지한 집단이 내놓는 공공 정책 처장을 얼마나 믿을 수 있겠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고 포브스가 전했다.

‘인도로 가는 길’이란 영화가 있다. 1984년 데이비드 린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E. M. 포스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수작이다.

이 영화는 식민지 인도의 인종 차별 문제를 솜씨 있게 건드리면서 많은 감동을 자아냈다. 서로 마음을 나누려하지만 식민주의의 깊은 골 때문에 오해가 빚어지는 모습도 잘 그려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인도로 가는 길' 포스터.

인도인들에게 식민지 경험은 그만큼 아픈 과거다. 앤드리센의 성급한 트윗은 인도인의 생채기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잘못 올린 트윗 하나로 페이스북을 궁지로 몰아넣은 마크 앤드리센은 인터넷 혁명의 주춧돌을 놓은 인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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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4년 사상 첫 그래픽 기반 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를 개발한 주역인 것. 당시 20대였던 마크 앤드리센은 자신이 만든 넷스케이프를 상장시키면서 하루 아침에 청년 갑부가 됐다.

이후 투자자로 변신한 그는 ‘앤드리센 호로위츠’란 투자회사를 통해 실리콘밸리의 수 많은 IT 기업들을 키워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