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문 케이블방송사 ACN을 인수한 루카스는 편집 간부들이 못 마땅하다. 베테랑 앵커 윌 맥허보이와 ‘이상주의자’ 매켄지 맥헤일이 21세기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ACN의 보도 방식을 확 바꾸길 원했다. 인스타그램, 팟캐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뉴미디어 툴을 도입할 것을 요구한다. 시청률 경쟁 역시 중요했다. ACN을 이끌고 있는 찰리 스키너에게 “2등은 의미 없다”고 단언한다.
그 뿐 아니다. 루카스는 고리타분한(?) 추적 보도보다는 아이폰으로 무장한 명민한 시민 저널리스트에 더 애정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ACN 저널리즘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찰리 스키너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지난 2014년 12월 종영된 미국 드라마 ’뉴스룸’ 시즌3에 나오는 얘기다.
■ 저커버그 친구 휴즈, 4년 만에 항복 선언
‘뉴스룸’ 시즌3가 방영될 무렵 현실 속 뉴스룸에서도 비슷한 소동이 벌어졌다. 미국의 진보 매체 ‘뉴 리퍼블릭’에서 편집 간부와 기자들이 대거 회사를 떠났다. 실리콘밸리 출신 젊은 사주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당시 갈등의 진원지는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인 크리스 휴즈였다. 마크 저커버그의 하버드 동창생인 휴즈는 2004년 페이스북을 공동 창업했다. 3년 동안 페이스북에 몸담은 휴즈는 2007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선거운동 캠프에 동참하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페이스북 창업 지분 덕에 휴즈는 20대부터 갑부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포브스에 따르면 휴즈의 재산은 4억5천만 달러에 이른다.
‘청년 갑부’ 휴즈는 29세이던 지난 2012년 3월 ‘뉴 리퍼블릭’을 인수했다. ‘뉴 리퍼블릭’은 한 때 진보 매체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그 무렵엔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휴즈는 ‘뉴 리퍼블릭’을 인수하면서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뉴 리퍼블릭’의 오랜 전통에 디지털 혁신 유전자를 접목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휴즈는 ‘뉴 리퍼블릭’ 인수 직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멋진 말을 하면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당시 휴즈는 “돈 벌기 위해 인수한 게 아니다”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맥락적 저널리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며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디지털 DNA’로 무장한 젊은 갑부의 이 말에 ‘뉴 리퍼블릭’의 많은 기자들은 열띤 환호를 보냈다.
하지만 휴즈의 인내심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14년에 접어들면서 편집국을 조금씩 압박하기 시작했다. 고리타분한 정치 기사보다는 ‘소셜 입소문’에 적합한 생활 기사를 생산할 것을 주문했다.
그 해 10월엔 야후 뉴스 총책임자인 가이 비드라를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앉혔다. 사실상 비즈니스 친화적 매체로의 전환을 선언한 셈이었다. 결국 2014년 말 20여 명에 이르는 기자와 편집 간부들이 대거 이탈했다.
갈등의 대가는 참혹했다. 기자 대량 이직 사태 이후 웹 트래픽이 50% 이상 줄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난 해 내내 개선되지 않았단 점이다.
콤스코어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11월 순방문자는 230만 명 수준에 머물렀다. 역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8% 감소한 수치다. 인수 당시 제시했던 장밋빛 비전 중 어느 것 하나 실현된 게 없었다.
견디다 못한 크리스 휴즈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11일(현지 시각) ‘뉴 리퍼블릭’을 매각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사실상 항복 선언이었다.
드라마 ‘뉴스룸’ 시즌3가 종영한 지 13개월 만에 현실 속 ‘뉴스룸’이 파국을 맞은 셈이다.
■ 뉴스룸의 미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날 매각 발표를 하는 휴즈의 글이 화제가 됐다. 그는 이날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오늘날처럼 빠르게 진화하는 환경에서 전통 조직을 디지털 미디어 회사로 전환하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과소평가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또 “엄청난 시간과 열정, 그리고 2천만 달러를 웃도는 돈을 쏟아붓고 나서야 ‘뉴 리퍼블릭’에 새로운 리더십과 비전이 필요할 때가 됐단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로써 전통 저널리즘과 실리콘밸리 DNA 간의 불편했던 동거는 4년을 채우지 못하고 파경을 맞이하게 됐다.
다시 드라마 속 ‘뉴스룸’으로 돌아가보자. 때마침 터진 ‘뉴 리퍼블릭’ 대량 이직 사태 때문에 더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졌던 드라마 속 ‘ACN 뉴스룸 사태’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타협할 줄 모르던 루카스는 결국 전 사주인 레오나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덕분에 찰리의 갑작스런 죽음 외엔 다들 제자리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다.
현실속 뉴스룸이 패배한 바로 그 지점에서 드라마 속 ‘뉴스룸’은 행복한 결말을 맞은 셈이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드라마 속 ‘뉴스룸’도 해피엔딩이라고 보긴 힘들다.
루카스가 갑작스럽게 ACN 뉴스룸의 기존 방침을 지지하는 쪽으로 바뀌긴 하지만 그들의 위치는 여전히 보잘 것 없다. 시청률은 4위에 머물고 있으며, (드라마에 명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실적 역시 그다지 훌륭해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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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뉴스룸’ 역시 미국 전통 언론의 좋았던 시절이었던 1970년대에 대한 ‘복고풍 사랑 고백’ 같은 어정쩡한 결말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리스 휴즈가 ‘뉴 리퍼블릭’을 포기했다는 소식에 살짝 가슴이 아팠다. 그건 어쩌면 전통과 혁신의 결합이 생각보다는 힘들다는 진리를 깨달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지속 가능한 성장’과 혁신이란 두 마리 토끼는 돈만으로도, 경험만으로도 잡을 수 없는 먼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