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는 지난 26일(현지 시각)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을 올렸다. 페이스북 인공지능(AI) 연구팀이 0.1초 만에 바둑을 둘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저커버그는 그 글에서 “(바둑 연구 팀의) 티안 유안동은 내 자리에서 불과 60m 떨어진 곳에 있다”면서 “난 AI 팀을 가까이 두고, 수시로 그들의 작업 상황을 듣는 걸 좋아한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이틀 뒤인 28일 오전 1시37분에 또 다시 비슷한 글을 올렸다. 저커버그는 그 글에선 “2016년 최고 도전 과제는 집안 일과 내 작업을 도와줄 수 있는 간단한 AI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저커버그의 글이 올라온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구글 인공지능 시스템인 알파고가 유럽 바둑 챔피언을 꺾었다는 사실이 공식 발표됐다. 구글 알파고 훈련과 바둑 대국 결과를 담은 논문이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 바둑은 인공지능-머신러닝 연구의 종합판
당연히 궁금증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저커버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공지능과 바둑 연구와 관련된 글을 올린 게 구글의 성과가 전혀 관련이 없는 걸까?
미국의 디지털문화 전문 매체인 와이어드가 이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사를 게재했다. 저커버그가 인공지능이나 바둑 연구 관련 글을 올린 것은 구글의 대단한 업적을 다분히 의식한 결과란 것이다.
와이어드는 “컴퓨터가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많은) 바둑 경기를 이기기 위해선 계산만 하는 것으론 부족하다”면서 “인간의 통찰력과 직관까지 익혀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 결과를 응용할 경우엔 이미지를 구분하고 말을 하거나 통역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언어 자체를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인공지능 연구의 종합판이나 다름 없다.
저커버그가 구글의 연구 결과가 공식 발표되기 전에 페이스북의 바둑 연구 결과를 열정적으로 소개한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와이어드가 지적했다.
‘네이처’ 같은 학술지들은 주요 논문을 공식 발표하기 전에 기자들에게 미리 자료를 제공한다. 물론 자료를 받은 기자들은 ‘네이처’가 공식 발표할 때까지는 보도를 해선 안 된다. 이번에도 ‘네이처’는 구글의 바둑 연구 논문을 공식 발표하기 이틀 전에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따라서 저커버그가 26일 바둑 연구 관련 글을 올릴 때쯤엔 페이스북 내 연구자들도 ‘네이처’ 논문을 미리 입수했을 가능성이 많다. 당연히 저커버그도 구글의 발표 사실을 알고 있었단 얘기다.
저커버그가 구글의 대단한 연구가 공식 발표되기 전에 페이스북의 바둑 연구와 AI 관련 연구에 대한 글을 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게 와이어드의 설명이다.
■ 아직은 페이스북보단 구글이 좀 더 적극 투자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바둑 연구에 열을 올리는 건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 기술의 총화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딥러닝을 이용해 SNS에 올린 사진에서 얼굴을 구분하는 기술이나 구글의 자랑인 번역기는 모두 인공지능과 딥러닝을 활용한 프로젝트다. 이런 기술들은 심층신경망(DNN)을 바탕으로 한다. DNN은 인간 두뇌 안에 있는 신경망과 유사한 구성으로 돼 있는 일종의 인공지능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구글과 페이스북의 바둑 연구 역시 DNN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결국 바둑을 정복할 경우엔 페이스북 발전을 견인했던 인공지능을 좀 더 세련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두 회사가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구글이 이 분야에선 확연하게 앞서 있다. 기본적인 물량 투입 규모 면에서 페이스북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지난 2014년 인공지능 전문기업 딥마인드를 인수했다. 딥마인드는 이번에 유럽 바둑 챔피언을 꺾은 알파고를 개발한 기업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구글의 바둑 연구팀들은 엄청난 성과를 이뤄냈다.
■ 저커버그, AI 연구자들에게 메시지 던진 셈
와이어드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연구 수준에 아직 그 정도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바둑 연구에 딥마인드만큼 많은 자원을 쏟아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바둑 연구를 한 시간도 구글에 비해선 훨씬 적다.
그런 상황에서 저커버그는 왜 구글의 연구 결과를 의식한 듯한 글을 올린 걸까?
와이어드는 “두 회사 간 AI 경쟁은 단순히 누가 바둑을 더 잘 두느냐는 단순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요한 건 두 회사 중 어느 쪽이 더 뛰어난 AI 전문 연구자들을 손에 넣느냐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나는 초대형 경쟁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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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저커버그로선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AI 연구자들의 커뮤니티에 뭔가 메시지를 던질 필요가 있었다는 게 와이어드의 분석이다. 자신들이 AI 쪽에 엄청난 관심을 보인다는 걸 보여줘야만 앞으로 고급 인력들을 스카우트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와이어드는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바둑 연구 책임자인 티안 유안동과의 거리를 언급한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프로젝트란 걸 만천하에 알리는 메시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