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로비스트’였던 톰 휠러가 한 때 자신이 대리했던 업계를 정조준한 강력한 정책을 발표했다. 연방통신위원회(FCC) 역사상 가장 강력한 망중립성 규칙을 제안하면서 통신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5일(현지 시각) 공개한 망중립성 제안은 인터넷 서비스사업자(ISP)를 타이틀2로 재분류하는 것이 골자. 그 뿐 아니다. 무선 사업자들에까지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적용했다.
오바마 행정부 초대 위원장이던 제나초우스키의 ‘오픈인터넷 규칙’을 훨씬 뛰어넘는 초강력 규정이다.
취임 당시 ‘통신업계 로비스트’란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았던 휠러. 하지만 그는 FCC 위원장으로 지명된 지 불과 1년 3개월 여 만에 화려하게 변신하면서 ‘오픈인터넷 수호자’로 거듭났다.
■ 젊은 시절 인터넷 사업 통해 '개방된 망' 중요성 인식
여기서 잠시 시간을 되돌려 보자. 때는 2013년 11월. 오마바 대통령이 줄리우스 제나초우스키 후임으로 톰 휠러를 FCC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그러자 여기 저기서 호된 비판이 쏟아졌다. 압권은 리드 헤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가 내뱉은 말이다.
“1934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첫 수장으로 조셉 케네디를 임명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존 F. 케네디의 아버지인 조셉 케네디는 대표적인 주가 조작 및 투기꾼으로 꼽히던 인물.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런 인물을 주가 조작 감시 기관의 첫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당시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통신업계 이익을 대변하던 인물이 규제기관 수장으로 임명된 것을 꼬집은 말이었다.
휠러 역시 임명되자마자 급행회선 허용 방침을 밝히면서 “케이블업계 로비스트다운 결정”이란 비판에 시달렸다. 연방항소법원 판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조치이긴 하지만 예전 활동 이력과 맞물리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휠러는 어떻게 이런 변신을 할 수 있었을까?
이날 망중립성 규칙을 발표하면서 와이어드에 기고한 글에서 일부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일단 역사적인 배경. 휠러는 인터넷이 초기에 눈부신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개방 정책을 강제한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1960년대에 네트워크 접속 개방 의무를 부여하지 않았을 경우엔 지금같은 인터넷을 향유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그 이전까지만 해도 AT&T는 다른 회사 장비로 자기 망에 접속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런 업체들의 횡포를 차단했기 때문에 지금같은 발전이 가능했다는 것이 톰 휠러의 주장이다.
젊은 시절 인터넷 사업했던 경험 얘기도 했다. 휠러는 1980년대 중반 NABU란 가정용 컴퓨터 네트워크업체를 경영했다. 당시 NABU는 케이블 회선을 통해 가정에 데이터를 고속 전송해주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스티브 케이스도 AOL을 운영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NABU는 AOL보다는 몇 수 위로 평가받았다. 당시 NABU는 케이블 회선을 이용한 반면 AOL은 전화선에 의존했다.
톰 휠러는 “전화망은 개방된 반면 케이블망은 폐쇄적이었다. 그걸로 얘기가 끝났다”고 평가했다. 휠러 얘기대로 NABU는 쓸쓸히 몰락한 반면 AOL은 한 때 미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했다.
■ 고객 요구에 충실한 유형
그것만으론 휠러의 변신이 설명되지 않는다. 취임 직후인 지난 해 초에는 급행 회선을 허용하는 ‘약한 망중립성 규칙’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휠러는 “1996년 통신법 706조를 이용해 ‘상업적 합리성(commercial reasonableness)’을 결정하는 것만으로도 인터넷 개방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털어놨다.
그 해 1월 항소법원 판결 때문에 나온 고육책이긴 했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규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경우 소비자가 아니라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것으로 이해될 소지가 있었다”면서 “그래서 오픈 인터넷을 보호하기 위해 타이틀2 규정을 제안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씨넷의 평가도 흥미롭다. 씨넷은 휠러가 고객의 요구에 철저히 봉사하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케이블업계 로비스트로 활동할 당시 고객 요구에 충실했던 휠러는 이젠 미국인 전체가 고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망중립성 원칙을 밀어부치고 있다는 것이 씨넷의 분석이다.
톰 휠러 위원장이 본격 활동을 시작한 직후 미국 IT 전문 매체인 더버지는 FCC를 중심으로 한 회전문 인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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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FCC 위원장 출신인 마이클 파월이 케이블방송통신협회(NCTA) 수장으로 가고 NCTA 수장 출신인 휠러가 FCC 위원장으로 온 부분을 꼬집었다. 물론 그 기사는 망중립성 원칙이 제대로 서기 힘들다는 우려 섞인 논조였다.
하지만 지금 휠러는 이 모든 우려를 불식하고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밀어부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망중립성 공방이 더 관심을 끄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