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망중립성 태풍' 방향 바꾼 4대 주역

작년 중반까지 '약한 규제' 우세…서서히 강경 규제로

일반입력 :2015/02/04 17:47    수정: 2015/02/05 10:23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인물1- 코미디언 존 올리버

어린이 돌 볼 사람(babysitter)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들개를 고용한 격이다.

지난 해 6월. 코미디언인 존 올리버는 약 13분 동안 유머스런 연설을 했다. 연설 무대는 자신이 진행하던 HBO 시사 풍자 프로그램 ‘라스트 위크 투나잇(Last Week Tonight).’ 공격 대상은 톰 휠러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었다.

그의 독설은 신랄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케이블 업계를 위해 로비 활동을 했던 사람이 지금은 그 곳을 규제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어린아이 돌 볼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들개를 고용한 것과 똑 같은 상황이다.”

그는 또 “여기 먹을 게 있으니, 제발 우리 아이를 잡아먹진 말아달라”고도 했다.

이 코미디를 이해하려면 당시 상황을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 전인 5월15일. FCC는 전체 회의에서 톰 휠러 위원장이 마련한 망중립성 초안을 3대 2로 통과시켰다. FCC는 7월 15일까지 두 달 동안 전체 회의를 통과한 망중립성 초안에 대한 의견을 접수하고 있었다.

당시 초안은 ‘급행회선(fast lane)’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들이 돈을 많이 내는 콘텐츠 사업자들에겐 특별 서비스를 해 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통신망에도 ‘빈부 격차’가 생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물론 FCC는 “급행료를 지불한 업체에게 특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방안이 가능할 경우에도 급행회선을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법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였다.

올리버가 독설을 퍼부은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는 아예 “FCC의 망중립성 안에 대한 의견을 보내달라”고도 요구했다.

이후 FCC의 망중립성 원칙에 대한 반대 여론은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2개월 여 의견 접수 기간 동안 100만 건을 웃도는 많은 의견들이 접수된 것. 이 중 반대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존 올리버가 ‘약한 망중립성 반대’ 움직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긴 힘들다. 하지만 인기 시사 풍자 프로그램 진행자의 한 마디가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하다.

■ 인물2- 리드 헤스팅스 넷플릭스 CEO

지난 해 2월. 넷플릭스가 버라이즌과 상호접속 계약을 체결했다. 자사 콘텐츠 전송네트워크와 망사업자 간 네트워크 연결 지점을 좀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해 추가로 접속료를 지불한 것이다.

그리고 2개월 뒤인 지난 해 4월. 버라이즌과도 같은 계약을 체결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비롯한 인기 영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던 넷플릭스는 그무렵 “서비스 속도가 떨어졌다”는 고객들의 불만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불만을 달래기 위해 전송 속도를 높이기 위해 통신사들에게 급행료를 지불했다.

넷플릭스가 컴캐스트, 버라이즌 등과 맺은 것은 망 연결점 속도를 높여주는 ’피어링 계약’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고속도로와 지방도로 간의 연결지점을 확대해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망중립성 이슈’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일종의 상호접속 계약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 생각은 달랐다. 고객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급행료를 내긴 했지만 통신사들의 횡포에 불만이 적지 않았다. 특히 컴캐스트 같은 망사업자들이 고의로 상호접속 지점의 혼잡을 초래한 뒤 추가 접속료를 뜯어냈다는 것이 넷플릭스 생각이었다.

실제로 넷플릭스가 컴캐스트와 상호접속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동영상 스트리밍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져 이 같은 의구심에 힘을 실어줬다.

이 대목에서 미국 망중립성 공방의 또 다른 주역이 등장한다. 바로 리드 헤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다.

리드 헤스팅스는 컴캐스트와 피어링 계약을 체결한 직후 “인터넷이 진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플랫폼으로 남아 있기 위해선 망중립성 원칙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약한 망중립성으론 개방적이고 경쟁적인 인터넷을 보호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컴캐스트 같은 ISP들이 넷플릭스 같은 업체들에게 접속료를 부과하는 횡포를 막을 수 있다는 게 헤스팅스의 주장이었다.

■ 인물3-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지난 해 11월. 이번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해 11월 10일 FCC가 ISP를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2로 재분류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현재 미국에선 ISP들은 타이틀1인 정보 서비스 사업자로 분류돼 있다. 이 분류를 타이틀2로 바꿀 경우 유선 전화 사업자와 같은 강력한 규제를 받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망중립성을 둘러싼 공방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FCC는 독립적인 기관이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하면서도 톰 휠러 위원장이 추진하고 있는 재분류 방안에 힘을 실어줬다.

‘인터넷 선거운동’에 힘입어 재선까지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망중립성 원칙에 대한 강력한 지지자였다.

오바마는 FCC가 지난 해 5월 내놓은 ‘약한 망중립성 원칙’에 대해 적잖은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독립 기관인 FCC 정책에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꺼려 왔던 것. 그러다가 FCC 쪽에서도 ‘강한 망중립성’ 쪽으로 입장을 바꾸자 곧바로 지원 사격에 나섰다.

참고로 망중립성은 지난 2003년 컬럼비아대학 교수인 팀 우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망 사업자의 독점적 횡포를 제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원칙이다. 흔히 망중립성의 양대 원칙은 '단대단(end to end)'과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로 알려져 있다.

'단대단 원칙'은 망의 양 끝단에 있는 이용자에게 직접 선택권을 준다는 걸 의미한다. 이 원칙엔 이용자를 연결해주는 망은 중립적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반면 커먼 캐리어는 연원이 좀 긴 편이다. 멀리 동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마을에 있는 유일한 여관, 항만 등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물론 독점 사업자의 횡포를 경계한 원칙이라고 보면 된다.

커먼 캐리어는 미국 서부 개척 초기 철도 사업에도 중요하게 적용됐다. 철도 사업자들 역시 ‘커먼 캐리어’ 의무를 졌다. 이게 유선 전화 시대로 넘어오면서 통신사업자를 규제하는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게 됐다.

■ 인물4- 톰 휠러 FCC 위원장

지난 2013년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톰 휠러를 FCC 위원장으로 지명했다. 그러자 IT 업계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톰 휠러는 그 직전까지 케이블업계의 로비스트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휠러는 미국 케이블방송통신협회(NCTA)와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등의 대표를 역임했다.

리드 헤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휠러 임명 직후 “1934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첫 수장으로 조셉 케네디를 임명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혹평했다.

존 F. 케네디의 아버지인 조셉 케네디는 대표적인 주가 조작 및 투기꾼으로 꼽히던 인물.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런 인물을 주가 조작 감시 기관의 첫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당시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휠러 역시 임명되자마자 급행회선 허용 방침을 밝히면서 “케이블 업계 로비스트다운 결정”이란 비판에 시달렸다. 연방항소법원 판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조치이긴 하지만 예전 활동 이력과 맞물리면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놀라울 정도다. 조금씩 입장을 바꾼 끝에 마침내 한 때 자신이 봉사했던 케이블업계를 정면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초고속 인터넷 기준을 대폭 상향 조정하면서 케이블업계의 목을 한 차례 졸랐다. 현재 주력 서비스인 DSL을 사실상 고속 인터넷 범주에서 제외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ISP를 타이틀2로 규제하는 방안을 관철할 경우 케이블 업계는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휠러의 변신을 놓고 말들이 적지 않다. “케이블 로비스트가 어떻게 저런 행보를 보일 수 있을까?”란 질문이 제기될 정도다.

이에 대해 씨넷은 크게 두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그 중 하나는 휠러의 먼 과거. 씨넷에 따르면 휠러는 38세이던 1984년에 NABU 네트워크란 인터넷 업체를 운영했다. NABU는 시절을 10년 이상 앞선 인터넷 기업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시장에선 스티브 케이스가 운영하던 아메리칸 온라인(AOL)에 처참하게 패배했다. 휠러는 당시 패인을 “AOL을 개방형을 지향한 반면 NABU는 폐쇄 네트워크를 고수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 때 경험이 망중립성 철학에 그대로 녹아들었다는 게 씨넷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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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휠러의 일하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고객의 요구에 철저히 봉사하는 스타일이란 것. 케이블업계 로비스트로 활동할 당시 고객 요구에 충실했던 휠러는 이젠 미국인 전체가 고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망중립성 원칙을 밀어부치고 있다는 것이 씨넷의 분석이다.

이제 FCC는 케이블업계를 정면 겨냥한 망중립성 원칙을 준비하고 있다. 과연 휠러가 옛 고객들의 심장에 제대로 비수를 꽂을 수 있을까? 현재까지 분위기로 봐서는 과감한 행보를 뗄 것이 유력해 보인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