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 사원으로 시작해 CEO 자리까지 오르는 과정을 다룬 직장 판타지는 언제나 특별하다.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 처럼 비현실적이지 않고, 드라마 미생 처럼 잔혹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아니다. 유독 우리나라는 부의 세습이나 가족 경영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보통의 경우 CEO가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창업 혹은 승진이다.
이희성 인텔코리아 사장은 후자의 경우다. 1991년 인텔코리아에 입사해서, 2005년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올해로 취임 11년째다. 단언컨데, 입사 14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오르는 것 보다 10년 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그것도 오너가 아닌 IT업계의 외국계 기업 지사장 자리라면 말할것도 없다.
이쯤되면 그가 남다른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매년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과적으로 보면 당연히 성공한 CEO에게 그런 점이 없을리가 없다. 지난해에는 리더십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리더스 로드’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을, 지금까지 태어나서 살아온 인생과 직장 생활에 대입해 담담하게 풀어냈다.
이 책은 장르가 불분명하다. 단순한 여행기나 자서전은 아니며, 성공학 도서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까지 그가 어떻게 CEO 자리에 올랐고, 그 자리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자기고백에 가깝다. 그 누구보다 승승장구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시행착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무엇보다 자신의 리더십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실제 삶은 영화처럼 아름다운 모습만 편집되지 않 듯, 이 책도 그가 살아온 인생을 결코 과장하거나 부풀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 사장을 직접 만나 책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인생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다.
■전산실 말단에서 CEO가 되기까지…
“저는 베이비부머 시대에 마지막 라인에 걸쳐있는 세대입니다. 그 중에서도 약간 자유분방한 끼가 있었어요. 얽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이 사장은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그리 넉넉치 못한 집안에서 자란 평범한 50대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해왔다. 대학 시절 연극에 푹 빠져서 학업을 게을리 했지만, 당시 가장 앞선 통신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군대에서 통신병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금성전자에 손쉽게 입사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곧 박차고 나왔다. 좀 더 도전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라는 곳도 많았고 자신감도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직장이 당시에는 생소하기만 했던 외국계 기업인 인텔코리아다. 가진 것이라곤 기술밖에 없었던 그가 처음 맡았던 업무 역시 전산 네트워크 관리였다. IT매니저라는 거창한 직함을 달았지만 쉽게 말하면 전산실 말단 직원이었던 셈이다. 당시에는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기면 사무실 바닥이나 책상 아래 빼곡하게 깔린 네트워크 선로를 하나씩 점검해야 했는데 문자 그대로 바닥을 박박 기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하루는 당시 인텔코리아 사장님 집에 있는 컴퓨터를 고치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사장님이 앞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물었지요. 냉큼 영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고 나니 영업 부서로 발령이 나더군요.”
IT분야에서 영업은 단순히 노력이나 인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장의 강점은 다른 영업사원에 비해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높았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더욱 설득력 있는 영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굳이 미화를 하지 않아도, 사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이름을 바꿀 정도로 통신 네트워크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던 시절이었다. IMF를 모르고 지나쳤을 정도로 영업이 잘 됐다. 운도 충분히 따라준 셈이다.
PC가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에 인텔은 별로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주력 사업이 CPU 보다는 인텔이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에서 주로 업무를 맡아왔다. 잘 될 때도 있었고 잘 안될 때도 있었다. 어차피 CPU가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인텔의 비즈니스 구조상, 새로운 사업이 실패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물론 담당자 개인에게는 다소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커리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책임을 져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텔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고, 이 사장도 별로 개의치 않고 회사에서 주어진 도전 과제를 수행해 나갔다. 결국 그는 말단 전산실 직원으로 시작해 입사 14년 만에 CEO 자리를 차지했다.
■CEO 10년 비결은 역동성
요즘 같은 시대에 거대한 조직의 CEO 자리를 10년이나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CEO 입장에서 보면 이것 역시 또 다른 직장 판타지다.
그럼에도 이희성 사장은 여전히 정력적이다. 할리데이비슨을 끌고 인텔 CPU를 발표하던 그가 어디 변하겠는가. 워커홀릭으로 유명한 업무량도 그렇지만, 때로는 회사 업무는 뒷전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왕성한 대외 활동까지 펼치고 있다.
3년 전 안식 휴가를 받아 실크로드로 떠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얼마 전에는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을 다녀왔다. 물론 그냥 놀러간 것은 아니다. 산악인들에게 히말라야 등반을 안내하다 희생된 세르파 자녀들을 위해 지어진 학교를 기증하기 위해서다. 이밖에도 그는 매년 수많은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왕성한 활동 덕분에 대외적인 직함도 많다. 인텔코리아 대표 이외에도 UN SDGs 한국지부 회장과 한국 외국인기업협회(FORCA) 회장도 역임하고 있다.
매년 꾸준히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멘토링 행사에 참석하고, 그때 만난 멘티들과 수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말뿐인 멘토링 활동이 아닌 것이 최근에는 맨티들이 자발적으로 출판기념회 성격의 북콘서트 자리를 마련주었다고 한다.
“멘토링 활동을 하면서 멘티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인생의 교훈이나 노하우가 아니라 지금까지 나 라는 인간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였습니다. 매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예 책으로 일목요연하게 풀어보자는 생각을 하게된거죠.”
그는 멘티들에게 본인이 롤모델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딱히 존경했던 위인도 없다. 저마다 각자의 길이 있고 이야기가 있으며 철학이 있다는 것이다. 또, 저마다 성공에 대한 다른 척도가 있기 때문에 타인이 성공하는 법을 알려줄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인생 후반전
좀 더 현실적이면서도 직설적인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앞으로 천년만년 인텔코리아 사장을 계속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텔이라는 글로벌 기업에 더 높은 자리에 도전할 수도 있고 혹은 정년이 다 되어 은퇴를 준비할 수도 있다.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솔직담백했다.
“처음에는 미국 본사나 아시아 본부에서 일을 하려고 MBA도 하고 커리어 관리도 했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컨트리 매니저 역할을 하다보니 내가 인텔에 최고의 벨류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 밖 대답이었다. 내심 인텔이라는 글로벌 기업에서 한국인 최초로 본사 요직에 도전하겠다는 대답을 기대한 터였다. 그만큼 일찍 인정을 받아 젊은 나이에 인텔코리아 CEO 자리에 올랐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충분히 현역인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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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묘한 설득력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10년 넘게 인텔코리아 CEO를 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머무른 것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그만큼 그는 가식이 없다. 책에 담겨있는 실크로드 모험기도 그랬다. 지프차 대신 스타렉스가 등장하고, 일정은 전혀 지켜지지 않으며, 결국 공안에 발이 묶여 허무하게 여정이 끝난다.
“앞으로 5년에서 7년 후면 인텔에서도 퇴직을 하겠지요. 지금까지 삶이 전반전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후반전이 시작될 겁니다. 그때는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싶어하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중 한 곳이 일을 맡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구글의 래리 페이지가 에릭 슈미트를 영입했듯 말이에요. 또, 연극이나 공연 기획도 하고 전 세계를 누비며 오지탐험이나 사회봉사도 할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일만 했다면 이제는 어느 것 하나 놓칠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