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오랜 병폐를 청산하지 못한 2014년이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올해 국내 SW업계는 어느 때보다 파괴력있는 외부 요인을 마주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국내 SW업계에 영향을 미칠 이슈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중국의 세계 진출과 미국의 인력 시장 변화다.
작년 중국은 알리바바의 나스닥 상장과 샤오미를 비롯한 중국 3대 휴대폰업체의 약진, 텐센트의 급성장 등으로 세계 IT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표면상으로 드러난 중국 IT회사의 약진 이면엔 SW 역량의 급성장이 있었다.
중국의 SW 인력은 질과 양에서 전세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픈소스SW 분야의 현지 개발자가 눈에 띄게 약진하고 있다. 알리바바, 샤오미, 텐센트, 화웨이, 레노버 등 중국 IT업체의 급성장 속에 중국인 개발자의 세계에 대한 영향력도 함께 커지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이민법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오바마의 이민법 개혁안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분야 석박사학위 취득자의 미국 취업허가증과 영주권 취득 기준을 완화하고, 벤처투자이민을 유도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국의 이민법 개혁안이 실현될 경우 미국은 세계의 우수 SW 인력을 빨아들일 수 있게 된다.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 중국 SW 개발인력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한국의 우수 SW 인력은 미국 등지로 빠져나가는 현상 속에 체질 약화가 우려된다.
■소프트웨어 대국으로 급성장한 중국
중국은 최근 수년 사이 SW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매년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대학교에서 10만명씩 배출된다. 다롄, 선전 등은 이미 미국 실리콘밸리를 위협할 IT메카로 성장한 지 오래다.
중국의 오픈소스 진영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까지 기트허브 방문자 비율에서 중국은 미국, 인도에 이어 3위다. 아파치소프트웨어재단 중국 개발자 방문자 수 역시 3번째로 많다. 오픈스택 프로젝트의 중국 개발자 영향력은 미국에 이어 2위다.
오픈소스에 대해 중국 정부조차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작년 말 중국정부는 미국 IT기술을 수년내 모두 중국 자체 솔루션으로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 중심에 오픈소스SW가 있다.
중국의 SW산업은 인도의 뒤를 잇는 아웃소싱 시장으로 세를 불렸다. 수년전부터 국내 대형 IT서비스 업체가 중국 현지 개발자를 대규모로 채용하고 원격관리하는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다롄 소프트웨어파크는 일본 IT회사의 아웃소싱으로 성장했다.
국내 인터넷, 소프트웨어 회사의 중국 개발자 채용도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작년 중국을 자주 왕래했던 우리나라 SW업체 대표는 “중국의 소프트웨어 역량은 이미 한국을 저만치 앞서 있다”며 “국내 대형 인터넷, 소프트웨어 회사 다수가 기획만 한국에서 하고, 실제 개발을 중국 현지 개발자에게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SI로 컸던 중국이 자국 내 대형 IT기업의 성장과 함께 핵심 개발역량도 급성장하는 모습이다. 개발자 사이에선 한국과 중국 사이의 SW 경쟁이 끝난 게임이란 인식도 퍼지고 있다.
알리바바그룹의 오픈소스 프로젝트 사이트인 ‘알리바바테크’와 ‘타오코드’ 등에 등록된 프로젝트가 각각 100개와 373개를 넘었다. 오픈스택 같은 클라우드 인프라 기술의 경우 화웨이, 텐센트, 알리바바 같은 회사는 시범프로젝트 사용자 규모만으로 미국을 압도한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 열리는 오픈소스 컨퍼런스에서 중국 기업의 개발 및 사례 발표는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스타트업 창업도 미국 만큼 활발하다. 화웨이, 텐센트 등을 키워낸 선전이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통한다. 선전지역에 벤처캐피털회사가 몰리고, 우수하고 젊은 인력이 창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SW의 급성장 비결은 거대한 내수시장이다. 중국판 트위터로 불리는 웨이보는 서비스를 중국인만 쓰지만, 사용자 규모로 트위터를 넘어선다. 알리바바가 미국 나스닥에서 페이스북 시총을 뛰어넘은 건 규모를 가늠할 수 없는 중국 내수 시장 덕이었다. 스타트업의 경우 내수시장 덕에 쉽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또 다른 한 SW업체 대표는 “과거 중국인 개발자는 싼 인건비에 대규모로 일정 수준 이상의 개발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여겨졌었다”며 “지금은 중국 개발자 인건비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면, 개발 수준은 양적, 질적으로 한국보다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의 경우 개발자 처우가 구조적으로 악화돼 있고, IT산업의 위축으로 인력 기반이 급속히 부실해졌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 한국이 중국의 IT하청 시장으로 전락할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더해 최근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 개발자가 SW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중국 개발자의 인건비 상승 추세 속에 동남아 지역 개발자가 낮은 인건비로 채용할 수 있는 대체인력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미국, 전세계 개발자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미국의 유명 벤처투자자 중 한명인 폴 그레이엄은 최근 블로그에서 미국 외 지역의 특출난 개발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수한 개발자의 이민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면서, 좋은 개발자를 많이 보유해야 전세계에 대한 미국의 기술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미국 IT회사들의 요구사항과 궤를 같이 한다. 현재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는 이민법 개혁안에 페이스북, MS, 구글 같은 회사들은 적극적으로 지지의사를 밝히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민법 개혁안은 미국 내 대학교에서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등의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외국인에게 취업허가증을 발급하고, 영주권도 쉽게 취득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숙련 기술자 역시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게 한다.
취업비자인 H1-B의 경우 연간 한정된 수만 발급했지만, STEM 전공자에 한해 무제한으로 발급하도록 한다. 미국 IT기업과 대학교 간 연계로 운영되는 STEM 전공 과정도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 이민법 개혁안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이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중간선거 결과 공화당이 국회 상하원을 모두 장악함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추진력이 약화된 탓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과 행정부가 이민법 개정을 강행할 의사를 밝히고 있고, 공화당도 이미 상원에서 한번 동의했던 터라 실현 가능성이 사라졌다 보긴 힘들다.
미국 이민법 개혁안이 시행되면 한국 개발자의 미국 진출도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취업비자 발급이 전보다 쉬워지는 만큼 그동안 국내 SW 인력의 미국 진출에 가장 큰 걸림돌이 하나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미 적지않은 한국인 개발자들이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개발자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고, 현지 기업의 한국인 개발자 채용에 대한 수요도 꽤 높다고 한다. 개발자 사이에 영어 학습 열풍도 불고 있다는 전언이다.
한국의 중소 SW업체 대표는 “가장 우수한 개발자들은 미국으로 가려 하고, 여러 사정으로 한국에 남아야 하는 개발자는 대기업에 취업하려 한다”며 “지금도 우수한 개발 인력을 채용하기 힘든 상황인데, 그 현상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인력 기반이 약화되는 현상은 2000년대 후반부터 급속도로 진행됐다. 국내 시장이 SI 분야로 쏠리는 가운데, 개발자 처우 문제는 다단계 하도급, 업무강도에 비례하지 않는 급여체계 등 구조적 병폐를 해결하지 못하고 악화일로다.
개발자란 직업이 한국에선 3D로 인식되지만, 미국 같은 국가는 대우받는 직업으로 여겨진다. 어느 정도 역량을 가진 개발자라면 당연히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미국 취업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
중국과 미국의 행보 속에 한국도 나름의 길을 가고 있다. 국내 기업 다수는 부족한 SW인력을 호소하면서 개발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외친다. 정부도 이에 호응하며 개발자 양성 계획을 발표한다.
그 이면엔 개발자를 공산품 찍어내듯 키워낼 수 있는 물건, 혹은 부품으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정부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은 패자부활을 용인하지 않는 풍토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무책임하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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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W 생태계를 둘러싼 외부요인과 내부요인은 몇가지 처방전으로 해결하거나 대응하기 힘든 문제들이다. 통제력을 미칠 수 없는 거대한 변화가 한국 SW를 흔드는 가운데 시장 붕괴 우려가 고개를 든다.
국내의 한 개발자는 SW는 제조업과 달리 경험의 축적이 매우 중요한 분야라며 우수한 인력을 한국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드는 국내 IT시장 환경이 경험의 축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