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유통개선법(단통법) 시행 이후 오히려 비싸진 휴대폰 가격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법을 만든 국회 및 정책당국과 제조사간의 가격 거품 논란은 논쟁의 차원을 넘어 진위 공방으로 옮겨붙는 양상이다.
'네트(Net)가' '공급가' '출고가' '실구매가'는 물론 '보조금' '장려금'이라는 전문 용어가 넘쳐난다. 소비자의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다. 가격 거품 논란은 비단 휴대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수입차, 화장품, 아웃도어 용품 등 거품 논란은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가격 거품에 불이 붙은 이유는 인구 수보다 많은 5천600만명의 필수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 1위 제품인 휴대폰이 자국민을 '호갱(호구+고객)님' 취급하는 일은 더욱 참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 양 측의 주장엔 얼마나 일리가 있는 것일까. 과연 누구의 주장이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가격 거품의 첫 포문은 지난 12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문병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국내 스마트폰 공급가격이 OECD 최고 수준이라는 내용의 자료 공개하면서 열었다. 이튿날 13일엔 같은 당 우상호 의원이 '네트(Net)가격' 대비 출고가가 지나치게 비싸게 책정되어 있다며 '출고가 뻥튀기'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를 지켜 본 참여연대는 이통사와 제조사를 사기혐의로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말 많은 단통법 시행 직후 시작된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 연이은 휴대폰 가격 자료 공개에 국내 스마트폰 소비자들이 전 세계적인 ‘호갱’이 됐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국내 1위 스마트폰 가격이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문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공급가격은 비슷하다고 해명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가격은 각 국가별, 통신사별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시장 환경과 하드웨어 스펙 차이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국내용 제품과 해외용 제품의 가격은 유사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우 의원이 주장한 '출고가 뻥튀기'에 대해선 네트가가 공장 출고가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네트가는 이통사가 대리점에 제품을 공급하는 가격인 출고가에서 제조사의 장려금과 이통사의 보조금, 대리점 마진 등을 제외한 금액을 뜻한다. 총원가(재료비+생산비+간접비), 제조사 순익 등으로 구성된다. 제조사는 마케팅, 순익을 최소화할 경우를 가정해 네트가를 산출한다.
■국내 스마트폰 출고가 해외보다 비싼가
논쟁의 핵심은 국내 스마트폰 출고가가 지나치게 비싸냐다. 문병호 의원은 해외대비 국내 제품 가격이 비싸다고 주장했으며 우상호 의원은 최고 70만원에 달하는 네트가격과 출고가격의 차이를 스마트폰 출고가 거품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문 의원의 주장과 관련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4의 미국, 중국 출고가격을 밝히며 국내 출고가가 해외 대비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문 의원은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의 OECD 국가 스마트폰 출고가격을 비교해 자료를 배포했다. 일반폰의 경우 지난해 국내 공급가격이 230.56달러로 일본 200.72달러에 비해 비싸고 고가폰 공급가격 역시 512.24달러로 미국 505.38달러에 대해 높은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문 의원은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 1인당 GNI(국민총소득)은 2만2천670달러로 OECD 34개국 중 25위 수준이지만 단말기 공급가격은 1위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단말기 공급가에 거품이 많고 단말기 제조사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삼성전자가 제시한 갤럭시노트4의 국내 출고가격은 미국, 중국과 큰 차이가 없다.
삼성전자 자료에 따르면 갤럭시노트4의 국내 출고가격은 95만7천원이다. 미국은 95만4천원, 중국은 92만3천원이다. 미국과는 3천원, 중국과는 3만4천원 차이가 난다.
사양을 비교해보면 국내용 갤럭시노트4가 해외 제품 대비 고사양이다. 국내 제품은 지상파DMB가 탑재됐다. 모뎀칩은 광대역LTE-A를 지원한다. 미국에서 출시되는 제품은 지상파DMB는 있지만 모뎀칩은 LTE-A만을 지원한다. 중국에서의 갤럭시노트4는 지상파DMB 없이 LTE-A만 지원한다. 부품원가 차이 등을 반영하고 중국이 더 대량으로 유통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출고가가 비싸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제조사-이통사, 마케팅·마진 포함된 출고가 적정한가
우상호 의원 자료의 경우는 논란의 여지가 더 많다. 우상호 의원은 네트가격과 출고가격을 비교해 제조사들의 폭리를 주장하고 있다.
우 의원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 출시한 갤럭시U의 네트가격을 21만9천200원으로, 출고가격을 91만3천500원으로 주장했다. LG유플러스는 89만1천900원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대리점 마진은 50만원이나 붙어있다.
삼성전자는 우 의원 자료에 대해 “네트가는 이통사가 대리점에 제품을 공급하는 가격에서 이통사가 운영하는 보조금, 유통망 장려금, 마진 등을 제외한 금액”이라며 “이통사는 가입자 유치를 위해 소비자 지원금, 대리점 마진으로 구성된 보조금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네트가는 출고가에서 이통사의 보조금을 제외한 금액일 뿐 공장에서 출고되는 가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네트가격의 개념보다 더 중요한 쟁점은 대리점 마진이 적정한 수준이냐는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영업이익, 대리점, 이통사 유통원가, 유통마진을 포함한 문제라 계산하기 더 복잡하다.
대리점 마진으로 표시된 50만원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이통사, 제조사, 대리점과의 협의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는 저비용으로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의 변화도 수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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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조사들의 영업이익률만을 놓고 봤을 때는 일각의 주장처럼 제조사들이 폭리를 취하는 수준으로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무선사업부 영업이익률이 3분기 8%대로 주저앉을 전망이고 LG전자는 회복해서 3% 수준이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출고가가 80만~90만원대인데 최근 스마트폰 부품원가를 살펴보면 30만원이 넘어가고 있다”며 “여기에 각종 개발비, 마케팅비, 마진 등을 더한 출고가는 비싼 수준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