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에만 관심을 갖다보니, 애플을 혁신적인 디자인 기업으로 만든 주역인 조너선 아이브에 대해 지금까지는 별로 아는게 없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런만큼, 최근 읽은 '조너선 아이브'라는 책은 조너선 아이브라는 인물에 대해 보다 깊게 알게 해준 것은 물론 스티브가 잡스가 아닌 다른 내부 관계자의 관점에서 애플이 쓴 반전 드라마를 보게 해준 좋은 계기였다.
책속에 비친 조너선 아이브는 기자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보였다.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보다는 조용하게 앉아 디자인 작업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일거라 여겼는데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서나 다른 부서와의 협업을 이끌어내는 측면에서나 나름 내공이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다른 부서 수장과 싸울때는 확실하게 싸울 줄 아는 투사로서의 면모도 갖췄다. 애플에서 아이맥과 아이폰 개발을 주도했던 존 루빈스타인은 조너선 아이브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체계적인 프로세스도 조너선 아이브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다. 디자이너하면 웬지 프로세스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조너선 아이브는 대단히 프로세스 지향적이다. 프로세스를 뒷받침해주는 각종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책에 따르면 애플 디자인팀이 진행하는 주간 회의는 주로 디자인 프로세스를 공고히 하는 자리가 된다. 한주에 두세 차례씩은 디자인 팀 전원이 주방 테이블에 모여 3시간 정도 브레인 스토밍 시간도 갖는데, 열외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브레인 스토밍 시간에 나온 아이디어는 뭐든 자료로 남기는게 팀의 관례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의 아이디어를 언제든 다시 살펴볼 수 있는 스케치북은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다. 스케치북은 이후 애플과 삼성의 소송에서 쟁점이 되기도 했다.
조너선 아이브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원없이 펼쳐보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잡스가 복귀하기전 애플은 디자인이 아니라 엔지니어링 중심의 회사였고 아이브의 디자인 철학도 먹혀들지 않았다.
디자인보다는 수익이 우선하던 시절이었다. 엔지니어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브는 결국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마음까지 먹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다. 돌아온 잡스는 아이브에게는 확실한 스폰서였다. 잡스의 지지속에 아이브는 아이맥과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신화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디테일에 집착했던 잡스는 마찬가지로 디테일에 광적으로 집착한 아이브에 최적화된 경영자였다. 애플 일부 직원들이 보기에 아이브가 디자인을 생각할때는 상관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안팎에서 보기에 애플은 잡스가 아니라 산업 디자인이 지배하는 회사였다. 디자인에 대해 잡스와 아이브가 공감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아이브에 최적화된 CEO였던 잡스는 이제 애플에 없다. 잡스의 자리는 MBA 출신에 공급망 관리 전문가인 팀 쿡이 넘겨받았다. 팀 쿡이 애플에 합류한지 7개월도 되지 않아 애플 재고는 30일분에서 6일분으로 줄었고 99년에는 2일분만 남았다. 재고 관리 시스템에서 업계 최고로 꼽히는 델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쿡은 이러한 운영 개선 덕분에 애플의 손실을 막고, 이윤율을 회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인정받았다.
경력만 놓고보면 팀 쿡은 관리형 리더다. 아이브나 잡스만큼 디자인과 디테일에 집착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아이브에 최적화된 CEO였던 잡스와 팀 쿡은 누가봐도 스타일이 다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조너선 아이브가 팀 쿡 리더십 아래서도 예전과같은 역량을 발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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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틈만 나면 아이브가 이끄는 디자인 조직을 찾았다고 한다. 다른 부서 직원들은 차별받는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팀 쿡도 틈만나면 그러고 있을까?
'조너선 아이브'를 다 읽고 나니 뜬금없이 아이브와 팀 쿡은 서로 코드가 맞는 사람들인지 무척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