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통신의 선구자 마르코니와 경쟁자들
이태리의 발명가 마르코니는 거대한 불꽃 방전기와 기계식 수신기를 이용해 무선통신시대를 열었다. 이는 발명가들의 경쟁에 불을 붙였다. 송수신기들을 작고, 간단하게 만들어 라디오방송의 대중화를 가능케 한 핵심기술은 증폭기능을 하는 진공관이었고 발명가는 리 드 포리스트였다. 발명은 마르코니가 최초로 대서양 건너편 영국 콘월 폴두로부터 보내진 전파를 캐나다에서 수신한 1901년 12월12일로부터 5년이 지나 이뤄졌다. 이것이 실용화돼 본격 보급되려면 그로부터 또 14년을 기다려야 했다.
효과적인 무선송수신기 발명경쟁에 뛰어든 발명가 리 드 포리스트는 무선통신의 아버지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874~1937), 2극진공관을 만든 앰브로즈 플레밍(John Ambrose Fleming, 1849~1945), 최초로 음성 방송을 성공시킨 레지널드 페선던(Reginald Aubrey Fessenden, 1866~1932)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그의 발명품인 진공관 증폭기는 결국 무선통신의 선구자 마르코니의 무선통신기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동시에 자신이 꿈꾸던 '좋아하는 음악을 멀리까지 보내는 방법'을 실현한 것이기도 했다.
유선전신,전화의 시대에 전선없이 메시지를 보내는 무선전신은 1887년 세상에 처음으로 그 가능성을 드러냈다. 이 해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물리학자 헤르츠가 전자기파(전파)를 발생시켜 최초로 그 존재를 확인했다. 그는 전기를 담는 이른 바 ‘라이덴’병으로 충전한 두 개의 금속공 사이에 전기를 흘려 불꽃을 만들었고 이는 전파를 발생시켰다. 불꽃간격의 크기가 파장의 길이를 결정했다.
이 발견에 최초로 눈뜬 사람은 20살된 이태리 청년 마르코니였다. 그는 1894년 헤르츠 부음기사를 읽고 그의 발명품을 이용한 전파송수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헤르츠 사망 후 1년이 채 안됐을 때 마르코니는 작동되는 무선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듬해 그는 이태리 자신의 집 빌라 그리포네의 뜰에 무선송수신기 상자를 내놓고 무선송수신의 한계를 알아보려는 실험을 실시했다.
마르코니가 성능개선을 거듭해 만든 불꽃 방전 송신기의 전파는 이후 모스부호 전파송신의 기본으로 자리잡았다. 그가 만든 무선송신기는 헤르츠의 실험을 그대로 재현해 낸 것이었다. 돌돌 감은 코일뭉치(충전코일) 두 개를 만들고 이 사이에 작은 공간이 생기도록 한 채 고정된 놋쇠 공 두 개를 배치한 것이 전부였다.
전선으로 전기를 내보내자 공 두 개 사이의 공간에서 전기불꽃이 일면서 공기중에 전자기파를 내보냈다. 헤르츠가 시범을 보였던 대로 이 변압기에서 만들어진 전자기파는 작은 수신기에도 불꽃을 일으켰다.
1896년 그는 영국으로 건너 갔다. 런던의 외사촌형 헨리 제임슨 데이비스(Henry Jameson-Davis)는 마르코니의 발명품을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을 초대했고 때마침 그곳에 스코틀랜드의 발명가이자 엔지니어인 캠벨 스윈턴(Alan Archibald Campbell-Swinton,1863~1930)이 있었다. 그는 런던에 있는 영국 체신부 기사장인 윌리엄 프리스(Sir William Henry Preece, 1834~1913)에게 편지로 추천장을 써주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편지를 보냅니다. 마르코니라는 젊은 이태리인이 그동안 연구해 온 새로운 무선전신체계를 시작하려고 얼마전 이 나라로 왔습니다. 외견상 그것은 헤르츠파를 사용하고 로지의 코히러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이 계통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룬 업적을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경(Sir,卿)이 그를 만나 직접 그의 말을 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보기에 그의 연구는 틀림없이 경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에게 실례가 되지 않길 바라며...”이 해 12월12일 프리스는 토인비홀에서 유선전신에 관한 강연을 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짧은 거리에서 통신하기 위해 긴 전선을 사용해야 하는 자신의 시스템대신 마르코니 시스템이 유망하다고 판단한 그는 마르코니의 무선통신 시스템을 소개했다.
마르코니가 모스부호기를 누르자 선으로 연결돼 있지도 않은 반대편에 있는 무선수신기에서 종이 울렸다. 청중들은 이 처음보는 신기한 기기의 모습에 영문을 몰라 하다가 환호로 답했다.
이듬 해인 1897년 마르코니의 무선통신 특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등장했다.
마르코니의 외사촌인 제임슨-데이비스는 제임슨위스키 사업과 연결된 옥수수상인들로부터 10만파운드(오늘날 화폐가치로 500만 파운드)를 모금했다. 그는 이 자금으로 무선전신회사(Wireless Telegraph and Signal Company)를 차렸다.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설립된 이 회사는 특허권을 사는 대신 마르코니가 필요한 자금을 대주었다. 마르코니는 1파운드짜리 주식 6만주와 특허대금 1만 5000파운드, 그리고 연구비로 2만5000파운드를 받았다. 1897년 무선전신회사가 문을 열었다.
마르코니는 이 전선없이도 움직이는 전기에너지를 현실적으로 응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첫 번째 아이디어는 전신장치에 회로를 붙여서 이 움직이는 에너지 (라디오파)를 통신체계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신호 송신을 위해 키를 누르면 콘덴서에 축적된 고압전류가 흘렀고 전기는 방전봉 사이에서 청황색 불꽃을 일으키며 전자기파를 발생시켰다. 그는 에너지 강도를 높이기 위해 변압기 뒤에 작은 구부러진 금속판을 설치했다. 그러자 전파가 반사판에 반사돼 훨씬 강력하게 전파를 송신할 수 있었다. 그는 수신장치 개선에 나섰다. 당시 무선전기회로의 전파 검출기(검파기)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장치는 듬성듬성 쇠줄이 감겨있는 작은 유리관인 코히러(Coherer)였다. 그는 안테나에 연결된 전선을 코히러 양쪽 끝 금속막대에 부착시켰다. 전기에너지가 방사되면 수신안테나에 포착돼 일시적으로 코히러의 쇠줄에 자기를 발생시켰다. 이렇게 생긴 자기의 영향으로 쇠줄이 한 데 뭉치면서 전기회로가 만들어졌다. 이 때 기기 안의 전기저항력이 급속하게 떨어졌고 회로 전체의 전류는 크게 높아졌다.
코히러 수신기는 근처에서 보내진 불꽃방전기 소리를 약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수준으로 들려주었다. 마르코니는 코히러(Coherer) 전파수신기 안테나 선에 벨과 프린터를 연결했다. 안테나가 외부의 신호를 받으면 벨은 점이나 선 신호를 때렸고 이때마다 코히러 쇠줄들이 밀착됐고, 모스부호는 프린터로 찍혀 나왔다.
1901년 12월12일 마르코니가 캐나다에서 대서양을 건너온 희미한 전파를 수신하는데 성공한 장치는 이처럼 헤르츠의 초보적이고 조악한 전파 발생기에서 시작돼 날로 개선됐다.
■리 드 포리스트
무선통신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마르코니의 경쟁자들은 북미 대륙에 있었다.
1899년 예일대에서 무선전파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부리부리한 얼굴의 청년이 있었다. 청년의 첫 직장은 시카고에 있는 AT&T의 통신기기 제조 자회사인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전화교환대의 와이어를 감는 일이었다.
리 드 포리스트(Lee de Forest, 1873~1961)란 이름의 이 청년은 빈 시간을 그대로 보내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온갖 장치를 조립했다가 분해하고 다른 발명가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들을 시험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느 날 그는 회사 연구실에서는 전화교환기를 새로운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음악과 시를 좋아하는 청년 과학자 리 드 포리스트는 어느 날 이렇게 중얼거렸다.
“노래 소리를 1천마일 밖에 있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일보다 더 멋진 일은 없을 거야!”
당시는 유선전화와 유선전신의 시대였다. 모든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통신수단은 전봇대를 통해 유선으로만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선통신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발명활동은 청년 드 포리스트를 초창기 무선통신 발명의 선구자로 이끌었다.
신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자신의 무선통신시스템으로 마르코니와 성능 우위 경쟁을 하고 있었다.
무선통신의 아버지 마르코니의 유명세는 초기에 단거리 전송에 불과했던 약점많은 송수신기를 개선해 대서양을 건너는 4천200km 장거리 통신까지 이뤄냈다는 점에 있었다. 그것도 단방향 수신에 불과했다. 그때문인지 마르코니는 불꽃방전 송신기의 성능을 개선하는데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르코니는 스파크갭 전송기로 유선통신업체들과 충분히 경쟁해 나갈 수 있었다.
1901년 12월12일 마르코니의 대서양횡단 무선통신 성공, 그리고 이어진 미국요트대회 무선통신 보도 등으로 모스부호를 이용한 무선통신시대는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선통신의 아버지 마르코니가 사용하던 이 무선전송기도 점차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르코니와 달리 무선통신 선구자 가운데 리 드 포리스트는 송신기보다 수신기 개선에 더 신경쓰고 있었다. 아마추어 무선통신사들에게는 주파수를 맞추고 헤드폰으로 가물거리는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무선으로 “뚜뚜” 거리는 소리, 그리고 번갯불 같은 불꽃방전을 통해 멀리서 전해지는 모스부호 전신 신호보다는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했다.
라디오방송을 생각하던 리 드 포리스트의 목표역시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나오는 전파 발신과 수신이었다.
그가 이를 위한 방법으로 착안한 것은 1904년 앰브로즈 플레밍이 발명한 2극 진공관이었다.
■캐나다의 또다른 경쟁자 페선던
북미지역의 또다른 경쟁자는 캐나다 출신의 엔지니어인 레지널드 페선던이었다.
그는 굴리엘모 마르코니와 존 앰브로즈 플레밍 팀이 주도하는 무선통신경쟁의 실질적인 적수였다.
이들은 무선전송기로는 무지막지한 불꽃방전을 내는 스파크갭전송기나 아크갭 전송기를 사용해 유선통신과 성공적으로 경쟁하고 있었다. 사용한 수신기는 공통적으로 프랑스 발명가이자 물리학자 에두아르 브랑리(Edouard Branly)가 만든 코히러(Coherer)라는 부품이었다. 1900년 마르코니가 국제적 명성을 누리는 동안 경험은 많지만 덜 알려진 또 한명의 발명가가 미국 메릴랜드 포토맥 강에 있는 탑 섬에 연구소를 세웠다.
주인공은 캐나다 퀘벡 출신의 발명가인 레지널드 페선던(Regaginld Aubrey Fessenden, 1866~1932)이었다. 1886년 뉴저지 웨스트오렌지에 있는 에디슨연구소에 들어간 그는 1892년에 퍼듀대 전기공학과교수로, 1893년엔 펜실베이니아 웨스턴대(1908년 이후 피츠버그대)교수로 일했다.
그는 1898년 이래 무선통신시스템 연구를 시작해 1899년 피츠버그와 알바니 간 무선통신실험에 성공한 인물이었다.
페선던은 1900년 피츠버그대를 떠나 미국기상청의 해안가 무선전파기지국을 통한 기상정보 전송 가능성을 증명하는 일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의 무선통신기기 발명품 권리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각종 실험을 하게 된다.
그는 연봉 3천달러를 받으며 실험을 지원받는 등 제반 여건을 갖추게 되면서 무선통신 수신기분야에서 커다란 성과를 잇따라 내놓게 된다. 바레타수신기(baretter detector),전해액수신기(electrolyte detector) 등이 이 시점에서 나왔다. 몇 년후 이들은 무선통신 수신기의 표준이 된다.
페선던은 두 개의 신호를 결합시켜 3개의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이미 10년후에 발명돼 무선통신 선국 기술인 이른바 헤테로다인(heterodyne)기술의 원형을 최초로 실험해 보인 인물이기도 했다.
1900년 12월 23일. 페선던은 워싱턴D.C.에서 80km떨어진 메릴랜드 록포인트에서 1.6km떨어진 거리에서 무선통신 송수신을 하는데 처음 성공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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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즈음 마르코니는 영불해협 무선통신성공(1899),대서양 무선수신성공(1901) 등 굵직굵직한 성과를 내면서 무선통신시대를 선도하는 혁명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마르코니는 자신의 발명품, 그리고 상업화할 줄 아는 재능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힘있는 명사의 반열에 올랐다. 이태리 해군을 물론 대서양을 건너는 민간 증기선들은 이 무선전신기술을 채택한 최초의 기업이었다. 여객선과 화물선들은 마르코니의 장비를 이용해 배의 위치를 해안선기지국으로 알려졌고 승객들에게도 전신서비스를 제공했다.
그에 대항하는 리 드 포리스트와 페선던은 더 멀리, 더 또렷한 무선통신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는 가장 강력한 도전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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