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효과의 끈을 놓지 않다
존 앰브로즈 플레밍(John Ambrose Fleming, 1849~1945)은 사촌의 소개로 런던 에디슨전등회사의 자문역을 맡고 있었다. 1884년엔 미국으로 건너가 에디슨을 만났고 그의 신기한 에디슨 효과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이 해 겨울 플레밍은 뭔가 다른 시도를 해 볼 생각을 했다. 그는 에디슨전구로 새로운 실험을 해 보았다. 에디슨은 실험에 직류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백열전구에 교류전류를 흘려보면 어떨까?”
플레밍은 초당 120회 정도 방향을 계속해서 바꾸는 교류전류를 발생시키는 발전기를 전구 필라멘트에 연결했다.
그런데 이 뜻하지 않은 실험은 그에게 놀라운 발견을 가져다 주었다.
앞뒤로 교차하며 필라멘트를 통해 흐르던 교류도 금속접시를 흐를 때는 여전히 방향을 바꾸지 않고 한쪽방향으로만, 즉 직류로 흘렀다. 에디슨전구가 교류를 직류로 전환시킨 것이었다.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에디슨이 이 현상에 대한 특허를 낸 후 이 현상은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플레밍은 이 연구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1889년 12월 에디슨효과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엮은 ‘대기와 고진공 상태에 있는 전극들 간에 보이는 전기방전에 대해’(On Electric Discharge Between Electrodes Temperatures in Air and High Vacua)라는 논문을 런던왕립학회(Royal Society of London)에 제출했다.
■마르코니사의 자문을 맡다
그는 이어 1899년부터 영국 마르코니사(Marconi Company)의 과학 자문을 맡게 됐다.
맨 먼저 요청받은 일은 영국 폴두에서 대서양 너머 캐나다 뉴펀들랜드주의 주도 세인트 존스시까지 4,800km거리에 전파를 보낼 스파크 불꽃방전 송신기를 설계하는 것이었다.
당시 엔지니어들은 무선 송신기로 전파를 발생시킬 때 콘덴서에 축적된 고압전류로 방전봉에 불꽃을 일으켜 전파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1887년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1857~1894)가 처음 만들어 낸 이 불꽃방전 방식이었다. 천둥처럼 같은 ‘딱’ ‘딱’ 하는 굉음과 함께 불꽃방전을 하면서 전신신호를 보내도록 돼 있었다.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
이런 불꽃방식에서 발생시킨 전류는 급속히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다. 따라서 모스신호는 보낼 수 있었지만 음성신호는 보낼 수 없었다. 1901년 12월12일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874~1937)는 세계 최초로 대서양 양쪽을 연결하는 역사적인 무선통신에 성공했다. 캐나다 세인트존스시 수신국에 있던 마르코니는 4,800km 건너편 폴두에서 보내온 세 번 짤각거리는 ‘S’(. . .)신호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2년 후인 1901년 무선통신의 아버지 마르코니가 그에게 새로운 부탁을 해 왔다.
“무선 통신용 송수신기의 성능을 개선해 주십시오.”
당시 무선통신업계에서는 불꽃방전 송신기와 함께 브랑리관, 또는 코히러(Coherer)로 불리던 수신기, 마르코니가 개발한 매기 수신기(Maggies) 등이 무선통신용 전파수신기로 사용되고 있었다. 플레밍은 이들 기기의 전송시간과 수신시간이 오래 걸리고 배위에서처럼 흔들리는 장소에서 수신이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플레밍은 이제 무선통신 신호를 검출하기 위한 정류기용 부품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
그는 당시 수신기로 널리 사용되던 부품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코히러는 1890년 프랑스의 에두아르 브랑리(Edouart Branly,1844~1940)가 가까운 위치에서 스파크를 방출하면 금속가루를 채운 관의 전도율이 바뀐다는 실험 결과에 기반해 만든 전파수신기였다. 유리관속의 금속분말이 전파를 받으면 전류를 통하면서 일렬로 정렬했고, 이 때 유리관 양쪽 끝단자에 연결되면서 길거나 짧은 신호로 보내지는 모스부호를 수신, 인식하게 해 주었다. 마르코니는 1902년 자신이 발명한 자석식 수신기 이른바 ‘매기(Maggies)’를 만들어 무선신호를 검파(수신)하고 있었다. 1894년 원자를 발견한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1871~1937)는 자기코일이 무선파의 검파기가 되는지에 대해 밝혀냈고 마르코니는 이를 응용해 수신기를 만들었다. 그의 자기검파기(자기수신기)는 에디슨축음기에서 빼낸 모터와 꽃다발에 사용되는 코일을 담배상자에 넣어 만들었지만 여러해 동안 훌륭한 효과를 나타냈다. 1912년 침몰한 타이타닉호에서도 사용됐던 원형적인 수신기였다.
■에디슨전구에서 영감을 얻은 2극진공관
플레밍이 효율적인 전파 수신기를 만들기 위해 연구중이던 1904년 10월. 그에게 갑자기 행복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에디슨효과 전구였다.
“그래, 이 특별한 전구가 해답이 될 것 같아.”
플레밍은 이미 미국 에디슨전등회사에 주문했던 14개의 에디슨효과 전구로 실험까지 해 보았다.
그는 에디슨전구를 응용해 기존 무선수신기의 불편함을 해소할 새로운 부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디슨 유리전구는 뜨거운 필라멘트와 분리된 금속이 진공 유리 안에 있을 때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전자수신기에 이 진공관을 사용해도 마찬가지로 교류전파를 직류전파로 바꿔 수신할 수 있게 해 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수 GB 다이크(G B Dyke)를 불렀다.
“다이크, 이걸 테스트해 보세나.”그가 준비한 것은 두 개의 전극(diode)을 포함하고 있는 유리관이었다. 높은 진공상태의 유리관 속에는 필라멘트와 이를 둘러싸는 원통형 금속이 있었다. 내부의 실린더플레이트와 필라멘트는 2번째 전류회로에 붙였다. 그리고 배터리를 연결시키도록 돼 있었다.
플레밍은 이 장치가 전극 두 개 곧 원통과 필라멘트를 갖고 있으므로 2극진공관, 즉 다이오드(diode)라고 불렀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한쪽 금속 필라멘트(캐소드)는 전류에 의해 가열돼 전자를 방출하고 또다른 전극(아노드)은 이에 따른 전자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었다.
놀랍게도 플레밍과 다이크가 진공관과 갈바노미터를 전기회로에 접속시키자 매우 민감한 고주파신호 전류가 교류에서 직류로 바꿔지는 모습(정류)을 보여주었다.
플레밍은 이 내용을 문서로 작성했다. 그리고 가우어가(Gower Street)를 가로 질러 가 영국특허청에 특허출원을 했다. 그는 자신의 열이온밸브(Thermionic Valve)로 불리는 다이오드진공관에 대해 영국특허를 (GB 190424850)를 신청했고 11월17일 특허를 확보했다.
그는 2개의 전극을 가지며 정류기능을 하는 이 진공관을 오실레이션밸브(Oscillation Valve)라고 이름붙였다.
■교류전파가 직류전파로...전자문명의 신호탄
플레밍은 마르코니에게 편지를 써서 이 사실을 알렸다.
“나는 공중으로 전해지는 신호를 거울 갈바노미터와 내 기기(진공관)만으로 수신할 수 있었습니다...아무에게도 이 아이디어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아이디어는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이는 멀리서 보내오는 무선주파수를 당시의 코히러나 자기수신기 방식보다 더 간단하고 정확히 수신할 수 있는 새로운 부품이 발명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진공관은 플레밍밸브(Fleming valve),열이온밸브(Thermionic Valve), 진공다이오드(vacuum diode),열이온관(Thermionic tube),케노트론(kenotron)같은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하지만 플레밍은 자신의 발명기술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이 특허권을 마르코니에게 넘겼다.
그리고 마르코니는 이 진공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플레밍의 발명은 실질적인 무선통신 및 전자 혁명의 가장 중요한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과 다름없었다.
그는 이듬해인 1905년 이 특허에 대해 플레밍밸브(Fleming Valve)란 이름으로 미국특허를 미국특허(US803684)를 받는다. 유리진공관은 비쌌다.
2년도 안된 1906년 조악하기는 하지만 갈레나 광석에 고양이 수염을 맞닿게 해 무선전파를 수신하게 만들어주는 고양이 수염 정류기가 등장했다. 그린리프 휘티어 피커드(Greebleaf Whittier Pickard, 1877~1956)가 만든 이 정류기는 고주파에서는 잘 안통했지만 저주파에서는 잘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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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수염같은 얇은 전선은 갈레나 같은 적절한 반도체성질을 가진 재료 물질 위에 놓이면서 점접촉 방식으로 안테나에서 받아들인 교류전파를 직류로 바꿔주었다.
이런 가운데 또하나의 커다란 혁명적 발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귀 큰 미국인 발명가의 몫이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