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의 백열등 필라멘트재료를 찾아서
1897년 톰슨이 발견한 전자는 이미 1880년대 초 발명왕 에디슨의 전구발명 과정에서 그 존재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1878년 당시 뉴욕같은 대도시의 조명기구는 가스등이었다. 뉴욕주 뉴어크시에서 남쪽으로 9km 떨어진 에디슨전기의 멘로파크 연구소의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전세계 가스주식이 폭락했다.
하지만 정작 에디슨 백열전구를 실현하기 위한 최대 난제는 백열전구에 꼭 필요한 ‘필라멘트’재료를 찾는 작업이었다. 그와 직원들은 탄소, 크롬, 철 ,금 ,붕소,이리듐 등 수십개의 물질들을 골라 다양한 모양, 길이,두께로 필라멘트를 만들었다.
전구개발에 한창이던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이 처음 떠올린 재료는 백금이었다. 금속 가운데 용융점이 가장 높은 것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금은 너무 비쌌다. 조수 업튼이 알아본 결과 12그램에 28달러나 했다. 이대로라면 전구가격은 개당 98달러라는 높은 가격이 될 것이었다.
에디슨은 보다 저렴한 니켈선을 사용해 어느 정도 오래가는 필라멘트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니켈 필라멘트는 보통으로 타고 있을 때도 빛이 너무 강했다. 게다가 적당한 빛을 만들어 내기는 했지만 너무 빨리 타 버렸다. 에디슨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필라멘트에 산소접근을 차단해 진공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에디슨은 진공펌프를 사용해 일반 대기의 수백만분의 1에 불과한 거의 진공에 가까운 유리전구를 개발했다. 그러나 이 전구용 필라멘트로 사용하는 금속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1879년 10월 21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선택된 것은 놀랍게도 오븐으로 구워 탄화된 목화실 조각이었다. 전구는 거의 15시간 동안 켜져 있었고, 촛불 30개에 버금가는 빛을 냈다. 이는 오늘날 백열전등 실용화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10월22일. 에디슨은 탄소필라멘트 백열등으로 미특허청에 특허출원을 했다.
출원서에는 “백열현상에 의해 광을 내는 백열등으로 고저항의 탄소필라멘트로 구성되고 그 필라멘트는 상기와 같이 제조되어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금속선에 의해 고정된다”고 요약돼 있었다. 이 내용은 이듬 해 1월 27일 미특허(223,898호)로 인정을 받았다.
12월 21일 뉴욕헤럴드지는 ‘전기조명에서 이룬 위대한 발명가의 승리’라는 머릿기사에서 백열전구 발명의 험난했던 그의 역정을 상세히 실었다. 이를 본 시민들은 전시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멘로파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새해 전야의 백열등 시연회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에디슨 백열 전구시대가 시작됐다.
전구는 진공상태로 봉해졌고 그 안에서 필라멘트를 통해 흐른 전기는 맑은 유리전구 속 필라멘트를 백열로 발광시켰다. 공기가 없어야만 필라멘트가 타버리지 않기 때문에 진공상태가 필요했다. 이 백열광은 맑은 유리구를 통해 빛을 내보냈다.
하지만 에디슨은 이를 바탕으로 전구의 성능을 더욱더 향상시켜 줄 필라멘트를 찾기에 애쓰고 있었다.
■전구안쪽의 검댕 현상을 발견하다
특허를 받은 지 얼마 안된 1880년 2월 13일. 에디슨과 그의 실험실의 최고 학력자인 프린스턴대 출신 조수 프랜시스 업튼(Francis Robbins Upton, 1852~1921)은 전구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업튼은 독일 과학자 헤르만 헬름홀츠(Hermann Ludwig Ferdinand von Helmholtz, 1821~1894)의 제자이기도 했다.
이들은 이제 목화로 된 탄소필라멘트를 탄화한 대나무로 바꾸었다. 그러자 필라멘트는 진공유리 속에서 무려 1,500시간 동안 빛을 발한다.
백열등 전구 발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업튼은 맑은 유리가 자꾸 검게 변해 버리는 현상을 발견했다. “왜 전구 안쪽이 검게 변했지?”
대나무 필라멘트에 있는 탄소는 아주 높은 전압으로 열을 받자 증발해 전구 안쪽의 유리벽에 탄소검댕을 만들었다. 필라멘트 고리의 가장자리와 나란한 사지 줄무늬가 나타났다.
탄소원자들은 필라멘트고리의 한쪽에서 밀려 나왔고 그 고리의 다른 쪽에는 흐린 그림자가 생겼다.
에디슨과 연구팀은 전구의 내부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들이 발견한 것은 최초의 열이온 방출 현상이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전구 안쪽의 검댕 발생 현상은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했다.
검댕으로 인해 백열등의 조도가 낮아지면 아무도 전구를 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존 과학이론 뒤집은 진공상태의 전류현상
에디슨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문제 풀기에 착수했다. 이전처럼 그는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모든 경우의 수를 전부 시도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이들은 전구가 검어지는 문제를 필라멘트를 더 순수한 금속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대나무 탄소 필라멘트 전구발명이 이뤄진 지 3년 째인 1883년 3월.
업튼은 이 현상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에디슨에게 제안했다.
“작은 금속접시를 전구 필라멘트 안 쪽에다 넣어보는 게 어떨까요?”
에디슨은 필라멘트 역할을 하던 머리핀 같이 생긴 탄소고리의 두 끝 사이에 금속판 하나를 넣고 이 판을 백금으로 만든 선에 연결했다.
그는 전구에 전류를 흘려 준 후 전류계를 금속판과 필라멘트의 전극에 연결했다. 이 때 계기는 강한 전류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금속판과 배출 전극에 연결하면 계기는 아무런 전류도 나타내지 않았다.
에디슨은 업튼의 제안대로 전구에 백금조각을 봉입해 이를 전압이 걸려있는 필라멘트와 접속시켰다. 그리고 여기에 백금조각을 양극에 연결하고 백금조각과 필라멘트 사이의 허공에 전류가 흘렀다. 그러나 반대로 음극에 연결했을 때는 전류가 흐르지 않았다.
탄소필라멘트를 통해 흐르는 전기 외에 또다른 전기가 유리관 내부의 진공상태를 통해 흐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당 시까지 밝혀진 전기에 대한 지식으로는 정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놀랍게도 전류가 허공을 지나 금속접시 안에서도 흐른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는 진공중에 열전자가 흘렀음을 나타내는 현상이었다.(공기 간격사이에 흐르는 전류는 전자의 흐름임이 증명됐다.) 이들은 몇 가지의 실험을 해 보았다.
필라멘트를 따라 흐르는 전류를 늘렸더니 접시에 흐르는 전류도 같은 비율로 증가됐다. 전류는 당연히 필라멘트를 따라 흘렀다. 하지만 필라멘트와 금속 접시 사이에는 전혀 아무런 연결도 없었다. 분명히 전류가 진공상태를 가로질러 필라멘트에서 접시로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실험실에 있던 그 어느 누구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전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허공을 통해 전류가 흘렀다!”
이것은 놀랍고 충격적인 현상이었다. 당시 과학은 “진공상태에서는 전류가 흐를 수 없다”는 이론을 분명하게 확립해 놓은 상태였다. 에디슨 실험실 연구팀은 그 이론이 잘못된 것임을 입증해 냈다.
이 백금조각을 봉입한 실험용전구는 사상최초의 전자기기용 진공관이었다.
그럼에도 에디슨은 자신의 발견에 대한 중요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단지 그 현상만을 기록해 특허를 획득했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에디슨은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특허출원 신청부터 했다. 그리곤 이 현상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이것을 뭔가 실용적인 발명과 연계시키려면 시간과 자본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전선도 없이 공기중에서 전기가 흐르는 것을이상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결코 엄청난 발견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지 이를 기이한 현상이라고만 생각한 그는 이를 증명하는 특별한 램프를 만들어 놓고 특허출원후 곧바로 다른 일에 몰두했다.
에디슨이 이른 바 에디슨효과에 대해 내린 평가는 상당히 심미적이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나는 내 발명을 미화하는데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네....그런데 학자들 사이에서 좀 독똑하다는 사람들은 어떤 법칙이니 효과니 하면서 대단한 것으로 추켜 세운다네.”
그 누구도 이 결과를 설명할 수 없었다. 에디슨도 마찬가지였다.
■에디슨 효과로 이름붙이다
1884년 영국 우체국 수석 엔지니어 윌리엄 프리스(William Henry Preece, 1834~1913)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국제전자박람회에 전시된 이상하게 생긴 금속판 전극을 지닌 백열등 하나를 구입했다. 에디슨의 백열등이었다.
프리스역시 소문으로 듣던 이 백열전등으로 실험한 후 뜨거운 필라멘트로부터 음전하 된 입자가 분출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이를 에디슨효과(Edison Effect)라고 이름 붙였다.
에디슨 효과가 처음 발견되고 14년이 지난 1897년. 영국 캐빈디시연구소의 톰슨은 전기가 전자의 흐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현대 물리학의 시작이라 알려진 전자의 발견이었다.
전류가 진공상태에서 흐르고, 교류를 흘리면 직류로 전환된다는 이 사소한 발견은 얼핏 보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에디슨은 열이온 방출(에디슨효과)현상을 발견한 후 더 이상 이에대한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는 채권자들과의 문제, 잇따른 특허 분쟁과 다양한 발명노력이 잇따라 실패하는 과정에서도 하루에 20시간 이상씩 정력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더 이상 파고들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 특별한 시장성있는 제품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물리학자 리처드슨(OWen Williams Richardson,1879~1959)는 실험을 통해 이 발견이 매주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증명해 보여주었다. 그는 1900년부터 1903년까지 실험을 계속했다. 그 결과 에디슨 효과가 진공상태에서 자유전자의 발생과 이동으로 인해 생겨난 현상이라는 것을 증명해 냈다. 그는 이 공로로 192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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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904년 과거 에디슨 연구소의 고문으로 일했던 영국의 존 앰브로즈 플레밍이 등장한다. 그는 에디슨효과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한 진공전구 속에서 교류가 직류로 변환되는 현상(정류작용)을 응용해 인류 최초의 진공관을 발명해 내기에 이른다.이후 50년 가까이 전세계 전자물리학과 전자산업은 진공관에서 일어나는 열이온 효과와 그에따른 정류작용에 기초해 이뤄지게 된다.
이로부터 차례로 무선전신,라디오,텔레비전,1세대 디지털 컴퓨터 발명이 이뤄졌다. 이는 에디슨효과 발견과 그에 따른 진공관 발명의 토대 위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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