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던 단통법, 이미 시행중

전문가 칼럼입력 :2014/04/01 10:10    수정: 2014/04/01 10:18

박종일
박종일

지난해 12월 초, 한국 이동통신산업을 이끄는 정부와 산업계 대표가 한 자리에 모인 서울 프레스센터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최문기 장관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이경재 전 위원장을 비롯하여 통신3사, 단말제조사, 시민단체 대표들이 함께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 간담회’를 가진 자리였다.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이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을 발의한 지 7개월 만에 관련 이해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인 만큼, 사실상 시행 여부가 판가름 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미래부와 방통위의 최고수장이 함께 참석한 이례적인 자리였지만 결국 모든 이들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부실한 조정능력만 부각시킨 채 자리는 마무리됐다.

단통법은 정부와 사업자에게 어떤 의미?

단통법은 스마트폰 시대 이후 급격히 상승한 가계통신비 절감을 위해 추진된 법안이다. MB정권 시절에도 가계통신비 절감을 목적으로 통신3사의 기본료를 1천원 인하하고 50건의 문자를 무료 제공하였으나, 가계통신비 절감이 아닌 통신사를 쥐어짜 만들어낸 생색내기 정책이라는 비난만 남겼다.

이마저도 일부 3G 요금에 한해 시행된지라, 이후 출시된 LTE 요금제는 데이터 용량 추가를 빌미로 통신료가 다시 고공 상승했고 더불어 스마트폰 가격은 100만원을 상회하였다. 가계통신비는 인하가 아닌 인상이 된 셈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가계통신비는 여전히 정부의 숙제였다. MB정부 시절 아픈 경험이 있던 정부와 정치권은 가계통신비 인상 주범으로 통신요금이 아닌 이동통신 유통 구조를 꼽았다. 통신사와 단말제조사의 보조금(혹은 판매장려금)으로 인해 스마트폰 가격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며, 대부분의 고객들은 비싼 요금제와 비싼 단말기 가격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문제 제기였다.

이에 따라 단통법에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이 담겼다.

첫째, 단말기 판매 제도 개선이다. 이통사가 이용자 가입유형(번호이동, 기기변경 등), 요금제, 거주 지역 등으로 인해 부당하게 단말기 가격의 차별을 받아서는 안되며, 이를 위해 단말기별 출고가와 보조금을 공시하게끔 하였다. 신규 단말기를 통해 고가 요금제를 유치하던 통신사들에게는 수익성이 훼손될 수 있는 부분이다.

둘째, 보조금 사후규제 보완이다. 대리점, 판매점의 위법 영업 행위에 대해 통신사 뿐만 아니라 대리점, 판매점과 같은 유통망에 직접적으로 제재를 가하며, 더 나아가 단말 제조사도 조사 대상에 넣는다는 내용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단말제조사가 반발하는 부분이다.

12월 간담회는 그렇게 끝이 났고, 이듬해 2월 열린 임시국회에서 여야 합의 실패로 결국 단통법은 물 건너 간 상황이 되었다. 이 여파 때문인지 방통위 2기 위원장인 이경재 위원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낙마를 하게 되었고, 이동통신3사는 사상 최장의 영업정지를 맞이하게 되었다.

잊혀졌던 단통법, 어느새 시행 중?

필자는 지난 칼럼(이통사 영업정지와 미래부의 칼날. 2014/3/6)에서 사상 최장의 영업정지의 칼날이 제재 대상인 통신3사가 아닌, 단통법에 반대했던 특정 단말제조사를 향하고 있음을 전한 바 있다. 단순한 보복성 행정 조치는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는 그 여파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약 90일 간의 영업정지는 통신3사를 제재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단말제조사와 판매점 등의 유통망일 것이다. 워크아웃 중인 팬택의 영업담당임원이 추가 영업정지 발표 현장에서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대리점과 판매점 업주 모임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회원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단말기를 쏟아 버리며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영업정지를 내린 미래부와 방통위를 원망하면서 말이다.

한 켠에서는 영업정지라는 행정 처분에 익숙한 나머지 이러다 말 것이다 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보였다. 그러나, 일련의 상황들이 기존과는 다른 형국으로 전개되고 있다. 기존의 영업정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는 죽은 줄만 알았던 단통법이 환생했음을 직감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전까지만 해도 영업정지 기간에 상관 없이 보조금 경쟁으로 치열하게 가입자를 모았던 통신사들이 바짝 엎드려 있는 형국이다. 단순히 폰파라치의 눈이 무서워서라고 보기에는 그 강도가 남다르다. 심지어는 통신3사 영업 담당 임원이 함께 ‘이동통신 시장 안정화’ 공동 선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유통 구조가 안정화되면 통신사의 수익성도 나아지니깐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지난 20~30년 동안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그들에게 시장 안정화는 요원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뭇 다르다. 단통법이 담고 있는 보조금의 가격 차별 금지가 시행되고 있다.

두 번째, 단통법에 가장 부정적이었던 삼성전자의 태도 변화이다. 단말기 유통구조의 문제점 중 하나로 꼽혔던 고가 단말기의 출고가가 실제로 내려가고 있음이 보이고 있다. 갤럭시S5는 출고가가 전작에 비해 10만원 가량 떨어진 86만원대로 내려왔고, 중저가 대화면폰인 갤럭시 그랜드 역시 신작인 갤럭시그랜드2 출고가가 51만원대에서 출시됐다. 전작인 갤럭시그랜드1의 최초 출시가는 70만원대였다.

더 나아가 일부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보조금의 한 축이었던 제조사 장려금을 축소 혹은 폐지하고 출고가 인하를 확대할 것이라고 전해졌다. 단통법의 새로운 제재 대상이었던 단말제조사가 이미 단통법에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유통망의 변화이다. 단통법이 통과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전국 4만 개로 추산되는 판매점이 될 것이다. 판매점은 통신3사의 상품을 모두 취급하며 이들의 보조금 경쟁을 이용하여 판매마진이라는 수익을 추구하는 곳이다.

만약 단통법이 통과되어 단말 가격이 투명하게 변화된다면 일반 이용자들은 통신사가 운영하는 대리점 혹은 대형유통점(마트, 양판점)으로 옮겨갈 확률이 높다. 이번 영업정지 기간 중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이 이 판매점들이다.

어쩌면 이미 단통법이 시행되었나 싶을 정도로 판매점들은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만약 단통법이 전격 시행된다면 지금의 영업정지보다 더 큰 후유증이 일순간에 발생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이번 영업정지라는 연착륙 과정을 통해 점진적인 유통망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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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통신사, 단말제조사, 유통망 등 이동통신산업의 커다란 세 축은 이미 단통법에 준하는 수준의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어쩌면 필자가 그 답을 제시하기 전에 이미 그들은 단통법 시행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필자는 다음 칼럼을 통해 그 대응 방안을 함께 논의해보고자 한다. 생각보다 예측이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단통법은 이미 시행 중이기 때문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종일 IT컬럼니스트

커넥팅랩 대표.
통신사와 증권사를 거치며 이동통신 요금기획, 컨버전스 사업기획 등을 담당했다. 국내 주요 기업의 IT 실무진들과 함께 모바일 포럼 커넥팅랩(www.connectinglab.net)을 구성하여 정기적인 세미나와 지식 전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모바일 트렌드 2014'를 출간하였으며 저서로는 'LTE 신세계', '스마트패드 생존전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