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부 정책이든 일단 시행되면 파장을 일으키게 한다. 그런만큼, 정책을 내놓기전에 일어날 법한 일에 대해 어느정도 시뮬레이션해야 하는건 필수다.
그래야 정책의 연착륙이 가능하다.
최근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이하 경쟁제품) 지정을 통해 국산서버 및 스토리지 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정부 정책의 전문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일단 정부는 서버와 스토리지 등 컴퓨팅 하드웨어(HW) 구매 지원을 통해 국내 중소기업에 이윤을 창출해 주고, 장기적으로 정보통신산업분야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인 듯하다. 이를 위해 중소업체가 공공입찰 우선권을 누리도록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지정'을 유도해 온 눈치다.
국산 서버와 스토리지를 이 제도의 대상으로 지정하면 이를 만드는 국내 업체들이 일반적인 공공입찰 계약시 외국계 업체나 중견 이상 규모의 기업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이들은 입찰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해당 품목이 공공구매 지원제도에 드느냐 마느냐로 해당 제조사와 다른 업체의 이해관계도 크게 엇갈린다.
제도가 몰고올 파장이 큰 만큼, 최근 외국계 업체, 중견 및 대기업, 그 협력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할 장이 마련됐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일 서울 상암동에서 주최한 공청회였다.
국산 서버와 스토리지를 공공구매 지원 대상으로 신청한 업체들은 당연히 원래 신청한 내용대로 지정이 되길 원한다. 반면 외국계 제품 제조사와 그 파트너들은 정책 당국이 그 지정여부를 상당부분 재고해줄 것을 바란다.
공청회 현장에서 아쉬운 소리가 컸던 쪽은 외국계 HW 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왔다고 총대를 멘 한국HP였다. 한국HP의 반박을 정부 전문성를 평가하는 잣대로 삼으려는건 아니다.
사실 한국HP를 비롯한 외국계 서버 스토리지 업체 입장에서, 공공 조달 시장이 차지하는 매출은 민간 영업 성과에 비해 크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격앙된 목소리를 삐딱하게 듣자면 엄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SW업체들이 정부 정책을 우려하는건 급이 다르다. 외국산 서버에 자사 SW를 깔아 공공 기관에 솔루션으로 제공하는 회사들 사이에선 서버와 스토리지를 경쟁 제품으로 지정하려는 정부 행보를 우려하는 시선이 엿보인다.
흘려들을 수 없는 얘기 같다는게 기자의 판단이다.
이들도 정부가 그토록 살리고 키워야 한다던 중소기업이다. 더구나 창조경제의 핵심(?)인 SW회사들이 상당수다.
솔루션 파트너에게 외국업체 서버와 스토리지 유통은 부수적이다. 이들의 주업은 외국계 업체 서버, 스토리지 등과 맞물리는 자체 SW기술을 개발, 판매하고 유지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이다. 이들 회사는 정부 정책이 시행되면 이런저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개발비가 늘어나고 경우에 따라 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인증 획득 등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외국계 하드웨어와 국내 SW업체들은 그동안 하나의 생태계에서 활동해왔고 다수 솔루션 회사들이 정부 정책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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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구매를 통한 중소기업 보호 효과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정책으로 인해 국산 솔루션 회사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그 정책은 전체적으로는 교각살우(矯角殺牛)식 처방전이 될수도 있다.
국산 서버와 스토리지 수요 촉진 정책을 추진하면서 SW같은 핵심 연관산업에 미칠 영향까지 챙길 수 있는 정부 정책의 전문성이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