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소식에 대다수 국민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 언론 보도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된다. 누굴 만났는지, 어디로 이동했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일일히 보도 된다. 주요 국가 대통령이나 유명 연예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요 외국 IT 기업의 수장이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다.
가장 최근 사례는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다. 슈미트 회장은 지난달 말, 2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그가 외부 활동에 나선 1박2일동안 쏟아진 기사는 대략 440여건. 매일 '구글 에릭 슈미트'와 관련한 기사가 200건 이상 발행된 셈이다.
슈미트에 대한 관심은 그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계속됐다. 슈미트가 특정 사안에 대해 소신을 밝히거나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한국 언론도 기민하게 반응했다. 지난 보름간 슈미트 관련 기사만 200여건이 나왔다. 창업자가 아님에도 슈미트가 곧 구글이요, 구글이 곧 슈미트로 여겨질 지경이다.
■ 해외 IT기업 수장 '걸어다니는 광고판'
슈미트의 방한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본 측은 구글이다. 방한 기간 그는 한국에 어떠한 애정을 갖고 있는지를, 또 구글이 얼마나 좋은 기업인지를 홍보했다. 큰 돈을 쓴 것도 아니다. 확실한 소식통에 따르면 슈미트 방한에 맞물려 구글이 문화부에 지원을 약속한 돈은 100만불(약 10억원)이다.
적은 돈은 아니나 많은 돈도 아니다. 최근 규제 이슈로 뭇매를 맞는 네이버는 비슷한 시기 상생기금으로 1천억원 펀드 조성을 발표했지만 큰 반향을 얻진 못했다. 10억원과 1천억원은, 단순 비교해도 100배가 넘는 차다. 슈미트는 한 번 행차로 네이버의 100분의 1의 돈을 쓰고 그 천배, 만배에 해당하는 효과를 얻었다.
창업자가 직접 대외 메시지를 던지는 경우엔 파급력이 더 크다. 상징성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빌 게이츠, 페이스북과 마크 저커버그가 그렇다. 오라클과 래리 엘리슨, 아마존과 제프 베조스, 엔비디아와 젠슨 황, 소프트뱅크와 손정의도 빼놓을 수 없는 짝이다.
스티브 잡스는 IT 기업들이 '인문학'을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빌 게이츠는 MS 대표에서 물러났지만, 아직까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저커버그는 50억 인구를 연결하는 것을 정말 큰 도전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우리 세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본다며 페이스북이 가야할 길을 명확히 설명했다.
심지어, 래리 엘리슨은 직접 영화에 출연한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에 나,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이야라며 악수를 청하는 포스! 오라클은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데이터베이스 업체다. 그럼에도 엘리슨 회장은 오라클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에 주저하지 않고 나선다. 엘리슨이 홍보하는 오라클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자기도 하다.
이들은 확실한 철학을 갖고 이를 대중에 전달한다.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종종 IT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타로 읽힌다. 영리기업이지만, 때때로 비윤리적인 일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배울점이 많은 기업, 쫒아가야 할 기업'으로 판단한다. 창업자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그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180도 바꿔놓는다.
■네이버가 이해진 의장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에게도 스타는 있다. 아니, 스타가 될 재목들은 있다. 일명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 동기'라 불리는 벤처 1세대들이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정주 넥슨 회장,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를 말한다. 또래인 이재웅 다음 창업자도 있다.
아이돌 스타, 싸이, 남북 분단 등을 제외한다면 외국인들이 한국서 먼저 떠올리는 것은 IT일 것이다.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가장 인터넷이 빠른 나라. 비행기서 내리는 순간부터 모바일로 연결되는 나라. 슈미트 회장이 말한 한국의 지금 모습이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를 이끌어 온 곳은 다름 아닌 네이버다. 지식인 성공 이후, 네이버 없는 인터넷을 떠올리긴 어렵게 됐다. 심지어, 네이버 홈페이지를 찾으러 네이버에 들어가 순간 멈칫했다는 에피소드들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이해진 의장, 김정주 회장, 이재웅 전 대표가 언론에, 일반 대중에 얼굴을 내미는 일은 드물다. 네이버 관계자는 대외 활동은 하는데 언론 접촉만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관계자 역시 벤처 1세대들이 부끄러움이 많다. 접촉을 많이 피하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의 IT 산업에서 이해진 의장이 차지하는 의미는 크다. 대학생 벤처로 시작해 굴지의 대기업을 만들었다. 개인 주식자산으로 벤처기업가 중 처음 1조원대 갑부 대열에 들어섰다. 네이버의 발걸음은 한국 포털의 역사기도 하다. 한국은 유일하게 구글이 힘을 못 쓴 나라기도 했다.
그런 네이버도 최근엔 위기다. 검색 독과점 기업으로 지목됐다. 검색으로 광고를 해 돈을 버는 것은 포털 이용자들을 현혹시키는 행위라 지탄 받는다. 네이버 입장에선 억울할 일이 많다. 검색 점유율을 어떻게 계산해 독과점으로 규정하나. 네이버는 영리 기업인데 검색으로 돈을 버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구글은 저렇게 한국서 영향력을 키워가는데 우리만 규제를 한다, 등등.
여론이 이렇게 악화된 데는 네이버의 책임도 있다. 아니, 네이버가 조금 더 영리하게 움직이지 못한 탓으로 볼 수도 있다. 구글도 검색 광고로 돈을 벌지만 네이버 만큼 비난받진 않는다. 구글은 인터넷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등,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계속해 전파한다. 메시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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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로 비판이 쏟아지는 한 가운데, 이해진 의장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어떨까. 네이버가 지지하는 철학,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명한다면 네이버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사람이 더 늘어났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네이버가 계속해 영향력을 갖고, 글로벌로 더 매력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만 향후 산업에 대해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해진 의장도 얼마든지 새로운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 인터넷이 나아가야 할 길을 놓고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그 논쟁이 던지는 이슈 자체가 곱씹어 고찰해야 할 문제로 부각된다. '생각하는 기업, 배울게 많은 기업'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