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전자책 시장을 견인한 도서는 누가 뭐라해도 '그레이의 50가지 이야기'다. 지난 9월 기준, 전자책으로 출간된지 1년여 만에 총 13만부가 팔렸다. 국내선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일명 '아줌마의 포르노, 언니들의 포르노'로 불린 그레이 시리즈는 19금 소설이다. 성행위가 비교적 자세히 서술된 로맨스 장르로, 성인들에게만 판매됐다. 책을 구매할 때는 반드시 성인 인증을 거치도록 했다.
그레이 열풍은 미국서 먼저 시작됐다. 서양 아주머니들의 입소문이 그레이를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도 '그레이'는 효자 상품이다.
■어디까지가 성인물일까
구글이 지난달 네이버북스에 안드로이드 앱에서 19금 도서를 팔지 말라고 경고했다. 네이버북스 앱에 판매되는 19세 콘텐츠가 구글플레이에서 허용하는 수준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만약, 네이버가 구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19세 콘텐츠를 계속해 판매할 경우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네이버북스의 등록 및 배포 자체가 중지될 가능성도 통보했다.
네이버도 즉각 출판사와 유통사들에 네이버북스 안드로이드 버전 앱을 업데이트를 하는 15일 경, 19금 콘텐츠를 모두 제외할 예정이라 공지했다.
통지를 받은 출판사, 유통사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두 가지다. 첫째, 어디까지를 성인물로 보아야 하느냐는 것. 둘째, 이제 피어나기 시작한 전자책 시장이 구글 정책으로 줄어들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구글은 구글플레이에서 음란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누드, 성행위 묘사, 음란물이 포함된 콘텐츠가 여기에 포함된다. 음란한 내용 및 저속한 유머를 포함하는 앱은 콘텐츠 수위-중, 또는 상 등급으로 한정했다.
이 부분의 해석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콘텐츠 수위를 결정하는 부분이 모호하므로 그간 출판사들은 국내법을 위반하지 않는 콘텐츠에 대해선 성인 인증 이후 판매하는 것을 관례처럼 여겨왔다.
구글이 직접 운영하는 전자책 판매처 구글플레이에서도 19금 콘텐츠는 발견된다. 광고 문구가 '파격적인 정사' 등이지만, 판매에 별다른 지장을 받지 않는다. 이미 잘 알려진 유명 도서의 경우엔 다소 선정적이더라도 중급 이상의 콘텐츠로 인정받는다.
성인물의 기준은 네이버도 정확하게 갖고 있지 않다. 네이버 관계자는 구글이 어떤 수위까지 19세 콘텐츠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때문에 '이건 19금이 아니다'라고 놔뒀다가 다시 경고를 받을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 언제부터 어떤 콘텐츠를 중단할 것인지 논의중인 단계다라고 말했다.
복수의 출판, 유통업체 관계자들도 구글로부터 성인물에 대한 가이드를 설명받은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물론 안드로이드 앱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구글이 직접 가이드를 설명하는 단계를 거치진 않는다. 생태계 구성원들이 구글의 규정을 숙지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구글은 보다 명확하게 규정을 설명하지 않을 경우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국내선 19금 콘텐츠라 하더라도 사회 미풍양속에 반하거나 직접적인 성적 표현 등은 제재하고 있다라며 19금 콘텐츠의 수위 문제를 구글이 제재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선 의문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구글의 경고, 네이버 견제하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현재 구글플레이에서 안드로이드 앱 안에서 콘텐츠를 사고 팔 수 있게 한 곳은 네이버북스만이 아니다. 다른 앱에서도 19세 콘텐츠도 판매되고 있지만, 구글의 제재 대상은 네이버로 한정됐다.
네이버를 제외한 여타 유통사들과 출판사들은 구글로부터 별다른 경고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네이버에 경고문이 왔다는 것은 들었다라며 그러나 아직 그와 관련해 구글로부터 비슷한 경고를 받은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네이버북스는 장르 소설과 만화에 특화했다. 로맨스, 무협, 판타지 등이 인기 콘텐츠다. 로맨스와 무협 장르 소설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 19세 콘텐츠의 판매 비중도 꽤 높은 편이다. 네이버북스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일부 업체들은 성인물의 판매 비중을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 이상으로 보기도 했다.
때문에 일부 관계자들은 네이버북스 영향력이 커지면서 구글이 이를 견제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내놨다. 구글은 지난해 넥서스7 발표와 함께 국내 전자책 시장에 진출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이진 못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구글플레이 내에서 안드로이드 앱을 통해 유사 콘텐츠를 판매하는 경쟁자들의 선전이 구글로선 달갑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익배분의 이야기를 꺼냈다. 네이버북스가 안드로이드 앱 내에서 콘텐츠를 판매하고 있지만, 도서 판매 수익금을 구글과 나누지 않는다. 구글은 애플과 달리 그간 인앱 정책(앱 안에서 판매되는 모든 수익금을 배분하도록 하는 것)을 강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글도 사기업이다. 수익성이 높은 사업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 직접 도서, 영화, TV 쇼 등 인기 콘텐츠들을 수급하고 판매에 나선 이상 지역의 주요 사업자들은 경쟁상대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네이버 관계자는 구글의 입장은 잘 모르겠다라면서도 만약 똑같은 수위로 판단되는 19금 콘텐츠를 네이버만 제재받았을 경우 구글에 알려달라고 하더라. 그것도 경고하겠다 이런 입장인 것으로 들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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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자책 시장이 장르 소설을 중심으로 커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구글의 제재가 이를 위축 시킬 수 있다는 걱정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지금 구글 정책에 가장 영향 받는 곳은 장르 소설을 주로 취급하는 곳일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구글이 어떤 잣대를 들이미느냐에 따라 성인물의 기준이 달라지게 되면 우리 나라서 제2의 그레이 같은 인기 콘텐츠가 나오기는 힘들어지지 않겠느냐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