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물량을 담보로 이동통신사와 유통업체와 주도권 협상에서 키를 쥐고 있던 애플의 슈퍼 을(乙) 행세가 끝날 조짐이다. 새롭게 발표한 ‘아이폰5S’와 ‘아이폰5C’의 가격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평가가 쏟아지면서 애플의 자존심이자 아이폰의 장점이었던 가격 방어 전략이 무너지는 분위기다.
전 세계에서 “아이폰5C가 너무 비싸다”는 여론이 형성된 가운데 일부 이동통신사와 유통업체가 이례적으로 출시 전부터 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아이폰 할인 판매를 시작했다. 이에 애플이 그동안의 전략을 버리고 공격적인 가격을 앞세운 영업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현지시간) 미 이통사 AT&T는 아이폰5S를 16GB 모델 기준으로 20개월 무이자 할부로 월 27달러(약 2만9천원)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별도 약정은 없으며 540달러(58만5천원)의 할부금을 다 내기만 하면 된다. 이는 애플이 공식적으로 밝힌 무약정 가격인 649달러(약 70만3천원) 보다 109달러나 낮은 가격이다.
AT&T는 아이폰5C도 16GB 기준 20개월 무의자 할부로 월 22달러에 판매한다. 총 할부금은 440달러인 셈이다. 이 역시 공식적인 무약정 가격인 549달러(약 59만8천원)보다 109달러 낮다.
유통업체의 할인행사도 시작됐다. 월마트는 13일부터 2년 약정 기준으로 아이폰5S를 16GB 모델을 정가보다 10달러 낮은 189달러에 판매한다고 밝혔다. 아이폰5C는 정가보다 20달러나 낮은 79달러에 예약판매한다. 월마트가 아이폰 출시 몇 달 이후 할인판매에 나서는 경우는 있었지만 신제품 출시와 동시에 할인에 들어간 적은 처음이다.이같은 움직임은 애플의 신제품 공개와 함께 시장에서 쏟아진 혹평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애플이 신제품을 공개한 직후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을 잇따라 하향조정했다. 애플 주가도 이틀 만에 5% 넘게 하락했다. 혁신의 부재도 도마에 올랐지만 특히 애플이 가격정책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비판이 크게 작용했다. 애플이 처음 발표한 보급형 아이폰5C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지적이다.
아이폰5C는 미국에서 2년 약정을 기준으로 최저 99달러에 판매된다. 하지만 약정없이 구매하려면 550달러를 내야한다. 특히 아이폰5C의 주요 타겟시장으로 꼽힌 중국에서는 통신사 약정없이 아이폰5C를 사려면 4천488위안(733달러, 약 79만원)을 내야한다. 중국에서 대당 1천~2천위안대의 중저가 제품 판매가 가장 활발하고 현지 제조사 샤오미의 하이엔드 스마트폰은 350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중국에서 아이폰5C 발표 이후 중국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웨이보를 통해 이뤄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9%가 아이폰5C에 대해 “너무 비싸다”고 응답했다. 한 웨이보 이용자는 “아이폰5C의 C가 cheap(싸다)을 의미한다고 알려졌는데 그들이 발표한 가격을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애플에게) 속은 기분이 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미국 씨넷은 “애플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른 외신들도 “마케팅의 재앙”, “가격정책의 실패”, “CEO의 실수”라는 혹평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JP모건은 “아이폰5C의 경우 제품 가격이 당초 예상에 비해 충분히 싸지 않다”면서 “이로 인해 중저가형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 제품의 점유율 상승효과는 제한일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코멘트를 내놨다.이같은 시점에서 이통사와 유통업체의 할인 판매로 애플이 공격적인 가격정책을 앞세운 적극적인 영업에 뛰어들었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보통 시장에서는 유통망을 쥐고있는 이동통신사나 유통업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애플은 물량을 무기로 이른바 슈퍼을(乙)에 위치에서 모든 유통채널에서 정가를 유지하는 가격 정책을 고수해왔다. 차기 모델이 나오기 전까지 구형 제품의 가격에 대한 가격방어도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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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애플이 발표한 신제품의 공식 가격은 기존 제품과 변함이 없었지만 실제 판매가격에는 전례없는 할인이 이뤄진 셈이다. 외신들은 이같은 할인판매가 애플 측의 협조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서 애플이 예전과 달리 적극적인 영업을 통한 가격전쟁에 뛰어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애플도 다른 제조사들과 마찬가지로 공식 가격과 실제 판매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외신들은 “미국 시장에서는 대부분 베스트바이나 월마트 등 소매점들이 우위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동안 애플은 주도권을 쥐고 적극적인 가격 방어 전략을 펴왔다”면서 “월마트나 AT&T를 시작으로 다른 유통업체들도 우르르 할인 경쟁에 뛰어들면서 애플의 전략이 힘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