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마 터치가 국내 전자책 단말기 중에선 가장 많이 팔렸어요. 그래서 (킨들에 대항할 단말기를) 안만들 수가 없었죠.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몇년째 개화기인 전자책 시장에 또 하나의 단말기를 던진 것은. 나름 희망도 봤다. 크레마 터치가 2만대나 팔렸으니. 살아남는 법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사양을 화끈하게 올려 킨들과 붙어도 이겨야 한다고.
아마존, 코보가 매년 간만 보고 가는 곳, 한국 전자책 시장이다. 클 것 같긴 한데 기폭제가 없다. 독서 인구가 적은데다 스마트폰이 평정한 곳이라 외산 전자책 단말기들도 함부로 뛰어들지 못한다.
그런데 승부수를 던진 곳이 있다. 예스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가 힘을 합쳐 설립한 전자책 전문업체 한국이퍼브다. 아마존 킨들을 뛰어 넘는단 목표 아래 새 단말기 사양을 두배 끌어올렸다. 어두운 곳에서 볼 수 있도록 화면 양 옆에 조명도 달았다.
조유식 한국이퍼브 대표를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크레마 샤인' 출시 간담회에서 만났다. 그는 알라딘 창업자이자 대표기도 하다. 최근엔 중고책 서점을 성공시킨 CEO로 언론에 얼굴을 비쳤다. 전자책과 중고책이라니, 전혀 반대에 있을 법한 두 시장을 동시에 뛰어다니느라 바쁘다.
그에게 왜 또 전자책 단말기를 만들었냐 물었다. 안 할 수 없었다고 답한다. 전작인 크레마 터치를 2만대나 팔았는데, 킨들 처럼 '조명을 단 전자책 단말기'를 안만드는 건 말도 안된다며, 갈때까지 간 거다라고 웃었다.
조 대표가 화면 조명(Front light)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전자책의 가장 큰 장점은 e잉크 패널을 사용, 스마트폰과 달리 눈부심이 없어 편안하게 책 읽는 경험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LCD를 포기하다보니 밤엔 화면을 볼 수 가 없다. 눈부심을 없애면서 밤에도 책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조명은, 킨들 정도에서만 채택한 사양이다.
전자책 단말기가 조명을 단다고 해서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의 선명함을 따라갈 순 없다. 그건 조 대표도 안다. 그는 미국에선 7인치 태블릿이 메이저가 되고 있다며 한국도 그렇게 될 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전자책 단말기 시장은 별도로 존재한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전용 단말기를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남아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얼마나 많이 팔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 단말기에서 책이 얼마나 소비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국이퍼브가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전용 단말기 보유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 대비 콘텐츠 소비량이 4배 높았다. 책 읽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전자책 단말기가 파고들 공간은 있다. 크레마가 일년만에 버전업된 이유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책을 많이 읽는 하드 유저들이 단말기를 시도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계속 업그레이드 해나갈 수 밖에 없어요. 명확한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조명을 단말에 달 생각을 안했을 거에요.
단말기에 확신을 가진 그에게 걱정은 콘텐츠다. 아직도 전자책 콘텐츠는 부족하다. 국내서 전자책으로 만들어진 출판물은 10만여 종. 현재 성장 그래프 곡선을 보면 전자책 가짓수가 3배 늘어나는 시점은 일러야 2015년이다.
그래도 조 대표는 빠르면 내년도 될 수 있지 않겠냐고 낙관했다. 국내 단행본 시장 다수를 차지하는 번역서가 전자책으로 출간되는 시점이 티핑 포인트다.
콘텐츠 부족 문제가 해결되면 '대여 모델'도 시작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 계획은 못했어도, 길게 보면 대여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음원도 대여, 정액제 시장이 열렸잖아요. 디지털 콘텐츠 부문에선 어쩔 수 없이 당연히 생기는 거라고 봐요. 경우에 따라선 폭발적 호응을 얻죠.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앱이 성공적 사례에요. 정액제 모델을 잘 활용해 성공했죠
조 대표는 크레마 샤인을 미국으로 수출한단 계획도 세워놨다. 전작과 달리 크레마 샤인에 FCC 전파 인증을 받은 이유다. 우선은 미국에 사는 교민들이 대상이다. 값싸고 보기 편한 한국어 전자책 수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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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 해외에서 한국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 9할이 미국에 있어요. 그 사람들은 상식적으로도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훨씬 빠르고 편하게 구할 수 있으니까 수요가 있죠. 전파 인증도 받았으니 수출을 할 겁니다
물론 한국인만 대상으로 전자책을 팔 생각은 아니다. 킨들에 한국어 콘텐츠가 들어가면 그간 한국 유통업체들이 장악했던 공간은 줄어든다. 나가야 산다. 열심히 콘텐츠를 확보하고, 그래서 결국엔 '킨들과 붙어야' 한다. 킨들과 싸워 이기는 것, 조 대표가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면서 키워온, 아직은 거짓말같다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