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30만보다 진짜 3천명을 원한다'
한 소프트웨어(SW)업계 종사자가 정부시책에 던진 말이다. 정부가 연일 SW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력 양성을 부르짖는 통에 내뱉은 말이다. 5년간 30만명을 양성한다는 정부의 원대한 포부에 업계는 졸속행정의 재탕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소프트웨어종합학교를 신설해 SW전문인력 30만명을 5년내 양성할 계획을 추진중이다. 국내 IT업계가 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어 정부가 나서 SW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놓는 인력양성론에 일부에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현업 개발자들의 목소리는 다르다.
정부기관의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에 대한 현업 종사자의 시선은 곱지 않다. 능력부족의 인력만 양산해 전반적인 인건비만 급전직하시키고 말 것이란 주장이다.
한 SW 개발자는 “과거 자바 개발자가 없다며 정부가 주도해서 수만명의 개발자를 쏟아냈다”라며 “그 덕분에 지금은 자바 개발자가 너무 많아져 그들의 인건비만 형편없이 낮아졌다”라고 비판했다.
일부 개인의 의견이 아니다. 업계 태반의 개발자, 특히 자타공인 나름 전문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이들의 의견이 대동소이하다. 이들은 정부가 과거에 실패했던 정책들을 별다른 반성없이 재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바 개발자 양성의 악몽
2000년대 초반 국내외로 자바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업계엔 자바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개발자가 부족했다. 결국 인력난이 심각해졌고, 정부가 자바 개발자 양성을 장려했다. 정부와 모든 기업이 앞다퉈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자바를 배우면 십년동안 배불리 먹고 산다’는 인식이 번졌다.
2013년 현재 국내 IT개발자에게 자바는 기본소양에 가까워졌다. 대부분의 시스템통합(SI) 프로젝트서 자바 개발자를 채용한다. 자바 기술 자체는 여전히 필수적인 요소로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인력 시장에서 개발자가 겪는 상황은 최악에 가깝다.
정부와 기업의 양성프로그램 운영 수년 뒤 수십만명의 자바 개발자가 일선 대학교뿐 아니라, 사립 컴퓨터학원에서 쏟아져 나왔다. 차근차근 경험을 쌓으며 실력을 갖춘 개발자보다 2~3개월 교육과정을 수료한 단기 수련생들이 자바 개발자라며 IT업계를 수 놓았다.
전반적인 개발자 수준은 현저히 떨어졌다. 인력이 풍부해지자, 기업에서 지불하는 인건비가 낮아졌다. 부르는게 값이던 자바 개발자의 연봉은 하루가 다르게 낮아졌다. 더불어 깊이 있는 기술력을 갖춘 전문가들까지 덩달아 낮은 평가를 받게 됐다.
■숫자놀음으로 변질되는 사람 투자
미래부가 준비중인 한국소프트웨어종합학교는 조해진 의원 등이 발의한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안에도 언급된다.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데 초점을 둔다는 설명이다. 졸업생에 대한 차별화된 혜택도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소종의 별칭은 'KoSIDA(Korea software Imagination & Development Academy)'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꼬시다'란 비아냥 섞인 용어로 부른다.
이미 윤곽을 드러낸 인력 양성 계획도 있다. 미래부는 지난달 빅데이터 전문가를 2017년까지 2천명 양성하겠다며, 빅데이터 아카데미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내의 빅데이터 전문가 부족현상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전용 강의장과 프로젝트 실습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달부터 2개월 기간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기술과 분석 전문가로 나뉘어 올해 200명을 처음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화이트해커 5천명 양성 계획도 나왔다. 미래부는 지난달 정보보호인력 5천명을 양성하기 위해 '최정예 정보보호 실무자 양성과정'과 '차세대 보안리더 양성과정' 등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2017년까지 화이트해커 5천명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교육과정은 5~6개월 간 실무 및 실습 중심으로 이뤄진다.
미래부는 동시에 민간의 SW교육과정도 독려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민간기업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에 특혜를 주거나, 정부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얘기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정보보안 등 모두 업계에서 인력부족을 호소하는 분야에 대해서다. 그런데 나오는 건 모두 단기 교육을 통한 양적 확대, ‘인력 쏟아내기’에 불과하다.
업계가 정부의 SW에 갖는 관심과 의지에 비판적인 시선을 갖는 건 아니다. 이들은 정책적 접근 방식에 비판적이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기술력있는 사람이 단기간에 교육시킨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라며 “전후 사정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양성 프로그램이랍시고 내놓는 건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언가를 양성한다는 발상은 군인이나 공산품에나 적용가능한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반성없는 정책, 악순환만 재생산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 반성 부재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분석한다.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업계의 기술적 유행도 시시각각 변화하는데, 오랜 시간 고정되는 정부정책은 이같은 변화 속도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력난-양성 프로그램-저수준 인력홍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자바 말고도 수없이 반복된 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공공정책의 근본적 한계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중견 개발자는 “결과적으로 정부가 쏟아내는 SW인력은 저가의 SI인력에 불과하고, 정말 업계가 필요로 하는 전문가는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며 “빅데이터, 클라우드, 보안 모두 수많은 SI인력만 남고, 전문가는 사라지는 결과가 뻔히 보여 안타깝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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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개발자는 “학생들이 SW개발자를 기피하는 현상은 형편없이 떨어진 개발자에 대한 처우와 SW 자체에 대한 사회경제적 인식이 얼마나 저열한가를 인식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해야할 일은 SW란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이고, 그를 개발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정부 스스로 SW에 대한 가치를 존중하고, 정당한 사용대가를 지불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라며 “단기간의 이익에 집착하지 말고 다소 엉뚱하더라도 지켜봐주면서, 창의력을 독려하는 풍토를 만드는 작업도 이뤄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