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시대에 삼성전자와 애플의 독주는 끝이 없다. 이 둘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전 세계 IT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다른 많은 IT기업들도 이미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거나 혹은 언감생심 바라보고 있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방도가 없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레노버의 고공성장은 의미심장하다. 내리막길이라는 PC사업에 오히려 집중한 결과, 지난해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스마트폰 사업마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요즘 레노버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이처럼 레노버가 전 세계 시장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이렇다 할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 PC시장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독식한 가운데 모든 외국 IT기업이 가진 딜레마를 레노버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8개월을 맞은 강용남 한국레노버 대표를 지난 10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한마디로 균형 감각이 뛰어난 유쾌한 합리주의자다.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안다. 그러면서도 달성해야 될 방향과 목표는 구체적이다. 그리고 이를 추진함에 있어 자신감이 넘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스마트 시대에 레노버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비결부터 물었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PC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PC시장이 죽었다기 보다는 다만 교체주기가 조금 늘어났다고 봐야죠. 예전에는 소비자들이 PC만 썼으니 성능 향상에 대한 욕구가 좀 더 강했고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도 있으니 다소 줄었을 뿐입니다.”
강 대표는 오히려 기자에게 PC가 몇 대냐 있다고 되물었다. 쓰는 PC는 2대, 안 쓰는 것까지 포함하면 4대. 강 대표 역시 집과 사무실에 총 4대의 PC가 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PC를 사용하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굳이 잘 돌아가는 PC를 바꿀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노버는 판매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고무적입니다. 교체주기가 늘어났는데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레노버는 시장 점유율 기준 세계 2위의 PC 제조업체다. 1위는 여전히 HP가 차지하고 있지만 그 차이는 1% 미만이다. 오히려 이익률은 레노버가 월등히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노버는 전 세계 2위 PC제조업체라고 떳떳하게 강조한다. 어떻게든 1위라고 하고 싶을 법도 한데 아직은 그냥 2위가 맞단다. 심지어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레노버 행사장 한켠에 2위라는 문구를 새겨둘 정도다. 1등 좋아하는 한국 기업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다.
“사실 1등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1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좀 더 내실 있고 탄탄하게 성장하겠다는 것이 레노버의 전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점유율 확대보다는 소비자 니즈 발굴과 제품 연구개발에 힘을 쏟아야 하는거죠.”
레노버는 PC 뿐 아니라 스마트폰 분야에서도 상당한 경쟁력을 쌓아올리고 있다. 중국서 삼성에 이어 스마트폰 시장 2위를 차지하고 있고, 최근에는 인텔 AP를 탑재한 K900과 같은 플래그십 제품도 내놨다.
그러나 유쾌한 합리주의자 강 대표는 스마트폰 국내 사업에 대해서도 신중한 모양새다. 안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단 올해는 섣불리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다. 그는 마치 배팅할 때를 기다리는 프로 도박사처럼 말했다.
“내년 정도가 되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게임의 룰이 변할 것으로 봅니다. 지금은 아니에요.”
LG전자를 시작으로 델, HP 등 굵직한 주요 PC업체를 두루 거친 강 대표가 취임 후 세운 1차 목표는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PC 기업 중 1위가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일단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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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깔려있는 AS망과 유통망을 보세요. 처음부터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잡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생각이에요. 권투선수처럼 조금씩 체급을 올려가며 도전해야지요.”
“일단 국내 시장에서 목표는 점유율 8%입니다. 그러면 모든 글로벌PC 기업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두 자릿수를 목표로 달려나가면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목표가 보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