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엽 부회장의 승부수가 또 한번 통했다. 퀄컴에 이어 경쟁사인 삼성전자마저 설득시키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했다.
22일 팬택은 삼성전자로부터 총 53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박 부회장이 주주총회에서 밝혔던 투자유치 계획의 첫 번째 결과물인 셈이다. 깜짝 놀랄만한 것은 그 대상이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삼성전자라는 점이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1천억~2천억의 외부 투자자금 유치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공식 천명했다. 스마트폰 시장이 기술력이나 제품의 품질 보다는 브랜드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부 투자자금을 수혈받아 브랙드력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팬택의 3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 삼성전자는 경영에는 일체 참여하지 않으면서 주요 거래선을 보호하고 IT 생태계를 상생으로 이끄는 대승적인 투자 결정으로 명분을 얻게 됐다.
팬택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삼성전자로부터 총 발행주식 10%(53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기로 결의했다. 이같은 내용이 확정되면 삼성전자는 산업은행(11.81%)과 퀄컴(11.96%)에 이어 3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이번 자금유치로 팬택은 안정적인 운영자금을 확보하고 경영안정화 기반을 마련하면서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됐다. 팬택은 지난해 매출 2조2천344억원에 영업손실 77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4대1 무상감자를 결정한 것도 외부 투자자금 유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향후 채권단 등에서 추가적인 투자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삼성전자로서도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길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와 팬택은 휴대폰 분야에서는 경쟁관계에 있지만 동시에 부품 분야에서는 협력관계에 있다. 팬택이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로부터 사들인 부품은 총 8천116억원이다. 삼성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제외하고 국내 최대 거래선인 셈이다. 이번 투자로 팬택이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확보하는데 기여할 수 있게 됐다.
또 팬택이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확보하는데 기여하면서 상생과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며 건전한 한국 ICT 생태계 확립에 기여하게 됐다는 명분도 얻게 됐다. 자칫 팬택이 무너질 경우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위기에 빠지면서 공멸할 우려도 있다.
박병엽 부회장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품질력, 상품력을 갖고 있는 팬택을 삼성이 정보통신기술(ICT) 진흥을 위한 상생과 공존을 위한 틀로 본 것 같다”며 “이번 투자는 삼성이 엔저 등 경제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전체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책임있는 노력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본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휴대폰 시장에서 독점 우려를 피해가면서 LG전자 등 경쟁사를 견제하는 효과를 얻게 됐다.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높을 경우 70%를 상회하기도 하면서 독점 우려가 불거지기도 했다. 그간 업계에서도 전반적으로 건전한 경쟁과 생태계를 위해 “팬택이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모아졌다.
앞서 투자를 결정한 퀄컴과 마찬가지로 삼성전자도 경영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퀄컴은 지난 1월 같은 방식으로 팬택에 2천300만달러(약 245억원) 투자를 결정하면서 1대 주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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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 관계자는 “팬택은 삼성전자의 각종 부품을 구매해온 주요 거래선으로 삼성전자의 이번 투자는 팬택에게는 안정적 경영 기반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고, 삼성전자에게는 주요 거래선과의 협력 강화라는 윈윈 효과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팬택은 이번 투자유치로 마련된 재원으로 브랜드 마케팅에 집중하면서 IMD(Intelligent Mobile Device)산업에서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새로운 도약을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