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 갤S3..."이러다 삼성폰만 남겠네”

[기자수첩]

기자수첩입력 :2013/04/23 11:46    수정: 2013/04/24 09:13

정현정 기자

“갤럭시S4, 분명히 한 달 만에 갤럭시S3 때처럼 온라인에서 13만원에 풀린다” (이**)

“갤럭시S4도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떨이폰입니다.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얘기해 초기 판매량을 늘리려는 수작일 뿐입니다.” (leesuc****)

“보조금 기대로 초반에 안 팔릴 것 같으니까 이런 기사를 만드는 것 같은데 초반에 구입한 사람들 바보 만들지 않았던 경우가 없어서 이번에는 안속을 것 같네요.” (dand****)

“방통위의 가이드라인 강화로 갤럭시S3에는 과다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을 예정이라고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2~3주쯤 지나서 17만원 대란이 벌어졌는데 어째 시나리오가 똑같네요? 17만원 대란으로 가장 피해를 본 사람들은 삼성전자 충성고객들입니다.” (Shiz****)

본지 ‘17만원 갤럭시S4 나오기 힘든 까닭’ 기사에 달린 실제 댓글들이다. 강도 높은 보조금 규제 분위기에 갤럭시S3 출시 이후 벌어졌던 ‘17만원폰 대란’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란 취지의 기사였다. 하지만 독자들의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는 댓글에 결국 기자는 제조사와 한통속이 되고 말았다.

지난 주말에는 3만원짜리 갤럭시S3가 등장해 논란이 됐다. 온라인 휴대전화 판매 사이트 등에서 KT로 번호이동을 하는 조건으로 할부원금 3만원대의 갤럭시S3를 판매했다. 신제품인 갤럭시S4 출시를 앞두고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해 구형 제품 재고를 소진하려는 전형적인 밀어내기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명실상부한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사다. 세계 최고 기업에서 내놓은 전략 스마트폰이 한 달만 지나면 ‘버스폰’ 가격에 팔리고 ‘떨이폰’ 신세가 되는 것은 분명 굴욕이다. 물론 ‘17만원 대란’과 ‘3만원 갤S3’ 촌극에는 이동통신사와 대리점들의 가입자 경쟁과 재고 처리 의지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조사들은 브랜드 이미지를 제 스스로 깎아먹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까.

요즘 소비자들의 불만과 불신은 최고조다. 출시 한 달 만에 풀린 보조금에 제 값을 주고 휴대폰 산 소비자들만 이른바 '호갱'이가 됐다. 17만원 대란으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삼성전자 충성고객들이라는 댓글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상대적으로 비싼 국내 휴대폰 출고가와 요금 체계 때문에 국내 소비자만 봉이라는 불만도 계속된다. 미국 시장에서 적극적인 보조금 정책을 펴는 당사자가 바로 국내 제조사들이다.

소비자들 뿐만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1등 업체로 쏠림 현상이 가속화 되는데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일부 모델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 투입으로 고가형과 보급형 제품에 가격 차별점이 사라지고 스마트폰 시장 가격 체계에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휴대폰 시장도 도박판처럼 자본력이 있는 업체만 살아남는 기형적인 구조가 됐다.

우리나라 만큼 단말기의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받는 국가도 없다. 이미 ‘외산폰의 무덤’이 된 지 오래다. HTC, 모토로라, 노키아, 소니, 블랙베리 등 외산 업체들이 줄줄이 철수했다. 경쟁사인 LG전자와 팬택은 물건 최고로 만들어 놓고도 '갤럭시 브랜드'에 밀려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여기저기서 “삼성과 경쟁하기 너무 힘들다”는 곡소리가 나온다. 제품력이나 서비스 대신 대규모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제조사의 공세에 자본력이 없는 업체들은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명이다.

한 외국계 업체 관계자는 이같은 상황을 두고 “조만간 ‘콜라파고스(Korea +Galapagos)’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지도 모르겠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현재 한국이 자신들만의 표준을 고집해 세계 시장에서 고립됐던 일본과 다를게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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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들의 특성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국내 제조사와 이통사가 이같은 상황을 몰아간 측면도 없지 않다. ‘콜라파고스’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제품의 다양성과 소비자들의 선택권 문제가 첫 번째다. 대형 제조사들이 바잉파워를 쥐게 되면 가격 혁신도, 건전한 생태계 형성도 기대할 수 없다.

이쯤되면 시장 독과점 논란이 제기될 정도다. 국민 경제와 직결되는 제품이나 검색시장의 네이버와 같은 서비스에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휴대폰 시장 역시 특정 업체의 독과점이 소비자 피해를 부르는 것은 분명하다. 단말기를 팔기 위해 사업자와 제조사가 엄청난 보조금을 지급하는 한국의 휴대폰 유통 구조는 자본력이 없는 업체들을 고사시킨다. 이는 결국 소비자 선택의 폭을 줄이고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