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의 甲질…방송업계 “다 죽는다”

일반입력 :2013/05/21 11:43    수정: 2013/05/21 17:20

전하나 기자

가입자당 재송신료 과금(CPS), PP 끼워팔기 등 지상파 방송사의 오래된 ‘갑질’이 최근 들어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지상파는 콘텐츠 공급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이용해 이런 관행들을 계속 이어나가려고 하지만, 이미 대부분 시청자가 케이블이나 IPTV등 유료방송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는 만큼 업계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상파가 VOD 다시보기, 실시간 모바일 채널 서비스 등으로 새 미디어 환경에서도 영향력을 고수하려고 움직이면서 ‘지상파의 과도한 횡포를 막아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지상파의 오래된, 계속 이어질 甲질

지상파와 비지상파간 가장 오래된 갈등은 지상파 재송신 문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재송신 대가(CPS)라는 명목으로 유료방송사업자들에 가입자당 월 280원을 받고 있는데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이것이 너무 과하다며 맞붙는 싸움이다. 하지만 이런 반발에도 지상파 방송사들은 아랑곳 않고 협상 때마다 이를 더 올리기 위해 안간힘이다. 최근에는 CPS를 400원까지 올려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는 재송신을 중단하고 검은 화면만 송출(Black-Out)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대해 케이블방송업계 관계자는 “공공재인 지상파방송을 안정적으로 시청할 국민들의 권리가 무시당하는 것”이라며 “완전한 힘의 불균형 상황에서 필수재인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공급계약을 합리적으로 조율해서 정할 수 있는 협의체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일방적인 CPS 방식부터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지상파3사는 엄연히 다른 사업체임에도 불구하고 CPS 협상 때만큼은 똘똘 뭉쳐 같은 기준을 요구한다”며 “시청률 등 여러 요소에 따라 재송신 대가 협상이 달라져야 하는데도 지상파3사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 유료방송사들에게 일반적으로 CPS 방식을 관철시키는 것은 담합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지상파의 담합은 채널 계약 문제에서도 이뤄진다. 지난해 개별 SO인 아름방송이 지상파 계열 방송채널(PP)을 아날로그 편성에서 제외하자 지상파 3사가 곧바로 원상복구를 하지 않을 결우 나머지 11개 계열PP의 프로그램 공급도 모두 중단하겠다고 협박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관련 방송업계 관계자는 “지상파 3사가 담합해 불필요한 채널까지 계약을 강요하는 PP 끼워팔기는 해묵은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유료방송 VOD에까지 실력행사를 하고 있다. 유료방송사업자에 무료 지상파 주문형비디오(VoD) 홀드백(본 방송 이후 다른 플랫폼에서 재방송하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을 기존 1주에서 3주로 늘릴 것을 일방 통보해온 것이다. 지상파는 홀드백 기간이 짧아 콘텐츠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유료방송업계에선 지상파가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는다. 업계 관계자는 “지상파는 방송통신위원회 소관에선 콘텐츠 제작자(CP)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에선 플랫폼사로 분류된다”며 “CP로는 콘텐츠 값을 올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플랫폼 사업자로는 외주제작사들의 콘텐츠 값을 후려치는 자기모순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상파들은 현재 문화부가 방송시장 불공정 거래 개선을 위해 추진 중인 ‘방송제작 표준계약서’ 제정에 대해 “지상파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 불보듯 뻔하고 외주제작사의 이익만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며 관련 논의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있다.

N스크린 시장에서 영향력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경계할 만한 일이다. 지난해 5월 MBC와 SBS가 각각 40억원씩 출자해 합작 설립한 N스크린 서비스 ‘푹(pooq)’은 오는 7월 서비스 1년 만에 월간 기준으로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상파 3사가 기존 지상파 자회사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초기 투자비용을 크게 절감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는 달리 말해 N스크린 사업을 추진 중인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출발선상에서부터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다는 얘기다. 한 경쟁사 관계자는 “N스크린 사업에선 콘텐츠 비용과 시설 운영비가 가장 크게 발생하는데 여기서 콘텐츠 비용은 지상파에 들어가는 돈”이라며 “지상파가 앞으로 푹의 영향력을 앞세워 지상파 재송신 때처럼 콘텐츠 공급 비용을 언제 올릴지 모르는 불안에 떨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경쟁사업자는 “지상파들은 푹 매출의 80%을 콘텐츠 비용으로 지불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결국 지상파 매출구조를 늘려주는 것이므로 실질적인 콘텐츠 비용을 많이 낸다고 할 수 없다”며 “이 역시 일종의 담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유료방송업계 고위 임원은 “국민 재산인 주파수를 할당 받아 쓰는 지상파의 기본 책무는 시청자에게 무료보편적 서비스를 하는 것”이라며 “시청자 입장에선 난시청으로 방송을 직접 수신하지 못할 경우 유료방송으로 재송신하고, 이를 시간이 지나서 못보면 다시보기(VOD)를 이용하는 건데 시청자가 지상파를 접하는 수단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지상파는 돈을 더 많이 버는 아이러니한 구조”라고 꼬집었다.

■방통위의 지상파 무한 편애?

상황이 이런데도 방통위는 신임 위원장 취임 이후 연일 지상파 편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경재 위원장은 지난 15일 지상파 방송사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700㎒ 주파수 대역의 방송 배정, 지상파 콘텐츠 보호를 위한 재송신 제도, 중간광고 허용등 지상파측의 요구에 포괄적인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700㎒ 주파수 대역 문제는 방통위만의 소관 업무가 아닐 뿐더러 방송용보다는 통신용으로 가치가 더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중간광고 허용은 그 자체로 지상파의 역할과 시청권을 무시하는 행태라는 비판이 거세다.

급기야 이 위원장이 19일 KBS 1TV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MMS) 허용을 긍정적인 검토하겠다”고 발언하면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직접수신에 대한 투자 없는 MMS 요구는 ‘유료방송 압박용’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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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재전송 문제도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MMS가 또 다른 재전송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며 “지금처럼 공·민영 정책이 혼재된 상황에서 지상파 다채널방송으로 너도나도 추가 돈벌이에 나서면 결국 MMS도 공익확대가 아닌 지상파 수익확대 측면만 부각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배경에서 하루 빨리 법체계 정비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성진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처럼 정부가 사업자 논리에 끼어들 수밖에 없는 사전규제가 아니라 사후규제로 전환해 법체계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또 사업자를 불러다 놓고 이론 없는 주장을 조율할게 아니라 사업자를 배제하고 학계,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한 제3의 협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