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내 인터넷 저작물, 어떻게 하나요?

일반입력 :2013/02/14 08:35    수정: 2013/02/14 09:07

전하나 기자

‘배동희 TOEIC’은 10만 가량의 회원을 보유한 프리챌 최대 커뮤니티다. YBM영어학원 인기 강사 배동희씨가 12년간 운영해오다 2011년 프리챌이 파산하면서 네이버 카페로 부분 이전했지만 상당수의 자료와 강의 동영상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오는 18일이면 완전히 없어진다. 프리챌 서비스가 종료되기 때문이다.

경영상의 문제나 이용 환경의 변화로 생명력을 다한 인터넷 서비스가 사라지는 일이 잇따르면서 사용자의 데이터 보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인터넷에 남긴 글, 사진 등이 개인의 ‘디지털 자산’이라는 인식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이번 주말이 지나면 서비스를 종료하는 프리챌이 이용자 데이터 백업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일부 이용자들은 원성을 터뜨리고 있다. 프리챌 열혈 사용자였던 김현수씨는 “기존 커뮤니티 이용자에게 아무런 백업 툴도 없이 알아서 저장하라는 건 문제가 있다”며 “또 많은 자료를 개인 PC로 옮겨야 하는데 한 달의 시간은 불충분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떠나는 기업, 사라지는 인터넷…남은 사용자 발만 동동

이 밖에도 트위터에는 “9년간 기록해 놓은 수업 일지가 다 날아가게 생겼다 (@suh**)” “프리챌 커뮤니티 자료를 2주째 일일이 옮기는 중. 프리챌 폐쇄 한 달만 미루면 좋겠다( @ch_P***)” “프리챌 너무 아쉽다. 2000년대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여유로우면 회상에 젖어서 차근차근 정리해 볼 텐데..서비스 종료일은 며칠 안 남고 작업은 밀리고(@ege**)” 등의 아쉬움과 불만 섞인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현재 일부 이용자들은 백업에 필요한 소스 코드 등을 자발적으로 제작, 배포하고 있기도 하다.

데이터 이전 문제로 사용자가 곤욕을 치른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31일부로 한국 시장서 철수한 야후코리아는 당초 블로그 데이터 백업과 다운로드 서비스 기간을 3개월로 공지했다가 얼마 후 슬그머니 1개월로 단축해버렸다. 그 바람에 데이터 백업을 미뤘던 이용자들은 피해를 봤다.

한때 열과 성을 쏟았던 디지털 저작물이 말 그대로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이용자들의 상실감은 상당히 크다. 최근에는 PC통신 ‘나우누리’ 서비스가 종료되자 ‘나우누리 살리기’ 모임의 대표인 임모㊿ 씨가 종료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운영권을 인수하겠다며 나서는 일도 생겼다. 임씨는 “나우누리가 종료를 공지한 두 달의 기간은 저작물을 옮기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며 “부진으로 20여년 간 회원들이 추억을 만든 인터넷 공동체를 하루아침에 소멸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책임하게 떠나는 기업에 이용자가 항변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구태언 테크앤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민간회사가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 소비자보호법에 유료로 가입한 서비스 보상받을 권리는 있지만 무료서비스는 이용자 동의에 대한 부분이나 손해배상 등이 면책된다”고 설명했다.

이병찬 법무법인 정진 변호사도 “경영악화로 망해가는 기업이 백업툴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 어렵고, 경영과 무관하게 다른 사람들의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동안 서버 비용 내면서 이를 보존해야 할 의무를 지울 수도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서비스 변경과 폐지와 관련, 공고기간, 공고절차 등을 약관이 아닌 법제화하면 콘텐츠가 백업도 못한 채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개인 디지털 재산을 바라보는 국내외 시선 차이

이러한 가운데 국내 포털사들의 데이터 백업 여부도 관심거리다. 현재 국내 1, 2, 3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SK커뮤니케이션즈 등은 데이터 백업 서비스에 대한 일관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관계자는 “경제적 가치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공개게시판 글 등을 포함한 개인 데이터 보존 문제와 관련 정책 결정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각 회원사별로 서비스가 세분화돼 있다 보니 일관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프리챌 등 과거 커뮤니티 서비스나 PC통신 서비스와 달리 포털 서비스의 이용 행태가 달라진 점도 한 몫한다. 가령 네이버는 N드라이브, 다음은 다음클라우드, 싸이월드는 T클라우드 등 각각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다. 이용자는 이를 통해 실시간으로 사진 백업 등을 해둘 수 있다.

반면 트위터, 페이스북 등 외국 SNS의 경우에는 사용자 계정 자체를 백업하는 아카이브 기능을 일반 이용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사용자들은 자신이 올린 트윗이나 페이스북 포스트, 쪽지 내용 등은 물론 친구 명단까지 모두 내려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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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차이는 회원 정보를 대하는 문화나 법 제도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포털업계 한 관계자는 “현행 국내 정보통신망법은 개인 정보 활용을 최소화하고 악용을 방지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보니 국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이 고객 정보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KISO 관계자는 “예전에 연평도 사건 때 유족이 고인의 온라인 유산에 접속해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법적으로 개인의 이메일이나 비밀 게시글 등을 타인이 본다는 것을 통신기밀침해로 보지 않을 근거를 찾지 못해 무산된 적이 있다”며 “앞으로 개인 데이터 보존에 관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