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법 시행 코앞, 갈 길 먼 ‘웹접근성’

4월 11일부터 모든 법인체 웹접근성 준수 의무화

일반입력 :2013/03/20 08:24    수정: 2013/03/20 11:18

전하나 기자

SBS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주인공 오영(송혜교 분)은 시각장애인이다. 극 중 나오는 주인공의 스마트폰은 국내 P사 제품. 드라마에선 그가 친구나 가족의 이름을 말하면 이 휴대폰이 알아서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장면이 이따금 나온다. 이는 구글 안드로이드 OS에서 장애인을 위한 ‘토크백(Talkback·스마트폰 화면을 읽어주는 기능)’ 모드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 OS는 아직 한글 ‘텍스트투스피치(TTS·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기능)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마켓에서 ‘SVOX’ 등의 앱을 내려 받으면 되지만 이 역시 장애인들에게는 불편이 따른다.

구글 OS를 탑재하는 국내 제조사들이 자체적으로 휴대폰에 엔진을 탑재하는 경우도 차츰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그 관심도는 낮다는 게 장애인단체들의 설명이다. 20일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산하기관 웹와치의 오정훈 인증진단팀장은 “최근까지도 국내 제조사폰들은 해외 수출용에만 TTS 엔진을 탑재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접근성을 가장 잘 구현한 것은 단연 애플 아이폰이다. 아이폰은 출시 단계부터 ‘보이스오버(Voice Over·장애인을 위한 음성지원 기능)’를 기본 탑재했다. 설정 메뉴에서 버튼을 눌러 활성화시키기만 하면 사용 가능해 편리하다는 평가다.

결국 장애인들은 국내업체가 만든 스마트폰을 쓰고 싶어도 외산폰인 아이폰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다. 오 팀장은 “본래 스마트폰의 터치도 IT산업의 새로운 화두인 접근성에 대한 문제에서 출발해 고안된 기능”이라며 “장애인 음성해설 기능도 이 같은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발등의 불’ 장애인차별금지법…웹접근성은 어디에

정부는 지난 2007년 ‘장애인 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을 제정했다. 2008년부터 공공기관 등을 통해 단계적 적용을 거친 이 법은 오는 4월 11일부터 온라인 쇼핑몰, 포털 등 모든 민간 법인에 의무화된다. 하지만 국내 웹사이트의 장애인 접근성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특히 공공부문에서조차 장차법 대응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초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KWCAG)에 근거해 분석한 결과 중앙정부 웹 서비스의 약 50%가 ‘상’으로 평가된 반면 지방정부 서비스는 80%가 ‘하’로 분석됐다. 오정훈 팀장은 “수 만개에 이르는 공공기관 사이트의 20~30% 정도만이 웹접근성 준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장애인들이 실제 가장 많이 쓰고 있고, 또 많이 쓰고 싶어 하는 포털·쇼핑·금융 등의 민간 서비스 영역이다. 당장 내달부터 웹접근성 준수는 법적 유예기간 없이 모든 법인체의 의무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대부분의 민간 업체들의 웹접근성에 대한 인식과 준비는 부족한 실정이다.

한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법상에서 규정된 접근성이라는 범주 자체가 굉장히 넓은 데다 기준점이 되는 전례가 없다 보니 세부적인 기술 적용에 시간이 걸린다”고 토로했다.

오픈마켓 서비스업체의 한 관계자도 “현재 사업자가 제공하는 상품이미지 올릴 때 대체 텍스트 올려라라고 권고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작은 소호몰들의 인식이 높지 않은데다 수많은 상품 이미지를 대체 텍스트로 올리는 것 자체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푸념했다.

이렇게 민간기업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핑계로 장차법 준수를 미루고 있는 데에는 법적 구속력이 약하다는 것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법이 4월부터 시행된다고 해도 불이익을 받은 장애인이나 기관이 인권위에 해당 사이트를 제소하지 않으면 별도의 시정명령이나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웹접근성 준수 의지가 낮은 민간기업의 참여를 높이려면 강력한 제재와 아울러 현행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뜯어 고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오 팀장은 “장차법에는 ‘장애인을 위한 정보접근권’이라고 명시돼 있지 ‘웹접근성’이라는 용어는 없기 때문에 구속력이 약하다”며 “특히 지속적 차별, 의도적 차별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여러 해석 여지를 남길 수 있는 맹점이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포털3사, 웹접근성 앞으로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가장 높게 요구받는 포털기업들은 저마다 노력을 하고 있다. NHN은 재작년 웹접근성 프로젝트를 전사 핵심 과제로 정하고 관련 전문인력을 구성했다. 이렇게 여러해 동안 진행해온 연구의 과정과 결과물을 엮어 지난 1월 웹접근성 가이드북을 발간하기도 했다.

특히 NHN은 모바일 앱에 대해서도 별도 가이드를 만들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22차 세계 장애인 재활대회(RI세계대회)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공식 앱을 지원했다.

박태준 NHN테크놀로지서비스(NTS) 웹표준팀장은 “매달 5차례씩 자회사인 사회적기업 엔비전스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사용성 테스트를 하고 있다”며 “서비스마다 정도가 다르겠지만 3~4월까지는 웹접근성 100% 적용을 완료한다는 목표”라고 말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도 웹표준 및 웹접근성 향상 가이드를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이원주 다음 웹표준기술팀장은 “내부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을 웹접근성 취지에 따라 많은 이에게 공유 및 개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특히 소스 코드 뿐만 아니라 이용자 경험 측면에서 개발자는 물론 기획자, 디자이너까지 웹접근성에 대한 이해와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 회사는 최근 보이스오버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의 테스트 결과와 의견을 반영한 iOS뮤직앱 개선 현황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현재 제공 중인 서비스 뿐만 아니라 향후 오픈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도 이 같은 검증 과정을 철저히 거친다는 방침이다.

SK커뮤니케이션즈도 4월 중 완료를 목표로 UXD센터 총괄 아래 각 관련부서에서 네이트·싸이월드·네이트온 웹접근성 적용을 마무리 중이다. 지난해 약시·전맹·지체장애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사용성 테스트와 전사 구성원 대상 웹접근성 교육도 실시했다. 김정윤 SK컴즈 UI개발팀장은 “변화하는 기술환경에 맞춰서 PC중심의 웹접근성 마련 외 모바일 서비스 사용성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용 아닌 투자”…웹접근성 패러다임 바뀌어야

전문가들은 장차법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선 웹접근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웹접근성 준수를 사회적 비용 절감이라는 단순 의무의 문제라거나 규제에 대한 대응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장기적 투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박태준 NTS웹표준화팀장은 “접근성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사용자들의 사용성과도 연결된다”며 “늘어나는 후천적 장애인이나 노령화 인구를 생각한다면 웹접근성을 기업 목표나 새로운 시장 개척의 개념으로 고려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 후천적 장애인은 약 240만명(2012년 보건복지부 조사). 전체 장애인 수 약 268만명의 90.5%에 달한다. 또 같은 해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인구의 11.8%로 올해 이후 그 규모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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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순 NIA 정보접근지원부 부장은 “법 때문에 마지못해 웹접근성에 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그동안 고객으로 보지 않던 장애인이나 노인 등을 사용자로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웹접근성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은 투자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NIA의 웹접근성 연구소나 전문 인증진단 업체에 의뢰해서 해결하는 식으로 노력을 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