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판즈워스TV의 몰락
그가 메인주로 내려가기로 한 직접적인 배경에는 TV특허기한이 바짝바짝 줄어드는데 따라 생겨난 판즈워스의 심인성 병세가 숨어 있었다. 아내 엠마는 밤낮으로 술을 마시는 그를 의사에게 데려갔고 신경쇠약이란 진단을 받았다.
판즈워스는 엄청난 주식을 판 돈으로 메인주 브라운스타운 숲에 공들여 지은 별장에서 건강을 회복했다. 수영장에 연구실까지 만든 판즈워스는 TV성능향상은 물론 새로운 연구를 병행하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해낸 미래의 대체에너지인 오염없는 핵융합기(Fusor)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었다.
그렇게 보내던 2차대전 초기인 어느 날. 워싱턴에서 메인주까지 찾아온 미 국방부 파견관이 그를 방문했다.
“판즈워스씨의 특허를 군대에서 무료로 사용해도 좋겠습니까?”
미국방부는 레이더에 사용되는 진공관 제조에 판즈워스의 기술이 필요하다며 판즈워스의 특허에 대한 무상사용권을 요구해 왔고 판즈워스는 동의했다.
판즈워스는 메인주에 칩거했을 때 그는 또다른 인사의 방문도 받았다. 스탠포드대의 데이비드 L웹스터라는 교수가 찾아와 그에게 맨해튼계획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하지만 그는 아인슈타인박사와 마찬가지로 대량살상 무기를 만드는데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전쟁은 이어졌고 포트웨인시에 있는 판즈워스텔레비전앤라디오사도 전쟁기기용 전자부품 생산라인으로 전환됐다. 회사는 갑자기 수백명의 직원들을 고용해 국방부가 요구하는 레이더용 진공관 등의 전자부품 등을 생산해야 했다. 그리고 수백만달러 규모의 엄청난 자금이 회사로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그도 모르는 새 판즈워스텔레비전앤라디오에는 뭔가 좋지 않은 기운이 돌고 있었다.
판즈워스의 행운은 1945년 8월 2차대전 종전 직전 그의 아들 판즈워스3세가 15세의 나이에 우수한 성적으로 매사추세츠공대(MIT) 합격통지서를 받으면서 활짝 핀 듯 했다. 하지만 두형이 비행기를 몰다가 한명이 추락사고로 죽었고 메인주 서부에서 일어난 산불은 판즈워스의 별장이 있는 브라운즈빌시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그가 일군 전재산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게다가 1947년엔 판즈워스의 TV카메라 특허와 TV수상기 제조와 관련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2개의 핵심 기본 특허의 기한이 만료됐다. 안타깝게도 일반인들 대상의 TV시장은 이제 막 황금기라 할 만한 특수시대가 맞고 있었다.
판즈워스는 여전히 100개 이상의 TV관련 특허를 가지고 있었고 일부는 여전히 가치있는 특허였다. 하지만 소멸된 특허 2개는 TV제조업체라면 누구나 사용해야 하는 그야말로 엄청난 로열티를 거둬들이는 황금특허였다.
‘더 이상 이 황금같은 특허에 대한 로열티는 들어오지 않는다.’
판즈워스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1948년 판즈워스가 그가 인디애나주 포트웨인공장으로 돌아오자 판즈워스텔레비전 전직원이 나와서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모두가 먼저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판즈워스텔레비전은 테이블용 TV에서 거실용 대형TV세트까지 모조리 갖춘 종합TV제조업체를 지향했다. 거실용 제품은 TV 주변을 둘러싸주는 나무가구로 장식돼 있는 게 보통이었다. 이 때문에 닉 니콜라스 사장은 가구회사까지 사들이는 무리수를 두어야 했다.
1946년에 첫 모델이 나온 제품들의 광고를 위해 잡지에 50만달러에 해당하는 잡지광고까지 집행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수요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일부 핵심부품을 오직 RCA만이 제조하고 있었다. 이는 판즈워스텔레비전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묘하게도 판즈워스텔레비전은 항상 RCA의 핵심부품 공급 명단의 맨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산전수전을 겪은 니콜라스사장이라 할지라도 부품공급 부족으로 인한 생산 및 적기 공급지연을 버텨낼 재간은 없었다. 어느 새 75개 TV제조업체가 생겨나 치열한 시장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마당이었다. 판즈워스가 돌아왔어도 상황이 바뀔 여지는 거의 없어 보였다.
“안좋은 소식이 한가지 더 있네. 은행이 전쟁중에 방산라인 전환자금으로 빌려 쓴 돈을 갚아 달라고 독촉하고 있네.”
판즈워스와 닉은 1년간 대출금 변제 연장을 요청했고 판즈워스는 최상층 소비자들 잡기 위해 ABC의 일요일밤 인기 프로그램인 메트로폴리탄오페라프로그램에 광고를 했다. 일시적으로 공장은 잘 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판즈워스텔레비전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1년간의 채무변제 유예기간이 가까워 올 무렵 니콜라스 사장이 판즈워스에게 말했다.
“자네의 남아있는 모든 특허를 RCA,GE,제니스에게 일시불 특허료를 받고 매각하면 어떨까? 이들 3사가 승낙하면 300만달러가 한꺼번에 들어올 걸세.”
약간의 주식만을 가진 판즈워스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회사를 매각하기로 했다.
1949년 봄.
“판즈워스텔레비전의 주식을 140만달러에 인수하는 조건으로 모든 자산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뉴욕소재 거대 통신회사 IT&T(International Telephone and Telegraph Corporation)가 거의 떨이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회사를 매입하겠다고 제안해 왔다. 여기엔 판즈워스가 부사장으로 남는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애당초 ITT는 판즈워스텔레비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판즈워스의 뛰어난 두뇌를 사고자 한 것 뿐이었다. 그는 꼭 10년 전인 1939년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촉망받는 30대에 선정된 인물이었다. 함께 선정된 인물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어네스트 로렌스, 야구선수 루 게릭, CBS사장이 될 빌 페일리, 그리고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였다.
판즈워스텔레비전을 인수한 ITT는 회사 명칭을 ‘판즈워스전자(Farnsworth Electronics Company)’로 바꾸었다. 판즈워스에게는 과학용,상업용,군사용을 불문한 다양한 부품을 설계하라는 업무지시가 떨어졌다.
하지만 판즈워스에게는 이미 나머지 일평생을 바쳐 발명할 주제는 '핵융합기기(Fusor)'였다. 이미 전쟁중에 스탠포드대 웹스터 교수가 제안한 맨해튼계획에 반대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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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핵융합은 우라늄같은 원자의 핵분열에 따른 방사능오염없이 미래의 에너지를 책임질 대체에너지가 될 터였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TV의 아버지 판즈워스는 평생 핵융합기의 연구에 바치게 된다. 판즈워스의 연구는 훗날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국제적 핵융합기술 프로젝트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개인이 하기엔 너무나도 거대한 연구였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RCA제국과 판즈워스의 악연은 끊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