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공룡 AT&T-판즈워스, TV 크로스라이선싱 맺다
1937년 2월 초. 워싱턴D.C. FCC건물.
FCC의 위원들이 TV시장과 관련한 청문회를 가진 가운데 한 남자에게 (AT&T)특허를 확보하게 된 과정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AT&T동축케이블 특허를 갖고 있지 않으며 그 어느 것도 가지려는 노력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 날 증언에 나선 사람은 TV발명가인 파일로 T. 판즈워스였다. 그는 FCC가 시행하는 통신산업의 독점적 성장세에 대한 조사과정에 참고인 자격으로서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와 있었다.
FCC는 그를 통해 AT&T가 동축케이블의 라이선스를 제공하지않는 등 미래에 등장할 TV용 통신기술을 독점하고 있는지 알고자 했다. AT&T가 혼자서만 동축 케이블기술을 갖고 아무에게도 나눠주지 않았다면 이는 반독점법 위반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때까지는 그랬었다.
판즈워스씨, AT&T와 '그 기술'에 대해 크로스라이선스를 맺을 의향이 있나요?
느닷없이 청중석에서 한 중년남자가 일어나 다음 질문을 기다리고 있는 판즈워스를 향해 질문을 하겠다고 요청했다. 그는 자신을 AT&T 사장인 월터 S. 기포드라고 소개했다.
판즈워스는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놀랐지만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답했다.
물론이죠. AT&T와의 특허 크로스라이선스를 환영합니다.
'그 기술'이란 다름아닌 AT&T의 동축케이블 기술이었다.
그럼 이 청문회를 마치고 나서 볼까요?
기포드가 말을 마치자 청문회장은 침묵에 빠져 들었다.
AT&T는 기포드 사장의 이 순간적인 재치로 순식간에, 그리고 공개리에 TV산업 분야에서의 반독점혐의를 받을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어냈다. TV사업을 바라보는 AT&T의 시각은 유연했다. 회사의 미래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TV용 진공관 여부에 달려있는 RCA와 달랐다.
AT&T는 동축케이블을 내세워 판즈워스와 크로스라이선싱 계약을 해도 잃을 게 없었다. 모든 게 회사의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는 일이었다.
판즈워스와 AT&T 간에 구체적인 크로스라이선싱 조건이 마련되는 데는 6개월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두 회사간 협약이 발표됐을 때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 협약의 파괴력을 1937년 8월 14일자 비즈니스위크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었다.
AT&T와 판즈워스의 계약은 일반적으로 RCA가 미래의 TV에 대해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 장악력이 느슨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판즈워스는 이제 기본적인 방송특허를 가졌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는 이제 RCA와 보다 대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다. 판즈워스가 TV를 생산하려고 한다면 그 길은 더 이상 막혀있지 않다.
이로써 판즈워스는 반 사노프 제국 동맹을 결성했고 거인 RCA에게 강력한 위협으로 등장했다. 두 동맹업체는 그들이 원한다면 RCA를 놔둔 채 TV를 생산하고 방송할 수 있게 됐다.
판즈워스의 쿠데타나 다름없는 이 협약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는 경악했다.
이는 또한 RCA의 특허그늘에 있던 라디오제조업체들에게 이제 판즈워스로부터 TV장치와 기기를 사서 제조를 해도 되겠다는 믿음을 심어주게 됐다.
컬럼비아방송(CBS) 등이 뉴욕 크라이슬러빌딩에서 TV방송실험을 위해 판즈워스의 이미지디섹터를 구매하겠다고 접촉해 왔다.
사노프에게는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이 모든 상황은 라디오업계가 RCA를 배제한 채 독자적 협상조건으로 판즈워스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신호탄이었다.
여전히 사노프는 새로운 기기인 이미지 오디콘을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미지오디콘을 시험해 본 결과 이 진공관은 이전에 나온 모든 화상관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었다.
이미지 오디콘의 성능이 거의 완전하다는 평가가 내려졌을 즈음 RCA는 가차없이 아이코노스코프를 버렸다.
외부에서 볼 때 아이코노스코프의 존재이유는 이미지오디콘이 나오기 전까지 특허소송의 방패막역할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AT&T-판즈워스간 특허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노프는 재빨리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1937년 하반기 RCA변호사로부터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지 오디콘 특허 특허를 검색해 본 결과 미특허 2,087,633호에 저촉되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RCA연구원들의 개발한 이미지오디콘이란 기술은 이미 판즈워스가 1933년 특허를 받은 기술과 같은 내용이었다. 분명 RCA연구소가 오디콘을 발명하기 4년 전에 특허가 주어진 기술이었다.
RCA특허담당부서에서 미특허청에 소송중인 주장에 대한 이의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특허청의 결론은 이랬다.
RCA의 이미지 오디콘 튜브로 제출된 기술의 특허는 판즈워스에게 주어졌다. 다만 '이미지오디콘'이란 이름에 대해서만은 RCA의 상표권이 인정된다.
1939년까지 데이비드 사노프는 TV연구를 위해 거의 물쓰듯 돈을 써댔다. 하지만 TV연구비에 거의 1천만달러나 투입했음에도 단하나의 특허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반면 그 10%인 100만달러를 사용한 판즈워스는 전자식 TV와 관련한 거의 모든 특허를 확보해 놓고 있었다.
이쯤 되자 사노프도 서서히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대중 연설에서 그는 여러번씩 판즈워스를 언급하는가 하면 그가 TV에 기여한 점 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상 다른 회사의 발명가로 언급됐다. 하지만 판즈워스의 사람들이 그런 발언을 알게됨에 따라 월스트리트도 소문을 확인해 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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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RCA의 마음이 변했다..
실제로 1938년 초부터 판즈워스의 변호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RCA와의 크로스라이선스 계약체결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