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을 나는 그림...TV의 발명㉖월가 큰손 개입

일반입력 :2013/02/22 00:01    수정: 2013/02/23 06:42

이재구 기자

30■판즈워스TV앤라디오공장을 둘러싼 기류-월가 큰손의 개입

“쿤이나 로에브같은 월가의 명성있는 투자자들을 합류시켜 판즈워스의 연구에 투자하도록 하면 어떨까?”

1937년 여름. 기존의 연구개발자금 마련 방식을 바꾸자는 논의가 제스와 판즈워스 간에 오갔다. 이는 1929년 이래 바뀌지 않던 자금마련방식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었다. 둘 사이에 오간 논의는 맥카거의 영향력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었다.

때마침 월가에서도 판즈워스의 명성이 서서히 높아지고 있었다. 필의 초기 후원자 중 하나였던 조지 에버슨이 쿤, 로에브 같은 월가의 쟁쟁한 투자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이 두 거물이 판즈워스연구소 지원을 위해 가세하자 이들에게 투자한 연구소,회사, 투자자들이 판즈워스연구소 주식을 엄청나게 사들이기 시작했다. 1937년 봄 제스 맥카거가 랩갱들을 해고할 때 그는 새로 가세한 이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세하면서 회사 경영층의 권력이동이 이뤄졌고 판즈워스의 연구비를 마련하는 과정은 훨씬더 복잡해졌다.

이제까지는 일이 생기면 판즈워스는 최초의 투자자 몇 명과 논의하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는 더많은 투자자들로 구성된 이사회의 요구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정말 다양한 사업계획을 내놓았지만 무엇보다도 더 확실한 사업의 안정성을 요구했다.

우리가 투자하는 조건은 TV시장이 만들어질 때까지 자네가 공장을 사서 라디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세.”

이들이 만난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쿤과 로에브는 이렇게 판즈워스에게 제안해 왔다. 라디오 이후의 시장을 내다보고 투자하려는 회사는 판즈워스의 회사만이 아니었다. 장차 TV시장의 패권을 노리는 기업명단에는 제니스, 듀몽,필코, 크로슬리, 에머슨 등 라디오업계의 간판 브랜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새로운 미디어의 성장세가 가속되자 필라델피아의 TV연구소는 물론 워싱턴D.C.의 정책적인 쪽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미연방통신위원회(FCC)가 모든 방송관련 유통채널용 주파수배분에 관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사선, 프레임 같은 모든 방송관련 규격은 모든 방송국과 텔레비전 생산에 참여하려는 제조업체에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게 정해지지 않으면 지역별로 모두 다른 TV수상기를 가질 수 밖에 없을 터였다.

게다가 이 규격이 없으면 상업용 방송, 즉 광고를 하는 상업방송송출도 불가능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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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방송국과 라디오세트 제조업체들은 TV의 발전과 도입을 늦추려고 의회와 FCC를 상대로 로비하고 있었다. 일단 TV표준이 설정되면 수십년간 이를 바꾸기 힘들리란 것을 잘 알고 있는 FCC로서도 표준확정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FCC는 주파수 배분도 책임지고 있었다. 하나의 TV방송 주파수는 12개의 라디오채널 주파수를 잡아먹었기에 특정 지역에서의 TV채널 수를 제한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