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을 나는 그림...TV의 발명㉔최초의 보상 5만달러

일반입력 :2013/02/20 06:00    수정: 2013/02/21 08:27

이재구 기자

26■영국에 등장한 전자식TV

1933년의 어느 날. 한창 주가를 올리던 기계식TV의 아버지 베어드의 행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런던 EMI코퍼레이션의 과학자들이 전자TV시스템을 BBC 고위임원에게 시연한 이후였다.

이 TV시스템 수신부 끝은 음극선관(Cathode Ray Tube CRT), 즉 카메라촬상관이었는데 EMI가 명명한 에미트론(Emitron)이란 이름으로 더욱더 잘 알려져 있었다.

이상한 것은 에미트론 관은 또다른 기기, 즉 RCA의 블라디미르 즈보리킨이 만든 카메라 촬상관(撮像管)인 아이코노스코프(Iconoscope)와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즈보리킨이 같은 기간동안 RCA를 위해 시연한 촬상관이었다.

두 촬상관의 유사점이라면 둘다 모두가 똑같이 한쪽면에 개별 광전판(discrete photoelectric islands)으로 구성한 포토캐소드를 적용했으며 잘 사용하지 않는 삼각 스캐닝 구성으로 설계했다는 점이었다.

에미트론과 아이코노스코프가 사실상 같은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유일한 의문점은 “어느 연구소가 먼저 이 촬상관을 개발했는가?”하는 점뿐이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똑같은 기술이 개발되는 것이 가능합니다. 흔히 오직 하나의 방식만이 유일한 해답일 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EMI에서 에미트론을 개발했다는 J.D.맥기(J. D. McGee)라는 과학자는 런던에서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RCA와 영국의 EMI라는 두 전자업계 공룡들 사이에는 오랫동안 크로스라이선스협약을 통해 정보와 특허를 공유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34년 가을, 판즈워스는 미국내에서 RCA와의 특허전쟁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겠다는 벅찬 희망 속에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른 채 유럽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그의 미국내 소송상대인 RCA는 이미 대서양건너편에 자신의 동맹군과 손잡고 작전을 짜고 있었다.

이런 막후의 거래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없는 판스워스는 사우샘프턴에 배가 도착하고서도 자신과 RCA의특허싸움이 미국에서처럼 유럽에서도 똑같이 전개되리라는 점을 꿈에도 알 수 없었다.

27■베어드로부터 특허라이선스 선불 5만달러를 받다

1934년 대공황에 휘둘린 미국의 경제는 최악을 기록하고 있었다. 실업률은 22%에 이르고 있었다. 하지만 RCA는 루즈벨트대통령의 라디오좌담이 국민의 인기를 얻으면서 서서히 수익성을 회복해 가고 있었다.

이 해 가을 판즈워스와 그의 소중한 화물이 실린 배가 사우스햄프턴 항에 도착했다.판즈워스, 실험실 조수 2명, 그리고 특허협상 과정에서 그에게 논리적 조언을 해줄 스키 터너와 함께였다.

설치를 마치고 판즈워스와 함께 한 스키 터너는 베어드의 집에 TV실험장치를 설치토록 한 후 2층에 있는 베어드 측 사람을 불렀다. .

“아래 층으로 내려와 전자식 TV를 한번 보시죠.”

카메라와 TV수상기를 방 문 근처에 배치됐다. 그리고 브리티시고몽 사람들이 방안에 들어설 때 알 수 없는 곳에서 나온 놀랍도록 깨끗하고 선명한 그들의 이미지와 맞닥뜨리도록 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들의 모습을 프레임 당 300라인으로 비쳐주는 뚜렷한 화면이었다. 베어드텔레비전 사란들이 그동안 봐 온 기계식TV의 성능은 초당 60프레임의 흐릿한 화면이 고작이었다. 놀라자빠질 지경이었다.

그동안 잘못된 투자를 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브리티시고몽사람들은 당장 이사회를 열고 판즈워스와 스키 터너를 불러들였다.

이사진들은 멍해진 채 인내심을 갖고 앉아 있었다.

“통상적인 로열티 외에 5만달러를 선불로 주십시오.”

판즈워스의 입장은 확고했다. 5만달러를 현찰로 내든가 아니면 라이선스제공을 없던 일로 하든가 둘 중 하나였다. 협상은 풀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당초 브리티시 고몽 측이 생각한 것은 크로스라이선싱(기술 상호교환) 쪽에 가까웠지만 베어드의 특허가 개입될 여지는 없어보였다. 반면 판즈워스는 사실상 특허를 라이선스해주는 것만을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다.

판즈워스와 스키 터너는 서로의 눈빛을 읽었다.

‘빈손으로는 절대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

브리티시고몽 이사회의 대변인은 이 젊고 경험이 별로 없는 협상자들이 화해안을 제시할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판즈워스는 그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우리는 캐시를 원합니다.”

판즈워스는 브리티시고몽 이사진 앞에서 협상이 끝장나 버릴 수 있음을 확신시킬 만큼의 어조로 마지막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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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이사회는 결국 판즈워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5만달러의 현금은 판즈워스가 10년간 연구개발에 매진 한 끝에 나온 첫 번째 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