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을 나는 그림...TV의 발명㉕엉켜버린 천재의 희망

일반입력 :2013/02/21 08:27    수정: 2014/04/24 18:04

이재구 기자

28■엉켜버린 천재의 희망

이런 갑작스런 성공에 자극받은 판즈워스와 스키 터너는 미국으로 오는 배위에서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배에서 보낸 한주일 간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이 횡재를 더욱더 잘 키워 성공으로 이끌지에 대한 것이었다.

수 개월 전 프랭클린연구소에서 전자식TV를 시연했을 때 수천명이 이 놀라움을 경험하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서지 않았던가.

판즈워스와 스키 터너는 다음단계가 주간 TV방송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영국에서 받은 라이선스료를 정규 실험방송용 스튜디오 구축에 투자하기만 하면 즉각 실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5만달러의 라이선스비는 온전히 판즈워스가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판즈워스의 특허가 사실상 후원자인 제스 맥카거(Jess McCargar)의 지주회사 텔레비전리미티드(Television Limited)소유인 만큼 이 돈도 회사의 돈이었다.

이 회사는 판즈워스가 1년전 필코라디오(Philco Radio Company)에서 퇴사했을 때 돈을 모으기 위해 세운 회사였다.

판즈워스는 여전히 이 회사에서 엄청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대주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오히려 조금씩 이 회사의 지분을 인수한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이 이사회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사회 측은 영국까지 가서 담판해 확보해 온 베어드텔레비전의 라이선스비용 처분 방식을 결정할 속셈을 감추지 않았다.

뉴욕에 도착한 판스워스가 샌프란시스코로 전화를 걸어 성공적인 라이선스딜에 대해 소식을 전하자 제스 맥카거는 이렇게 말했다.

5만달러를 즉각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사무소로 전달해 주게. 스튜디오를 만드는 건은 이사회가 이를 검토할 때까지 보류될 것일세.

판즈워스와 스키 터너는 높은 수익을 가져다 줄 방송사업의 가능성이 맥카거의 생각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제스는 5만달러의 금액이면 오래된 청구비용, 예를 들면 RCA와의 소송 변호사비용으로 이 가운데 3만달러를 지불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판즈워스가 정말로 두려워한 것은 그의 후원자들이 그의 발명품에 대해 기존의 ‘생산’이라는 비즈니스 모델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는 주주들이 공장을 세워 제조하고 상품을 만들어 파는 방식으로 판즈워스텔레비전의 미래를 굳혀 버릴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29■제스 맥카거와 판즈워스, 극한 대립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모든 미국가정이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936년 콜리어스매거진(Collier’s Magazine)은 ‘발명가 필’이라는 제목으로 판즈워스를 특집으로 소개했다. 미캐닉스앤인벤션매거진도 특집을 마련했다. 역시 판즈워스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명성은 더욱더 높아졌다.

이런 텔레비전 보급 및 일반화에 대한 예언이 점점 더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RCA의 특허소송이란 트집에 말려있는 판즈워스에게 연말 TV생산은 쉽지 않아보였다.

판즈워스의 변호사가 35개의 추가 특허출원을 해놓고 있던 때였다. 판즈워스의 랩갱은 이가운데 14개의 특허출원자가 돼 있었다. 이들은 더욱더 바빠졌다. 필라델피아 교외에 있는 연구소에서 자신들의 연구개발 작업 외에 더많은 방문객과 과학자들을 위해 설명하는 시간까지 들여야 했다.

경영진들은 특허를 RCA에 팔아버리고 싶어했지만 10년간 기다려왔던 판즈워스는 그럴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그가 영국의 베어드와 체결한 라이선스계약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마르코니를 합병한 EMI는 이제 RCA의 아이코노스코프를 사용할 수 있었다. BBC는 판즈워스의 이미지디섹터 대신에 RCA의 아이노코스코프와 다름없는 마르코니-EMI의 에미트론관을 표준으로 선택했다. 그것은 이미지디섹터보다 화면이 밝긴 했지만 주사선해상도는 떨어졌다.

베어드와 판즈워스는 함께 이미지 디섹터를 영국 표준TV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 EMI와 경합했지만 결국 패했다.

판즈워스는 1934년 독일의 보슈 페른세(Bosch-Fernseh)의 고에르츠와 맺은 계약으로 다소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이미지디섹터 기술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게임에서 방송할 때에도 적용된다. 이후 필이 펨과 로열티를 받으러 독일을 방문했을 때 나찌하에서 일하던 그는 미국에 한푼도 낼 수 없다고 밝혔다. 체포위기의 판즈워스는 간신히 빠져나왔다.)

필과 펨이 영국에서 문제를 매듭짓고 돌아왔을 때 연구팀은 완전히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판즈워스는 TV방송분야에서 보다 이익이 나는 미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미 라디오방송은 엄청난 수익창출을 증명해 보여 준 바 있었다.

지난 10년간 그의 TV도 엄청난 기술적 발전을 보여 왔다. 이른 바 톱니(sawtoooth)이란 파장형태를 발명 덕분에 TV의 희미한 이미지는 엄청나게 선명해졌다. 고스트(Ghost)현상도 수평귀선소거(horizontal blanking)간격도입 덕분에 사라졌다. 이 기능은 텔레비전 수상기의 수평 복귀 동작 기간 중 브라운관의 전자 빔을 차단하는 것이었다.이제 이들은 수평해상도 220선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특허도 늘어나고 있었다.

스튜디오를 구축하는 것은 TV해상도 향상을 향한 논리적인 방향처럼 보였다. 판즈워스의 꿈은 원하는 사람에게 특허라이선스를 제공하고 로열티를 받는 대신 이들이 TV를 생산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그의 회사는 자신의 특허들을 팔아서 로열티를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판즈워스는 이 돈을 기반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새로운 연구 쪽에 전적으로 투입하며 평생 연구비에 쪼들리지 않고 자유롭게 매일매일 호기심을 탐구하면서 살아가게 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제스 맥카거가 자신의 속셈을 드러내며 판즈워스와 이견을 보이기 시작했고 방향성 문제가 불거지게 됐다.

제스 맥카거는 비용부족에 허덕이는 마당에 또다른 엄청난 연구개발 비용을 들이는 데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게다가 이사회까지 맥카거의 편을 들자 판즈워스는 자신에게 더 이상 승산이 없음을 알았다.

그가 받아들이기 싫었던 스튜디오건설 건 부결은 판즈워스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었다.

판즈워스는 이제 자신은 물론 자신의 비전을 나누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휘두를 수 있었던 운명통제력을 잃게 돼 버렸다.

판즈워스와 달리 TV의 미래에 확신을 갖지 못한 제스 맥카거사장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내가 판즈워스의 사업에 위협을 주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과연 내가 투자한 돈을 죽기 전까지 건져낼 수 있을까?”

주식 브로커인 제스 맥카거는 판즈워스의 봉급을 엄청나게 깎는 방식으로 최후통첩을 보냈다.

주식브로커 출신인 그는 봉급을 엄청나게 깎는 방식으로 판즈워스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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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는 연구비용 감축에 대해 판즈워스와 논쟁하던 끝에 결국 랩갱들을 모두 해고해 버렸다.

판즈워스가 볼 때 제스가 돈줄을 쥐고 있는 한 자신이 유지 운영하면서 그동안 개발된 특허를 라이선싱해 그 돈으로 연구하고 재투자하는 연구소기업 설립의 꿈은 요원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