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기계식TV 아버지 베어드와의 라이선스협상
하지만 자금마련 등 재정상황은 TV성능 향상이나 인기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일부 후원자들이 모든 특허를 RCA로 매각하라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판즈워비스씨, 데이비드 사노프 부사장이 제시한 일방적 조건이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 좋지 않은 것은 TV성능향상을 위해 투입됐었어야 할 자금이 지속되는 법정소송자금으로 점점 더 많이 전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즈워스는 버티고 있었다. 자신의 특허군에는 얇고, 급속하게 편향되는 전자빔 방식을 통해 빛을 전기로 전환시키도록 해주는 전자식TV제조에 필수적인 기본적 원리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기술없이는 누구도 전자식TV를 만들 수는 없었다.
RCA 등 다른 라디오회사들의 이어지는 개발과정을 보면 판즈워스의 기술은 정말로 업계의 다른 업체들도 따라올 수 밖에 없는 기술이라는 점을 거듭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더 나쁜 것은 판즈워스가 이 귀중한 특허를 혼자만이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궁극적으로 돈을 벌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점이었다.
판즈워스는 미국 내수시장에서 골리앗 RCA의 대규모 소송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었기에 자신의 특허를 라이선싱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외국시장을 찾아야만 했다.
이런 가운데 어느 날 판즈워스는 BBC가 수년간 실험해 오고 있는 동영상 실험에 대한 이야기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맞게 됐다.
“발명품을 가지고 영국으로 와서 시연을 해 주실수 있겠습니까?”
때마침 영국의 베어드텔레비전 경영진이 연구소를 방문, 그에게 직접 현지에서 시연해 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그는 잘 만 하면 이들을 대상으로 특허라이선싱을 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미국에서 송사로 지연되던 자금확보와 전용된 연구개발비용을 일거에 해결할 열쇠를 찾을 듯 싶었다.
베어드텔레비전은 스코틀랜드의 존경받는 기계식 TV 발명가 존 로기 베이드의 이름을 따서 만든 회사였다. 이 기계식 TV는 베어드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상을 공중을 통해 방송해 돈을 번 최초의 발명가라는 영예를 제공해 주었다. 이는 베어드가 내켜하지 않는 영국 국영 BBC를 설득해 얼마안되는 시청자들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전송하면서 이어졌다.
1930년 내내 BBC는 베어드가 밤시간 동안 그들의 무선채널을 사용해 임시적으로 실험차원에서 영상을 보낼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 하나의 라디오채널을 저주파, 저해상도 영상송수신용으로 사용하고 또다른 채널은 음성채널용으로 보냈다. 베어드는 그럭저럭 수천대의 텔레바이저 수신기를 유럽전역에 판매할 수 있었다.
베어드는 2만대 이상의 키트 형태로 된 이른 바 텔레바이저(Televisor)수상기를 유럽전역에 파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1934년 BBC가 베어드의 기계식 TV의 흐린 영상에 불만을 터뜨리자 더 선명한 TV방송이 절실해졌다. .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베어드텔레비전 경영권을 인수한 브리티시 고몽(British Gaumont)도 베어드에게 선명한 화면을 가진 전자식 TV시스템을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거대 지주회사인 브리티시 고몽의 이사진들은 이 수지맞는 비즈니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베어드에게게 전자스캔 방식의 TV를 위해 기계식 TV를 버리도록 몰아세웠다.
“만일 BBC가 전자식비디오를 원한다면 당신은 공급자가 돼 줘야 합니다.”
브리티시 고몽은 선명한 화면을 얻기 위해 다른 발명가에게 라이선스료를 지불해야 하더라도 전자방식TV를 통해 BBC의 계약을 따내고자 했다.
이런 가운데 베어드의 사람들은 미국에 있는 한 젊은 발명가가 그런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일단의 엔지니어들이 판즈워스의 기술을 보기위해 필라델피아로 급파돼 왔다.
“베어드씨는 특허 라이선스비용을 제공할 의향이 있습니다.”
이 소식은 판즈워스와 스키를 들뜨게 했다. 영국에서 판즈워스의 특허를 라이선스할 수 있다면 유럽전역에도 라이선싱을 할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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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로 도착하자 영국의 엔지니어는 즉각 판즈워스의 시스템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들의 초청에 의해 판즈워스는 발명품을 갖고 직접 영국을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발명품이 도착하면 협상이 매듭지어질 것이었다.
이제 28세가 된 판즈워스는 조심스레 그의 1934년 경의 텔레비전인 모바일유닛(mobile unit)을 상자에 챙겨서 영국 사우스햄프턴을 향해 떠났다. 그는 이제 미국에서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유럽에서 얻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런던으로 가는 독일 국적의 호화여객선 SS브레멘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