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삼국지를 재미 없어하는 이유는..."

조직이 이해 안가는 여성, 삼국지를 읽어라

일반입력 :2013/02/20 08:51    수정: 2013/02/20 09:02

남혜현 기자

기자한테 소설 쓴다는 말은 욕이다. 취재가 부족하니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비하가 담겨 있다. 기사의 생명은 빠르고 정확한 '사실 전달'에 있단 얘기다.

그런데 기자에 소설 쓴다는 말은 최고의 영예기도 하다. 김훈이 대표적이다. 잘 나가는 기자였던 그는, 한국 최고 소설가란 영예도 함께 안았다. '글발' 되는 기자들은 드물게 문단에서도 인정받는다.

여기, 24년차 기자가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2011년 단편 <흘러간 지주>로 등단한 양선희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최근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를 현대식으로 재편한 <여류 삼국지>를 출간했다.

여류 삼국지는 여러면에서 화제다. 우선 삼국지라는 틀에 얽힌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깼다. 양선희 작가는 유비, 장비, 관우의 도원 결의를 '벤처 창업'에 빗댔다. 군웅할거의 시대를 예감한 세 젊은이가 새 판을 짤 기업을 설립한 것, 그것이 양 작가가 본 도원결의다.

삼국지를 현대식으로 재편해서 젊은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었어요. 아들한테 읽히고 여자 후배들한테 보여줄 삼국지를 쓰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평역이 아닌 편작이 됐어요. 젊은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재밌게, 그리고 현대적으로 쓰고 싶어서 편작했습니다.

양 작가가 본 삼국지의 문제는 '재미'다. 그의 어린 시절, 삼국지 인물들은 상업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친숙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에 삼국지는 신화 속 인물일 뿐, 더 이상 가까운 존재는 아니다.

제가 어렸을 땐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삼국지를 읽어야지, 그러면서 잠들었었죠. 그런데 제 아들은 아니더라고요. 왜 그럴까, 고민하면서 시중에 나온 유명 삼국지를 읽었죠. 재미가 없더라고요. 재미있는 부분이 빠지고 해석이 많이 들어간게 문제로 보였어요.

그는 작가가 어떻게 편역하느냐에 따라 삼국지가 시대를 막론하고 계속해 읽힐 콘텐츠라고 설명한다. 조직 생활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한 현대인들에게 삼국지는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이란 것이다. 협력하다 배신하고, 명분을 찾으면서도 뒤에선 철저히 손익을 계산하는 삼국지의 인물들은 시대만 다를뿐 조직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군상들이다.

때문에 양 작가는 삼국지의 주요 장면에 깃든 의미를 잘근잘근 씹어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 친절하기로만 따지면 그간 나온 삼국지 중 최고다. 독자들은 부드럽게 다져진 상황 설명을 삼키기만 하면 된다. 예컨대 도원결의에서 유비에 말을 대주기로 한 장사꾼의 속 사정을 설명한 삼국지 편역자는 그가 처음이다.

기존 삼국지는 장사꾼들이 '유비에 말을 주었다'라는 상황 전달에서 이야기를 끝냈죠. 그런데 상황을 보면, 그 장사꾼들에 유비는 벤처 투자의 대상이었어요. 그들은 말 장사이고, 말이 많이 사용되는 곳은 전쟁터죠. 새로운 투자와 함께 새로운 투자 거래선이 확보되는 것이니, 손해보는 장사는아니죠. 그야말로 벤처 투자에요.

이런 유연한 사고는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 있다. 양 작가는 삼국지를 사상 처음 여성이 편역해 출간한 것으로도 화제가 됐다. 남성 중심의 사회서 20년 넘게 살아낸 여성이 본 조직의 속살이 삼국지에 투영됐다. 그는 이 삼국지를 '여성 후배'들을 위해 썼다고도 했다.

조직은 사람들 사이의 역학관계가 중요한데, 관심들이 적었죠. 조직 안에서의 삶은 어쩌면 한 인간의 일생에 있어서의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까지도 의미할 수 있어요. 그런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게 삼국지인 듯 해요. 이런 이야기를 여성 후배들에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삼국지를 썼어요.

그가 보기에 조직은 '자아 실현의 장'하고는 거리가 멀다. 젊은이들이 조직에 적응 못하고 회사에 들어왔다 너무 빨리 나가는 것은 조직에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여류 삼국지엔 그가 생각하는 조직과 리더, 부하의 모습이 담겼다.

저는 올해로 입사한지 24년차 된 기자에요. 당시엔 중앙일보에서 11년만에 처음으로 뽑힌 여기자였죠. 뭘 하나 해도 잘 해야 했어요. 밤마다 소설을 쓴 것도, 등 뒤에서 능력과 관련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 글 쓰기를 연습한 결과죠. 그런데 삼국지에는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리더, 부하들이 있더라고요.

그는 스스로를 좌파도 우파도 아닌 '공리주의자'라고 칭했다. 지도자는 도덕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이익을 최대화 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논리다. 삼국지 편작에 앞서 숙독한 80여권의 서적엔 마키아밸리 <군주론>이나 후흑학도 포함됐다.

'실리'를 찾는 유연함은 여류 삼국지를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한데서도 나온다. 종이신문서 20년이 넘게 일했으면서도, 남들보다 먼저 ‘전자책’이란 새 흐름을 받아들인 것도 여류 삼국지가 화제가 된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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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을 글을 써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중앙일보서 온라인 편집국장을 한 경험도 컸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노력의 결과물을 유료로 판매하기 위한 유일한 플랫폼이 전자책이라는데 그는 목소리를 키웠다. 전자책이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애정어린 조언도 내놨다. 독서 편의성을 높이라는 것이다. 그의 차기작도 전자책으로 선보일 예정이라 귀띔했다.

앞으로도 전자책 위주로 책을 내고 싶어요. 텍스트 콘텐츠를 갖고 먹고 사는 길은 이를 유료화 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그건 전자책에서만 가능하다고 봐요. 다만 전자책은 좀 더 고객 중심적으로 진화해야할 것 같아요. 책을 읽은 후배가 그러더라고요. 조직을 이해하는데 최적의 텍스트인데, 보기는 불편했다고. 전자책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게 필요해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