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과서→ e교과서→스마트교육 디지털교과서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이름만 바꿔가며 6년째 제자리다. 일관성 없는 정책과 철학 부재로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학교 수업과는 동 떨어진 '기업 배불리기'에 그친다는 비판이 거세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은 최근 '2012년 스마트교육 플랫폼 구축'을 위한 우선협상사업자로 KT를 선정했다.
단독 사업자로 선정된 KT는 NHN, 인큐브테크, 마이크로소프트(MS) 등 협력업체들과 디지털교과서 뷰어, 패키징 도구, 교육 커뮤니티 개발에 들어간다. 정부는 해당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3년, 또 한차례 디지털교과서 플랫폼 구축 사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정부가 예산을 투자해 디지털교과서 뷰어를 개발한 것은 이번이 네번째다. 지난 2007년 처음 디지털교과서를 전국 초·중·고에 배포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기술환경이 바뀔 때마다 뷰어와 플랫폼을 새로 개발했다. 수십억의 예산은 그때마다 SK C&C, LG CNS, KT 등 시스템 개발을 담당하는 SI업체들에 돌아갔다.
KERIS가 수차례 플랫폼 개발만 거듭하는 것은 디지털교과서 사업 성공에 대한 정부의 조급함 때문이란 지적이 크다. 당초 KERIS가 5년 이상 장기 계획을 갖고 디지털교과서를 검토해왔는데, 이를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과학기술부)가 2008년부터 보급하겠다며 급하게 사업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난 2008년 이후 디지털교과서 사업의 근간이 되는 IT 기술이 급변했다는데 있다. 애초 SK C&C가 주요 사업자로 개발을 시작한 1차 디지털교과서 뷰어는 MS 실버라이트가 기본이 됐다. 실버라이트는 MS가 웹표준에 맞춰 만든 기술이나,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급기야 MS조차도 실버라이트에 사망선고를 내린 상태다.
이후 웹표준에 맞춰 개발한 새 디지털교과서 플랫폼 역시 부침을 겪었다. KERIS는 기존 플랫폼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이를 수정,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새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으로 대체해왔다. 그 사이 예산은 계속해 SI업체로 흘러들어갔다.
SI업체들이 주체가 되면서 교과서를 디지털로 변환, 학생이 사용하기 쉽게 하겠단 당초 사업 목적이 변질됐다는 지적도 간과할 수 없다. 디지털교과서에 교사들의 학습관리 시스템을 연계, 플랫폼 자체가 교실서 사용하기 무거워졌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제대로 된 철학 없이 e러닝과 개념을 혼동,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비판이다.
임순범 숙명여자대학교 멀티미디어과학과 교수는 e러닝은 실습실의 개념이지 디지털교과서가 아니다. 디지털교과서는 학생들이 아무 때나 펼쳐 볼 수 있는 서책의 개념이 잘 녹아들어가야 한다며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이대로 진행되다보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우려했다.
KERIS 측은 계속된 플랫폼 사업이 디지털교과서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시범사업이었다고 일축했다. 2014년 디지털교과서 배포를 위해 그간 시범 사업을 해왔으며, 연구학교를 적용해 실제 교실 환경에서 이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왔다는 것이다.
KERIS 관계자는 지난해 스마트교육 신전략을 발표하면서 기존 디지털교과서 방향을 바꾼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전략을 포함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업계선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결국 보여주기식 행정전시에 그칠 가능성을 논한다. 정부가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학계는 디지털교과서를 제대로 활성화할 기본적 연구과제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본다. 플랫폼 개발에 앞서, 디지털교과서의 방향을 짚어줄 연구가 선행되야 한다는 지적은 간과할 수 없다.
디지털교과서 시범학교, CD 교과서 배포도 정부 예산이 잘못 쓰인 예로 꼽혔다. 정부는 지난 2010년 서책형 교과서와 함께 CD 교과서를 배포했다. 당시 교과부 차관은 CD 교과서에 대해 “학생들이 학교에 책을 두고 가정에서는 e교과서를 활용해 무거운 책가방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CD형태 e교과서 실효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학생들은 그대로 서책 교과서가 든 책가방을 매고 다닌다. 집에서 CD를 통해 교과 공부를 하는지는 미지수다.
인천 소재 한 중학교 교사는 “동영상이나 멀티미디어 자료 사용시 CD를 교사들이 쓰기는 한다”면서도 “그러나 학생들이 CD를 집에서 교과서처럼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서책에 CD값까지 붙어 교과서 가격만 비싸졌다는 불만도 들린다”라고 설명했다.
2007년 1차 디지털교과서 사업 예산 660억 중 대부분이 투입된 시범학교 사업에도 문제는 있다. 예산 대부분은 시범학교 인프라 구축에 들어갔다.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할 수 있게 교실에 IT 서비스를 연계하고, 학생들에 HP 컨버터블 노트북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였다.
디지털 교육 환경 구축에도, 당시 수업에 참여했던 교사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교실 하나당 1억원이 드는 대규모 투자였음에도, 학생들이 제대로된 디지털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에 지급된 노트북이 분실이나 도난을 우려, 철삿줄로 교실에 묶여 있었던 한 학교의 사례는 상징적이다.
한 SW업체 관계자는 시범학교 교사들의 불만도 크다. 정부가 시스템만 구현해서 던져줬지, 그 이후에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디바이스나 추가지원이 전혀 없어 사용하기 힘들다고 하더라. 디지털교과서 활용 환경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디지털교과서를 포기할 수는 없다. 디지털교과서는 이미 우리 정부 뿐만 아니라 해외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 미래 산업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 애플 등 주요 IT 기업들도 디지털교과서를 대비한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제라도 정부가 제대로 된 계획을 갖고 준비한다면, 당초 목적처럼 제대로 된 디지털 교육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단기적인 실적 쌓기에만 급급하면 절대 제대로 된 디지털교과서를 만들 수 없다며 정부의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e교과서, 스마트 교육으로 말바꾸기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학생과 교사 입장에서 어떤 것이 제일 필요한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교과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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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교과 내용의 용어 사전, 멀티미디어 자료, 평가 문항, 보충심화학습 내용 등 풍부한 학습 자료와 학습 지원 및 관리 기능이 부가되고 외부 자료와의 연계가 가능한 학습용 교재를 말한다.
정부는 지난 2007년 디지털교과서 사업을 시작한 이래 오는 2014년 전국 초등 3·4학년생부터 단계적으로 디지털교과서를 수업 현장에 반영, 확대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