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을 나는 그림,TV㉝내겐 비밀이 있어요

일반입력 :2013/03/01 00:12    수정: 2014/04/20 15:15

이재구 기자

37■‘내겐 비밀이 있어요.’...그것이 아프게 하나요?

1957년 7월 3일 뉴욕맨해튼 웨스트 52번가. 39층짜리 CBS방송국 본사 스튜디오.

이 방송국 스튜디오에서는 '나에겐 비밀이 있어요(I’ve Got a Secret.)'라는 일종의 퀴즈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다.

유명인사 4명으로 구성된 패널과 초대손님과의 문답을 통해 그의 정체를 알아맞히는 게임성 프로그램이었다. 패널 1인당 20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어 이들이 초대손님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하면 최대 80달러의 상금이 초대손님에게 돌아가게 되는 게임성 프로그램이었다.

사회자 게리 무어가 청중들과 패널로 초대된 4인의 유명인사들을 대상으로 초대 손님에 대한 소개를 시작했다. 이 분을 (편의상)단순히 ‘닥터X’라고 부르겠습니다. 자, 닥터X. 제게 당신의 비밀을 속삭여 주시면 (다른)사람들에게 비밀을 보여드리지요.“

박사가 자신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회자의 귀에다 대고 자신의 비밀을 속삭이자 TV화면자막이 떴다.

거기엔 커다랗게 ‘나는 전자식 TV를 발명했어요(I invented electronic television.’)라는 글자가 오버랩됐다.

이를 본 청중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사회자는 “좀 더 있답니다”라면서 다시 판즈워스쪽으로 자신의 귀를 쫑긋 갖다대는 시늉을 했다.

‘내가 14살 때-1922년(When I was 14 years old-1922)’라는 흰색 글씨가 두사람을 비친 화면 위에 다시금 흰색 글씨로 쓰여져 오버랩돼 보였다.

먼저 빌 컬런씨가 질문하시죠.

라디오방송인인 그는 이상한 기계를 만든 닥터X같은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물었지만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당신은 이 비밀과 관련된 어떤 대상(object)을 갖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판즈워스로부터 그렇습니다라는 답을 듣자 그는 “사용할 때 아프게 하는 종류의 기계인가요?”라고 되물었다.

판즈워스의 답은 “네, 때때로 아주 아픕니다.(sometimes most painful.)”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폭소를 떠트리며 박장대소했다.

방송인인 빌이 그의 정체를 몰랐기에 패널 각자에게 20달러씩 돌아가는 총 80달러의 상금 중 20달러가 판즈워스몫이 됐다.

사회자가 다음 패널인 여배우 제인 메도우즈에게 질문기회를 주었다.

그녀는 판즈워스가 연구소에서 일하는지, 이 것이 원격 또는 정신의학적인 사건과 연계돼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사회자가 황급히 거들었다.

“특별히 그런 건 아닙니다만...매우 드물게 그런 경향의 원인이 되지만 그것을 위한 게 아닙니다.”

그러자 제인 메도우즈의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이것에 대답하는 것은 굉장한 웃음거리가 되겠지만 귀하가 여기에 들인 시간이 우리 인류에게 은총이 될 수 있다고 받아 들여도 될까요?“

그러자 판즈워스가 답했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질문들도 닥터X이 정체를 밝히지 못하자 마침내 진행자 게리 무어가 그의 정체를 밝혔다.

“이 분은 전자식TV를 발명한 파일로 T 판즈워스박사입니다.”

그러자 패널중 한사람인 헨리 모건이 말했다.

“박사님, 진짜로...후회하나요?”

“아니요.”

그러자 사회자가 말했다.

“제가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요. 그는 ‘가끔은(sometimes)’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1930년대 내내 데이비드 사노프 RCA회장이 제기한 특허소송으로 고통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기도 했다.

약속된 방송시간이 다 돼 가자 사회자 게리 무어가 말했다. “판즈워스 박사님. 제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 가장 놀라운 분과 우리가 수시간 동안 함께 앉아 얘기했군요. 불행히도 텔레비전은 그대로 있고 박사님의 자식입니다. 그리고 이제 약속된 시간이 다 됐습니다.”

이 말과 함께 사회자는 판즈워스에게 한 보루의 윈스턴 담배, 그리고 80달러의 현금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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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게리 무어가 남긴, TV의 아버지에게 바친 한마디는 사실상 그때까지 그에게 공개적으로 바쳐진 유일한 헌사였다. 그의 발명품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RCA의 대대적인 광고와 TV제조업계에서의 절대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RCA의 업적인 양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사님,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박사님이 없었다면 우리의 직장도 없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