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플라이언스, 한국시장 왜 안 뜰까

일반입력 :2013/01/22 08:34    수정: 2013/01/22 09:02

2010년경부터 대형 IT업체들은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가상화 등을 하나로 묶은 통합인프라 제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했다. 각 회사들은 자사의 통합시스템 혹은 어플라이언스가 클라우드, 가상화 인프라 구축을 단순화 해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누가 더 완벽한 안전성과 유연한 확장성을 제공하는지, 얼마나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느냐로 경쟁의 양상을 몰고 갔다.

미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업체 간 통합시스템 경쟁은 사실 한국에선 먼나라 이야기다. 인프라 위의 솔루션까지 통합한 목적형 어플라이언스만 소기의 성과를 이뤘을 뿐, 애플리케이션 설치 이전단계까지만 완료된 통합시스템은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일부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가 도입했을 뿐이다.

시스코시스템즈·EMC·VM웨어의 합작품인 V블록, HP의 클라우드 시스템, IBM의 퓨어시스템즈, 델의 V스타트(현 액티브 인프라스트럭처) 등은 미국에 비하면 더딘 속도로 국내 기업에 확산되고 있다.

일반적인 원인 분석은 IT인프라를 단일 업체에 모두 맡기는 걸 꺼리고, 가격 경쟁 중심의 구매를 선호한다는 국내 기업의 특수성으로 수렴된다. 그러나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기업이 IT 인프라의 수요예측을 명확히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프라의 미래 예측을 담은 통합시스템과 어플라이언스

IT업체의 통합시스템은 데이터센터의 축소판이다. IT업체들이 수년간 고객사의 데이터센터를 설계하고 구축하면서 얻은 사용자 규모와 전력, 최적 배열 등의 경험을 표준화해 박스에 투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제품에 사용자 규모와 필요 용량을 규격화해 제공한다.

가령 통합시스템 중 델 V스타트는 가상머신(VM) 수용량에 따라 제품을 달리해 출시했다. VM 100개를 수용하는 V스타트100, 300개를 수용하는 V스타트300 같은 식이다. 이는 100개의 VM을 사용하는 클라우드·가상화 인프라에 최적 조합이란 뜻이다. 가상데스크톱인프라(VDI)의 경우도 이용자 수에 따라 그에 맞는 규모의 통합시스템을 제공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가상화 환경을 이용하려는 기업 입장에선 사용자수와 향후 용량 증설 추이를 감안해 통합시스템을 구축하면 된다. 이미 모든 최적화와 사전테스트를 마친 상태로 구입하므로 시스템 구축이 쉽고 빠르다. 만약 사용량이 늘어야 한다면 그만큼 랙을 채우고, 랙을 다 채우면 통합시스템을 더 붙여 확장하면 그만이다.

단 기업이 통합시스템을 자신있게 구매하려면 자사에 필요한 인프라의 규모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전제를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은 IT업체에서 제공하는 통합시스템의 표준화된 용량에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국내 기업의 IT구매 경향이 여기에 속한다.

■미래예측보다 현재에 천착하는 국내 기업

국내 기업의 경우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거나, 전산실 인프라를 새로 구비하려 할 때 용량증설에 대한 전망치를 계산하지 못한다. 오직 현재 가용가능한 예산규모 속에서 장비를 구입할 뿐이다.

국내 기업이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점은 부동산을 제외하고 전력이다. 전체 예산 가운데 전원을 확보하는 발전기, UPS 등의 구매규모를 산정한 후 남은 예산으로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의 장비와 솔루션 구매 규모를 결정한다. 여기서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의 향후 3~5년 뒤 사용량을 정밀하게 예측하는 경우는 전무하다.

최초 구매 시 확장과 증설에 대한 고려가 명확하지 않고 현재 상황만 감안하므로, 명료한 미래 전망을 콘셉트로 내세우는 통합시스템이 매력을 발휘할 리 없다.

이런 현상은 서버 가상화에서도 드러난다. VM웨어, 시트릭스,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가상화 솔루션을 판매할 때 사용할 VM 수에 따라 물리적 서버의 규모를 산정해주는 분석을 제공한다. VM웨어의 벤치마크테스트 자료인 VM마크의 경우 특정 서버업체의 제품이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사용될 때 얼마나 많은 VM을 수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국내 기업 중 서버 가상화를 도입하는 경우 VM마크나 규모 분석 자료를 참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서버에 얼마나 많은 VM을 생성할지 확실히 예측하지 못하므로, 실제 필요보다 과도한 규모로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부족한 규모로 구축하기 쉽다.

IT업체 관계자는 “포드(POD) 개념을 축소해놓은 통합시스템은 고객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양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확실히 했을 때 힘을 발휘한다”라며 “쉽고 빠른 IT시스템 구축이란 혜택이 아예 설자리가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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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시스템을 사용하는 방식과 규모, 예산, 조건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통합시스템과 구성요소별 개별구매 사이의 우위를 가르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IT시스템의 준비과정이 기업 비즈니스의 변화속도와 사업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통합시스템의 장점도 분명하다.

또다른 관계자는 “통합시스템은 시스템을 더 팔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고객사의 잘못된 IT 구축 관행에서 오는 장기적 피해의 문제다”라며 “통합시스템에 대해 벤더종속이니, 고가니 같은 잘못된 이해를 하게 되면, 예측가능한 IT환경을 구축한다는 장점을 지나치게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