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솔루션을 지향했던 IT회사들은 올해 1년 '스토리지 분야 완패'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반면 스토리지 업체들은 전문성을 앞세워 굳건한 지위를 유지했다. 서버와 스토리지를 묶어 판매한다는 접근법이 잘 먹혀들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2012년 EMC와 넷앱, 히타치데이터시스템즈(HDS) 등 스토리지 전문업체들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EMC는 점유율 1위를 확고하게 다졌고, 한때 주춤했던 넷앱도 상황을 반등시키는데 성공했다. HDS는 공격적인 가상화 시장 공략을 통해 하이엔드급 강자란 지위를 굳혔다.
IBM, 델, HP, 오라클 등은 스토리지 시장에서 체면을 구겼다. 이들은 스토리지 분야 투자를 확대하면서, 자사의 서버제품과 긴밀한 통합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용자는 통합솔루션에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여전히 스토리지는 통합솔루션으로서 매력을 끌지 못하는 모습이다. 다양한 원인이 지목된다. 전략적인 미흡함과 더불어 스토리지 조직규모, 전문성 부족 등이다. 통합솔루션과 스토리지는 영원히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스토리지 업체의 압승, 통합솔루션의 완패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전세계 외장형 스토리지 업체의 전체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3.6% 증가한 53억 달러를 기록했다. 12분기 연속 매출증가다. 가트너는 네트워크 스토리지(NAS) 시장의 확산에 주목했다. 3분기 SAN 시장은 1.6% 성장한 반면, NAS 시장은 10.9%나 성장했다. 각 기업들의 성적표도 NAS 시장 대응에서 갈렸다는 분석이다.
HDS, EMC, 넷앱, 후지쯔 등이 높은 성장세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지쯔를 제외한 나머지 3개사는 모두 스토리지를 전문적으로 취급해온 회사다. IBM, HP, 델, 오라클 등은 부진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높은 성장세를 보인 NAS 시장에서 약세를 보였다.
1위 EMC의 시장점유율은 33.6%다. IBM이 11.9%로 2위, 넷앱이 10.8%로 3위를 달리고 있다. HDS가 10.6%로 넷앱을 바짝 뒤쫓았다. HP 9%, 델 7.2%, 후지쯔 2.4%, 오라클 1.4% 순이다.
순위만 보면 통합솔루션 업체의 성적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EMC 8.2%, 넷앱 4%, HDS 18.1% 등 전문업체가 수익 상승을 보인 반면, IBM 5%, HP 10.9%, 델 4%, 오라클 17.4% 등 통합솔루션 업체는 모든 수익 하락을 기록했다. 후지쯔만 8.3% 늘었다. 상반기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스토리지 자체의 경쟁력이 성적 좌우
전문업체는 오랜 시간 스토리지 분야에 특화된 경쟁력을 쌓았다. 외장형 스토리지의 핵심요소인 제어 SW와 저장과 데이터 처리효율화를 위한 자동 계층화, 중복제거, 백업 등의 솔루션을 내재했다. 그에 수반된 개발, 영업, 마케팅, 유지보수 등에 이르기까지 인적 자원과 역량이 풍부하게 갖춰져 있다.
반면, IBM, 델, HP, 오라클 같은 회사들은 전통적인 서버 시장에서 활동하다 뒤늦게 자체적인 스토리지 사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내부 제품개발(R&D) 외에 여러 스토리지 회사를 인수해 빠르게 외형을 갖췄다. 그러나 스토리지업체의 아성을 깨뜨리기엔 2%가 부족한 모습이다.
솔루션 자체만 놓고 보면 전문업체와 대동소이하다. 중복제거, 씬프로비저닝, 자동 계층화 등 다양한 기능을 모두 제공한다. 여기에 서버와 함께 구매함으로써 얻는 통합적인 시스템 구축과 단일화된 유지보수가 추가 혜택으로 제공된다.
HP의 3PAR는 하드웨어 ASIC 기반의 씬프로비저닝 기술을 장점으로 하며, 3분기에도 70% 이상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합솔루션을 지향하는 회사의 것이라 해도 스토리지 제품 개별적으로 보면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부진한 성적을 내는 원인은 사업전략과 영업, 지원시스템의 미성숙에서 찾을 수 있다. 통합솔루션을 내미는 회사들의 경우 스토리지 자체에 대한 세밀한 고객접근보다 통합과 단일성이란 거대한 시각에 매몰돼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 스토리지전문업체의 공고한 시장 장악력은 후발주자에게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잘 허용하지 않는다”라며 “스토리지 시장은 오랜 시간 사용자와 공급자란 관계를 유지하며 다져온 스토리지전문업체의 고객신뢰도가 탄탄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고객 신뢰도는 단시간에 만들어질 수 없는 만큼 고객의 구미를 확 끌어당길 결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스토리지 경쟁력 강화부터 다시
올해까지는 스토리지 전문업체의 압승이다. 그러나 전문업체의 시장 장악이 언제까지 계속되리란 보장은 없는 상황. 조금씩 시장 변화 분위기가 감지되는 상황이다.
일단 통합솔루션 제공이란 거대한 틀 속에서 스토리지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조금씩 먹혀드는 모습을 보인다. 일례로 HP는 경쟁사보다 비싸게 가격을 매기지 않는다는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버 분야에 특화됐던 파이낸셜서비스를 개선해 구매지원정책을 폭넓게 적용하는 시도도 나온다.
데이터의 빠른 처리와 전반적인 시스템 실행속도 향상을 위한 속도경쟁도 불붙었다.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와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해 애플리케이션 처리속도를 10배 개선하는 작업이 모든 업체에서 성과를 드러냈다.
이는 전문업체와 통합솔루션업체 사이의 차별점을 흐릿하게 만든다. 차별점의 소멸은 시장에 조성된 진입장벽을 없앨 틈새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각 업체들의 기능적 특수성을 더하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HP 관계자는 “스토리지 자체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기술적 격차는 사라졌다고 본다”라며 “서버에 스토리지를 덤으로 파는 게 아니라, 스토리지 자체만으로 접근해도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의미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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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코리아 관계자는 “스토리지 자체의 경쟁력을 완비하면 서버업체가 제공하는 통합솔루션의 장점이 더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리지 전문업체의 시장 방어노력도 당연히 이뤄지고 있다. EMC는 VM웨어와 통합력을 강화하면서, 스토리지 자체 외에 데이터센터 솔루션 업체로 성장을 꾀하고 있다. 넷앱은 애자일 데이터 인프라스트럭처란 새 개념을 통해 '쉽고, 빠르며, 중단없는'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뒷받침하겠다고 나섰다. HDS 역시 스토리지 운영체제의 강화를 통해 세부 경쟁력 다지기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