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조직의 명운(命運)’ 때문에 울고 웃었던 한 해다.
이렇듯 방통위는 임진년 새해 벽두, 조직 수장의 ‘사퇴의 변’으로 시작했다. 올 1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금품수수 및 측근비리 의혹에 대한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사퇴한 것.
특히, 연임에 성공했던 최 전 위원장의 중도하차는 ‘MB정부 개혁정책 실패의 상징적 사례’로 지목되며, 종편 위주였던 지난 4년간 방통위 정책을 성토하는 기폭제가 됐다. 또 대선을 앞두고 ICT 전담부처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도 됐다.
이후 신용섭 상임위원의 갑작스런 사퇴와 EBS 사장으로의 이직, 양문석 상임위원의 사퇴 등은 정치 논리가 작용하는 합의제 행정기구의 한계를 드러내며 논란을 자처했다.■지상파 ‘블랙아웃’…방통위, 행정력 부재 ‘도마’
지상파-케이블TV 간 재송신 분쟁으로 올 1월 KBS2의 아날로그방송 송출이 중단되면서 방통위의 행정력 부재가 다시 한 번 도마에 올랐다.
이미 위성방송의 방송 송출 중단사태를 경험했던 지상파의 재송신 문제는 지난 3년여를 끌어 온 업계의 고질병이었음에도 방통위가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에서다. 결국, 이 문제는 올 연말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내년까지 방송중단사태의 불씨를 다시 안고가게 됐다.
이어진 MBC의 장기파업 사태 역시 방통위의 무능력함을 보여 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실상 공영방송의 기능을 수행해야 할 MBC의 파업이 수개월간 지속되고 있음에도 기업 내부의 일에 정부가 간섭할 수 없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내세우며 수수방관했기 때문이다.
이는 또 양문석 상임위원의 사직서 제출로 연결되면서 결국 방통위의 행정력 부실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쪽 알뜰폰 정책…MNO-MVNO 모두 ‘볼멘소리’
올해부터 이통사와 이동전화재판매사업자(MVNO) 간 번호이동이 허용되면서 MVNO의 제도적 걸림돌이 일부 해소됐지만, 기존 이통사의 자회사가 MVNO사업을 할 수 있도록 방통위가 길을 터주면서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시켰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아울러, 단말 확보와 도매대가로 인해 MVNO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방통위가 정책목표로 삼았던 이동전화 요금인하에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는 이통3사가 지난해 총 5조7천500억원의 규모의 단말 보조금을 쏟아 부었고, 올해 방통위로부터 영업정지와 과징금을 부과 받을 만큼 불법 보조금을 일삼아 단말 경쟁력이 없는 MVNO가 시장에서 외면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MVNO들은 저가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풀리고 선불이동전화 간 번호이동이 허용되는 내년 상반기에는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여전히 안개 속 ‘망중립성’
연초 KT와 삼성전자 간 ‘스마트TV’ 차단 사태로 이목이 집중됐던 망중립성 역시 지상파 재송신 제도개선과 마찬가지로 업계로부터 ‘뒷북행정’이란 지적을 받았던 정책 중 하나다.
‘망 투자비 분담’으로 촉발된 통신과 비통신진영의 망중립성 분쟁은 방통위가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내 ‘트래픽 관리 기준안’을 내놓기로 하면서 수그러들었지만, 당초 연말께 내놓기로 한 정책결정을 내년으로 유보하면서 아직까지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는 상태다.
때문에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는 트래픽 관리 기준, 모바일 인터넷전화 등 업계의 예민한 이슈를 담은 망중립성 정책이 전담반과 자문위만 있고 정책결정은 없는 방통위의 요식행위로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와이브로 기반 제4이통, 어떻게
지난 연말 한국모바일인터넷(KMI)과 인터넷스페이스타임(IST) 등 2개 컨소시엄의 동반 탈락으로 막을 내렸던 제4이통사 허가심사가 1년 만에 다시 재개됐다.
당초 방통위는 MVNO 허용과 제4이통사 허가로 경쟁을 활성화시키고 이를 통해 통신요금 인하를 꾀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방통위가 제4이통 주파수로 2.5GHz 대역을 와이브로로 내놓으면서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분위기다.
방통위가 이통사의 와이브로 허가조건을 용도변경을 승인, 사실상 와이브로가 이통사의 백홀 네트워크로 전락한 상황에서 와이브로 신규 사업자의 선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이통사가 와이브로(모바일 와이맥스)를 TD-LTE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어, 방통위가 빨리 와이브로 정책의 전환 결정을 내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스마트폰 3천만, LTE 1천만 돌파
와이브로 정책이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는 분위기와 달리, 4G의 조기 전환 정책은 ICT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긍정적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3천만을 넘긴 스마트폰 이용자와 전체 이동전화 가입자의 25%에 해당하는 1천400만명에 이르는 LTE 서비스의 확산은 PC, 웹 기반의 산업 환경이 급속도로 모바일로 전환되는 데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LTE 확산에 가장 적극적인 LG유플러스는 이를 바탕으로 올해 1천만 가입자를 돌파하기도 했다.
또 모바일에서 초고속인터넷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이용자들의 일 데이터 사용량도 3G가 687MB에 그친 반면, 4G는 1.7GB를 사용할 만큼 일반 국민들의 생활패턴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 같은 국내 통신 환경이 뒷받침하면서 삼성전자를 포함해 한 동안 제자리를 잃었던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을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로 올려놓는데 톡톡할 역할을 했다. 스마트폰 시장의 1위로 올라선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제조사들은 노키아와 모토로라 등 전통적인 휴대폰 강자들이 줄줄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가운데 선전을 하고 있다.■광화문 시대 끝내는 방통위
올해를 끝으로 광화문 시대를 접는 방통위는 내년 3월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으로 자리가 비는 과천청사로 이전한다.
하지만 방통위는 부처이전보다 연초 인선이 마무리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구성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그동안 ICT 정책 실종이라는 업계의 끊임없는 지적에 대선후보들이 ICT 전문부처 설립이란 기대감을 부풀려 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창조과학부에 병합되느냐 ICT 전문부처 설립이냐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어 방통위의 행정력은 사실상 마비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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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부조직 개편의 결과에 따라 향후 ICT 정책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업계도 긴장감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조직 수장의 사퇴와 구속으로 어수선한 한 해를 시작했던 방통위가 또 다시 조직의 해체냐, 새로운 시작이냐의 갈림길에서 불안한 한 해를 보내고 있다.